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의 장례식..안치웅 민주열사 초혼장 엄수

“죽이지 않고는 빼앗을 수 없었던 당신의 긍지와 신념을 찾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 출소한 뒤 실종된 안치웅 열사에 대한 장례식이 실종 23년만에 치러졌다.

1982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무역학과)에 입학한 안치웅 열사는 민주화추진위원회 핵심 활동가로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지원하다 그 해 6월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1986년 7월4일 출소했다. 그러나 안 열사는 공안기관의 지속적인 감시 중 1988년 5월26일 오전 “아는 목사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됐다.

안치웅 열사가 출소한 당시, 전두환 정권은 학생-노동운동 지도부, 특히 민추위 지도부 궤멸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때다. 안 열사는 출소 이후 복학하여 88년 2월 졸업 후 실종될 때까지 기관원들의 요시찰 대상이 되어 끊임없는 감시와 미행을 당해 왔음을 여러 정황에서 알 수 있었다.

2010년 2월 박원순 변호사가 제출한 의견서에서 “의문사위원화와 민주화보상위원회의 조사자료를 보면, 안치웅은 출소후 지속적으로 감시 사찰을 받은 것으로 판단됨 .... 당시 안치웅이 감시상황에 놓였다고 추단케 하는 정황적 배경들이 확인됨 ... 공안당국의 감시사찰 상황 말고는, 달리 안치웅의 실종을 설명할 합리적 이유가 없음” 이라고 밝히고 있다.

2002년 9월과 2004년 6월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안씨의 행방불명과 관련,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어 2009년 7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안씨의 행방불명을 민주화운동관련 행방불명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2010년 7월 재심의에서 민주화운동관련 행방불명으로 처음 인정했다.

  입관식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열사 안치웅 장례위원회는 29일 안치웅 열사의 초혼장을 치렀다. 오전 9시30분 서울대 광장(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입관식으로 초혼장을 시작해, 유가족과 용산참사 유족 및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 영결식이 엄수됐다.

  입관식에서 어머니 백옥심 여사는 관에 넣을 옥색 한복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입관식에서 안치웅 열사의 어머니 백옥심(71) 여사는 “우리 치웅이가 있었으면 이렇게 고운 옷을 입혔을 텐데...이렇게 보내야 하다니...”라며 한참을 오열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영결식에서 배은심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조사에서 “자식이 집으로 찾아올까 매일 밤 형광등을 켜놓고 지낸 세월이 자그마치 23년”이라며 “이것이 이 나라 독재정권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이라고 고인과 유족을 위로했다.


하관식은 오후 1시경 마석 민주열사묘역에서 유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당신을 찾고 있다

안치웅 열사 23년만의 초혼장에 부쳐

우리는 아직도 찾고 있다. 당신을
당신을 미행했던 검은 그림자들을
소리 죽인 발걸음들과 엿듣는 귀들을
그 독재의 말초신경들과
압제의 끄나풀들을

우리는 아직도 찾고 있다. 당신을
당신을 끌고 갔던 1988년 5월 26일
그 초여름의 햇살을
놀라 멈칫하던 공기를
잽싸게 숨던 바람의 옷자락을
수군거리던 나뭇잎새들의 행방을

우리는 아직도 찾고 있다. 당신을
당신은 어느 깊은 밤 산골짝에 묻혔나
어느 새벽 호수에 가라앉았나
어느 끝 모를 바다에 던져졌나
칼에 찔려 죽었나 몽둥이에 맞아 죽었나
물고문에 숨이 막혀 죽었나
울면서 죽었나 피를 토하며 죽었나

우리는 아직도 찾고 있다. 당신을
당신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고는
당신 손에 수갑을 채우지 않고는
당신의 검은 눈에 보자기를 씌우지 않고는
당신의 의식과 뇌리와 심장에 치명상을 입히지 않고는
지킬 수 없었던 저들의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아직도 찾고 있다. 당신을
당신을 미행한 자들의 그후 행적을
당신을 끌고 간 이들의 그후 행방을
당신을 학살한 자들의 한적한 오늘을
당신을 망각의 역사 속에 파묻은 자들의 배부른 현재를

우리는 아직도 찾고 있다. 당신을
당신의 명민했던 의식을
당신의 소박한 웃음을
감옥에 갇혀서도 굴하지 않던 용기를
당신이 꿈꾸었던 민족해방 노동해방의 꿈을
죽이지 않고서는 빼앗을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향한 당신의 긍지와 신념을

그러니 아직 눈감지 말아라
언젠가 우리가 꼭 당신을 찾고야 말리니
산과 바다와 들녘을 데리고
바람과 햇볕과 비와 눈송이들을 데리고
지저귀는 새들과 눈물 젖은 꽃잎들을 데리고
당신을 꼭 찾고야 말리니

당신의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그 멋진 한 세상을 우리가 되찾을 그 날까지
그때까지는 그 어느 산골짝이든
강물 속이든, 바다 속이든
화염 속이든 그 어디에서든
늙지 말고, 부스러지지 말고
꺾이지 말고, 부식되지 말고

살아 있으라
우리 눈에 아직도 흐르는
이 분한 눈물로 살아 있으라
우리 가슴에 아직도 타오르는
저항의 불꽃으로 살아 있으라
우리 가슴에 아직도 벅차오르는
해방의 확신으로 살아 있으라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때야 우리 젊은 당신을
우리 가슴 속에 묻으리니
살아 있으라. 청년이여!
살아 있으라. 열사여!


송경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