한진중 필리핀 조선소는 노동자의 ‘묘지’

필리핀-한국 한진중공업 노동자, 연대투쟁 선언

한국과 필리핀 양국의 한진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에 나섰다. 한국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의 172명 대량해고와 필리핀 현장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유린, 노조 탄압에 양국의 노동자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필리핀 한진중공업노조, 필리핀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 국제건설목공노련 등은 19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필리핀 수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태와, 양국 노동자들의 요구조건, 이후 계획 등을 발표했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가 ‘무덤’이 됐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6년부터 필리핀 수빅만 미군기지 자리에 조선소 건설을 시작했다. 건설 초기, 이 지역의 수백만의 가구는 적절한 보장이나 이주 대책 없이 쫒겨났으며, 그 자리에 한진중공업과 필리핀 정부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조선소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조선소 건설 사업은 그 과정에 있어서도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2007년부터 2010년간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만 지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자그마치 5000건. 이로 인해 2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한 주가 멀다하고 노동자들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꼴이다.

최근에는 지난 4월 11일, 31세 용접공이었던 알빈 달루나그 씨가 6피트 상공에서 추락해 금속 블록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4월 9일에는 알빈 플라시오 씨가 작업 도중 철제 브래킷에 머리를 부딪혀 헬멧이 깨지고 오른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출처: 금속노조부산양산지부]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폴리나르 덩 톨렌티노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 지역대표는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노동자들의 묘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지금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리비아보다도 심각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필리핀 지역의 노조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집계된 산재 사망사고 이외에도 보고되지 않은 많은 사고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사고가 실종이나 의문사로 처리되며, 이는 산재 사망사고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사고는 수 톤의 금속 물질에 부딪히거나 철판에 찔리거나, 바닥으로 추락하거나 질식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 현장 주변의 말라리아 발생도 지역 주민과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었다. 필리핀 보건부 전염병 센터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한진 건설현장이 위치한 카와그 마을이 말라리아 발병률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이곳의 지역주민과 노동자 사이에서 321건의 말라리아가 발병했다.

때문에 필리핀 의회는 현장 방문과 두 차례의 공청회를 개최하고, 한진중공업 측에 △공장 내 24시간 가동되는 병원 설립 △매일 현장 감독을 수행하는 안전인력 배치 △19000명 노동자에게 개인보호장비 지급 △한국인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학대 관행을 추방하기 위한 세미나 개최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 같은 의회의 권고마저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회사가 인력관리부 2층을 7개의 침상과 1명의 의사를 둔 의료센터로 개조했는데, 이는 노동법이 요구하는 190개 침상을 갖춘 의료시설과는 거리가 멀다”며 “나머지는 더욱 악화됐고, 더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했으며, 한국인 관리자들은 이전 같은 학대에 더하여 공고함에 가두는 등의 추가적인 학대를 가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필리핀에서도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탄압

올해 2월, 한진중공업은 172명의 노동자에 대한 대량해고 방침을 확정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방침에 노동자들은 3달이 넘도록 농성과 상경투쟁, 고공농성 등을 벌이고 있으며 김진숙 지도위원 또한 10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일방적인 탄압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서 또한 다르지 않다. 지난 2008년 7월 6일, 수빅 조선소 현장 300여 명의 노동자들은 한진중공업건설필리핀노동조합(HHICPWU) 창립총회를 열고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노조 설립 직후, 한진중공업 필리핀 법인은 노조간부 및 조합원들을 민다나오에 있는 필리핀 법인의 새로운 사업장으로 전출시키거나 좌천, 감봉의 조치를 취했으며, 간부와 조합원 14명에 대해서 해고를 감행했다.

하청노동자 공장으로 변해버린 조선소의 현장과 이에 따르는 불법파견 문제 역시 한국과 필리핀 양국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조선소의 간접고용 실태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정규직 노동자 1850명에 비해, 간접고용 노동자는 정규직의 2배가 넘는 3351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또한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 당시, 20~30%에 이르는 도급단가 삭감을 추진하며 하청노동자의 임금 차별에 앞장서기도 했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 역시 노동자 대다수가 하청노동자다. 현재 수빅 조선소에는 약 19000여명의 조선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10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유지 보수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입사 전 1~3개월 동안 약 3달러의 수당을 받으며 기술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6개월 수습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 중 상당수가 155달러의 수당과 정규직 직접 고용을 약속받고 3개월간 한국에서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정규직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노동자의 대다수가 101개 하청업체에 기간제 계약직으로, 업체가 지속적으로 바뀌며 고용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101개의 하청업체 중 21개 업체만이 정식으로 등록된 업체로 알려져 있다. 노조는 “노동자들은 5년 계약직으로 숙식 및 교통비를 제공받으며, 가동 초기를 제외하고는 계약종료 통지서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한진 사측은 주기적으로 여러 하청업체를 돌며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고 설명했다.

인권 유린과 열악한 고용환경도 문제다. 필리핀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일급 5~7달러에 불과하지만, 임금의 3%는 ‘훈련비’로 공제되며 실수령액의 4분의 1이 교통비로 지출된다.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은 08시~17시, 19시~04시까지 근무하지만, 일반적으로 30분 일찍 업무를 시작하며 때로는 연속근무를 해야한다.

또한 노조는 “구내식당 음식은 상했거나, 구더기가 가득하거나, 멀건 죽이거나, 꿀꿀이죽처럼 음식 찌꺼기를 섞어놓은 것일 때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인 관리자에 의한 인권 유린 역시 심각하다. 아폴리나르 덩 톨렌티노 대표는 “필리핀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관리자는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라며 “또한 관리자는 한국노래를 불러보라고 강요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경우 땡볕에 서 있으라는 벌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국-필리핀 노동자, 공동투쟁 선언

한국과 필리핀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탄압에 양국의 노동자가 연대를 투쟁을 선언했다.

필리핀 전국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NUBCW)은 지난 18일, 연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금속노조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맞선 정당한 투쟁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오는 5월 1일 행진과 필리핀 진보적 노동조합들이 주최하는 공동 집회에서 한국 한진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를 호소할 것이며, 한진 자본과 한국 정부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연맹은 금속노조 측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을 요청하는 공동성명서 서명을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역시 연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리는 지금이라도 한진중공업 자본이 자신들의 역할을 깨닫고 필리핀 노동자들의 안전한 노동조건과 정당한 노동권을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며 “앞으로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노동자들을 비롯한 금속노조는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투쟁을 적극 지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금속노조부산양산지부]

또한 양국 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 철회 △현 사태를 유발한 경영 책임자 교체 △민형사상 고소고발, 징계 철회 △필리핀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인정 △필리핀 노조간부와 조합원 탄압 중단, 해고 노조간부와 조합원 복직 △불법 사내하도급 중단 등의 공동 요구를 발표했다.

한편 양국의 한진중공업 노조는 이후의 공동 투쟁을 위한 다양한 계획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최우영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은 “오늘 간담회를 통해 이 같은 양국의 노동 환경을 무조건 외부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했으며, OECD 제소를 검토중”이라며 “또한 9월에 필리핀 목공노련 조합원들이 한국 원정투쟁을 계획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필리핀 원정투쟁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