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작은용산’ 두리반 승리

시행사와 이주대책 합의...“철거투쟁에 새로운 이정표 될 것”

‘홍대 앞 작은 용산’이라 불리던 두리반이 마침내 시행사와 이주대책을 합의했다. 농성 투쟁을 시작한 지 531일, 단전 324일 만이다. 철거투쟁에서 시행사와 조인식까지 가지며 공개적으로 합의 절차를 밟은 사례는 두리반이 처음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철거투쟁에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고 평했다.

  안종녀 두리반 철대위원장과 진병주 남전디앤씨 대표이사가 합의문에 사인한 뒤 악수하고 있다.


8일 오전 11시, 마포구의회 1층 다목적실에서 두리반과 재개발 시행사 ‘(주)남전디앤씨’ 간 조인식이 열렸다. 1년 반 동안 이 순간만을 그려왔을 것이건만 조인식 장에는 기분 좋은 떨림 대신 초조한 긴장감으로 술렁였다.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키로 했던 마포경찰서 정보과 계장이 조인식을 불과 20분 남겨두고 “다른 일정이 생겼다”며 갑작스레 불참을 통보해 온 것.

작가회의와 두리반대책위 측이 몇 차례에 걸쳐 마포경찰서에 강하게 항의하자 전석창 정보과장 직무대행은 결정을 번복하고 11시 40분이 되어 조인식장에 도착했다. 마포구청 측 참관인인 김정호 총무과장은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12시가 돼서야 모습을 나타냈다. 대책위 관계자는 “공직자들이 참관인으로 참석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같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참관인이 모두 모인 12시가 되어서야 조인식이 시작됐다. 안종녀 두리반 철대위원장과 진병주 남전디앤씨 대표이사는 각각 합의문을 확인하고 사인을 했다. 사회자의 권유에 따라 양측이 악수를 하는 순간 531일 동안 기다려온 환호와 박수가 식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합의문에는 이주대책과 민형사상 분쟁 처리, 위약벌 조항 등이 담겼다. 합의문에서 시행사는 ‘두리반’이 기존상권과 유사한 수준의 장소에서 재개할 수 있도록 영업손실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두리반을 점유한 기간 동안 사용한 기초에너지 관련 사용료와 과태료, 벌금 등도 대납키로 했다.

해당 사업을 추진하며 발생한 기존의 고소고발 건은 상호간 전면 취하하기로 했다. 협력업체들이 두리반에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해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에는 시행사인 (주)남전디앤씨가 책임지기로 했다. 또 이 같은 민형사상 분쟁 처리 합의 내용을 불이행할 경우 양자는 상호간 위약금을 1회당 1천만 원씩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두리반대책위는 조인식이 끝난 뒤 마포구청 앞에서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사막의 우물 두리반을 다시 찾은 데 대해 마음껏 기쁨을 나타냈다.

이들은 어느 때보다 컸던 연대의 힘이 두리반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정경섭 진보신당 마포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은 “내가 볼 때 두리반은 작은 공간을 지키기 위해 건국 이래 최대 인원이 함께 모여 연대한 철거현장으로, 그 힘으로 우리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며 “이 연대의 힘이 이후에 더 낮은 곳, 더 소외된 곳으로 이전돼 제2, 제3의 두리반이 우리처럼 승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두리반을 두고 ‘작은 용산’이라는 말을 하기 싫었다”고 운을 뗐다. “작은 용산이라는 말이 재개발의 본질을 드러내기에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사람이 죽어간 아픈 기억이 생각나게 한다”는 것. 때문에 박래군 이사는 “무엇보다 사람이 희생되지 않고 싸움이 정리돼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철거투쟁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합의문에 조인한 것이 처음”이라며 “두리반이 철거투쟁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이날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유채림 작가는 이번 두리반의 승리가 “주거세입자에 비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상가세입자들의 싸움에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또 “두리반에서 농성하는 1년 반 동안 한 차례도 경찰이나 용역에 의한 폭력사태 없이 해결될 수 있었던 건 문화예술인들의 연대의 힘이었다”며 “문화예술인들이 새로운 농성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두리반 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종녀 두리반 사장은 연대해준 대책위 활동가들과 수많은 문화예술인,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쫓겨나 농성하면서 절망과 낙담 속에서 살다가 여러분들이 함께해주시면서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굳게 갖게 됐다”며 “두리반의 승리는 여러분들의 승리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린다. 두리반이 끝나도 끝난 것 아닌 만큼 세상을 바꾸는 일에 늘 함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