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직업병 인정받은 뜻 깊은 날”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최초 산업재해 인정’...“피해자 우후죽순 일어설 것”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처음으로 인정됐다. 이로서 회사의 ‘청정 반도체’ 주장은 설득력이 잃었고, 또 다른 산재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신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 황유미 씨.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 이숙영 씨의 유족과 현재 투병중인 노동자 5명이 근로복지 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에 대해 “각종 위험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발병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작업환경에서 유해물질과 전리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병된 것으로 본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불승인을 기각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성측이 2006년 6월 뒤늦게 유기화합물 감지시스템을 구축했고, 황 씨 등이 일한 3라인의 시설이 가장 노후화되어 유해화학물질 노출량이 허용기준보다 적었더라도 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백혈병 등에 걸린 5명의 노동자 모두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사실은 인정했지만, 고 황민웅 씨를 비롯한 3명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유해물질에 직접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이 적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산재 승소, 피해자에게 희망 보여준 것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그리고 반올림 등은 비록 부분승소를 했지만, “백혈병이 (산재의)전부는 아니지만,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뜻 깊은 날”이라며 피해 반도체 노동자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전향적 재판결과라고 자평했다.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된 고 황민웅 씨의 아내인 정애정 씨는 “비록 5가족이 함께 (재판을)청구해 두 가족이 승소했지만, 두 가족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본다”며, 부분승소로 많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정 씨는 “이제 피해자들은 우후죽순으로 일어설 것이다”며 “이제는 돈으로도 해결 할 수 없을 거다”며 회사의 행태를 꼬집었다.

또, “이명박 정부 아래 승소 하리라 예상 못했지만, 재판부의 고민하는 흔적을 약간 볼 수 있었다”며 재판결과가 “희망적이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정 씨는 마지막으로 “항소심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 동기부여를 받았다”며, 항소심에서 승리를 다짐했다.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역학조사, 사실관계 확인 등 문제 있어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이 사건은 2005년 유미가 백혈병이 발병하고 2006년부터 싸우기 시작해, 삼성의 온갖 회유와 협박을 견뎌 오며 지금까지 왔다”고 회상했다. 황 씨는 오랜 기간 딸의 백혈병 발병 이유가 작업환경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번 산재 인정은, 황상기 씨의 그동안의 투쟁이 정당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것이기도 했다.

황 씨는 “2007년 9월 처음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역학조사에 삼성직원과 산업안전관리공단 관계자만 들어갔다.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전문조사자가 함께 들어가 진행 했어야 한다”며 공정성이 결여 된 “잘못된” 역학조사라고 주장했다. 황 씨는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직업병으로 노동자들이 피해 받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기관은 삼성 편들기를 그만하고, 삼성은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고 피해노동자에게 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김옥이 씨는(2005년 백혈병 발병하여 투병중 산재신청) 증거 불충분과 유해물질인 TCE에 노출이 적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김옥이 씨는 온양공장에 1991년 입사한 1기생으로 주로 트림폼이라고 절단 절곡 공정에서 일했었다.

김 씨는 이에 대해 “아까 재판에서는 절단 절곡 공정에서는 TCE의 노출이 적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작업 할 때는 절단 절곡하기 전에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TCE를 많이 사용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100% 불량이 발생하고 생산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공정에서 한번 자르고 나면 어떻게 할 수 없다. 그걸 재판부는 모른다. 이야기를 해도 자기들이 그 공정을 안 해 봤기 때문에, 몰라서 그런 판결을 내렸다고 본다”며 재판부가 공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당시 온양공장은 장마철에 지붕이 무너져 앉을 정도로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유해물질이 과연 안전하게 이용 되었는지 의문스러운 건 당연한 거다”며, “당시 공장상황은 지금의 세련된 반도체 공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보도자료를 통해 “‘그 어떤 알권리도 보장되지 않은 일터에서, 노동자가 입증할 수 없는 정보가 없는 현실’, ‘개인질환이라는 반증이 없다면’ 등의 기존 판례 취지를 보더라도 고 황민웅, 송창호, 김옥이에게 기각 판정을 한 것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기흥공장에서 95년부터 하정업체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고 황민웅 씨가 유해한 환경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관계와 다르다. 재판과정에서도 증거를 제출했다. 황민웅 씨는 백혈병이 걸릴 당시까지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사실관계를 가지고 기각한 건 부당하다”고 전했다.

덧붙여 “반도체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람들은 모른다. 이름 모를 화학물질이 쓰이고, 보건화학자도 이 많은 화학물질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모두를 알지는 못한다. 산재 인정받은 분들은 그나마 증거가 많은 사람들이다”며 현행법에서 “노동자에게 너무 많은 인증 책임을 부여하는 건 과도하다. 산재법이 폭넓게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한편, 23일 오전 11시 30분 삼성본관 앞에서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씨와 현재 투병중인 한혜경 씨 어머니 김시녀 씨 등이 삼성 서초동 본관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과정에서 경비원과의 마찰이 생겨, 경찰이 피해자 가족을 연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은 1인 시위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시위라며 해산 경고 방송을 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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