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 4명 중 1명 ‘자살 위험’

쌍용차 노동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갈수록 높아져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 중 24.7%가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돼 우려를 낳고 있다.

금속노조는 22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장기투쟁사업장 정신건강 스트레스 조사결과 발표 및 인권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금속노조는 현재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KEC,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한국쓰리엠지회 등의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참석해 인권탄압 실태를 증언했다.


파업 가담정도에 따라 옷 색깔로 구별...화장실 갈 때도 용역이 뒤따라

구미 KEC는 지난 13일, 1년 만에 직장폐쇄를 철회했다. 하지만 KEC 노동자들은 직장폐쇄 철회 이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반인권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KEC지회 김창기 부지회장은 “회사는 희망퇴직을 강요하며 정신순화와 체력단련이란 명목으로 교육을 실시하는데, 이는 교육이 아니라 괴롭혀서 사표를 쓰게 하는데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파업 가담 정도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노란색, 파란색, 주황색옷을 따로 입히는 차별 행위도 존재했다. 또한 권 모 조합원은 “교육시간 중 고개 돌려 시계도 보지 말라고 하고, 화장실 가는데 용역을 붙여 화장실 가는지 확인한다”며 “지금 이런 비인간적인, 비인격적인 교육을 받는 게 파업 때문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보워터 코리아지회의 경우 지난 3월 18일, 밥을 먹고 있는 조합원들을 향해 관리자들이 욕설과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박기열 조합원은 “관리자들이 식당에 몰려와 밥을 먹고있는 조합원들을 향해 ‘모여서 밥먹으면서 회사 쓰러뜨릴 궁리 하시나요?’등의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욕설과 함께 폭력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10년이 넘게 생산현장에 잇었으나, 부서전환을 시켜 청소업무를 시키고 있으며 노조 조끼를 입으면 하루에 한 번 경고장이 날아온다”고 밝혔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역시 문제가 심각했다. 허형길 포스코사내하청 덕산분회장은 “원청은 조폭을 동원해 조합원을 납치, 감금하며 조합탈퇴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를 거부했더니, 나와 아내가 있는 곳 까지 찾아와 해당 조합원과 우리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아산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또한 노동자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아산공장 피해자 A씨는 2년간 조장과 소장에게 반복적인 성희롱을 당해왔으며, 이에 국가위원회에 진정을 넣자 작년 9월 보복성 징계 해고를 당했다. 권수정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피해자 대리인은 “피해자는 주기적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잘 먹지 못하고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며 “특히 농성장에 앉아 있을 때, 가해자가 나와 조롱하고 가는 날은 꼭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 24.6% 자살 위험군
쌍용차 노동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높아져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분석한 이철갑 조선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상당수의 조합원에서 정신건강의 문제가 확인되고 있고 또한 지금과 같은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정신건강의 악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광주전남지역의 3M, 포스코 하청, 보위터코리아, 대우IS 등 조합원 215명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결과, 자살위험도 조사에서 분석대상자 24.7%가 위험군으로 분석됐다. 노조 활동으로 인한 정신 심리적 충격을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의심되는 경우역시 14.4%로 분류됐다. 우울증 역시 조사대상자 중 22.8%가 앓고 있었다. 불안척도에서는 14.5%가 불안상태로 판단됐다.

특히 77일 공장점거투쟁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극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발표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파업 후 쌍용차 노동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율은 42.8%였다”며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52.3%로 더 높아져 구조조정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이 이들 증상을 더욱 높게 했다”고 설명했다.

중증 이상의 우울증 역시 파업기간 중 조사된 1차 심리조사에서는 54.9%로 나타났지만, 3차 결과 80.0%를 기록해 시간이 갈수록 우울증상이 심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상혁 소장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했던 911테러 목격자들이나 월남전에 참전했던 이들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 경과가 좋아졌다”며 “때문에 3차 조사결과에서는 당연히 조사결과가 좋아졌을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지금도 노동자들에게 파업수준의 고통과 충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 가족, 이웃, 사회에서 고립

최근 1년간 쌍용자 노동자 자살률은, 30~40대 일반인구 자살률의 3.74배에 달한다. 1년 간쌍용차 노동자의 심근경색 사망률 역시 30~40대 일반인구 심근경색 사망률에 18.3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인한 사망은 파업 후 충격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악화되며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쌍용자동차를 포함한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가정과 사회, 직장 등에서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이철갑 교수가 조사한 광주전남지부 장기투쟁사업장의 경우,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부부 또는 연인 관계가 나빠진 경우가 30.6%로 나타났다. 가족과 사이가 나빠진 비율은 40%였다.

또한 대상자 중 88.4%가 회사와의 갈등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감이 악화됐다. 사회(언론 등)와 국가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63.3%, 65.6%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이 교수는 “노조 활동으로 인해 가정에서는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가 많이 악화되고 직장 내에서는 탈퇴한 조합원이나 직장상사와 관계가 악화됐다”며 “이는 조합원들이 가족이나 이웃 뿐 만 아니라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점차 고립되어 가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현재 쌍용자동차 조합원 중 부부관계가 악화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95.9%에 달했다. 부부관계가 좋아졌다고 응답한 경우는 4,1%밖에 되지 않았다. 자녀와의 관계 또한 79.0%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또한 동료와의 관계에서는 96.2%가,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94.2%가 악화됐다. 회사의 신뢰는 무려 99.5%가, 국가에 대한 신뢰는 98.4%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신동기 쌍용자지부 조합원은 “집안 가장으로 무능력하고, 국민 대접도 못 받고 살아가는 비참함 때문에 길가에 가다가도 차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구조조정에서의 건강문제는 노동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건강상의 문제가 점점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회안전망의 정비, 해고노동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지원,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조속히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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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면 10명중 3명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