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걸린 삼성 백혈병 판결, ‘산재 절차’만 개선 됐어도...

노동자가 나서서 ‘의학적 입증’해야 산재인정...조사과정은 비공개

지난 23일, 법원이 처음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일부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면서, 산재보험 승인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백혈병 등과 같이 질병이 느린 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경우,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번 백혈병 피해자들의 경우 역시 기본적으로 만 3년에서 4년까지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 해 왔다. 또한 업무상 질병이라는 의학적 연관성을 확인하는 과정 또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산재 승인 절차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노동자가 나서서 ‘의학적 입증’해야 산재인정...조사과정은 비공개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27일, SBS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이번 판결에 대해 “반도체 노동자들의 경우 본인이 무슨 화학물질을 사용했는지 거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산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번 판결은 그분들에게 물꼬를 터준 소중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긴 시간을 근로복지공단과 다투며, 결국은 법적 싸움까지 가야하는 피해자들에게 산재 승인절차 제도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특히 절차에 있어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더욱더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공유정옥 연구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자체적으로 원인이 뭔지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그게 얼마나 정확하게 제대로 조사됐는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며 “무엇을 조사하고, 무엇을 찾지 못한 건지 공개가 되지 않아 어떤 결과가 나와도 피해자들이 승복하기 어렵고, 기업의 영업비밀을 이유로 정부 기관이 갖고 있는 정보조차도 공개하지 않는게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때문에 노동건강연대와 참여연대 등은 27일, 국회에서 ‘삼성백혈병 사건을 통해서 본 산재보험법 개정방안 토론회’를 열고, 산재 승인 절차의 개혁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신청에서부터, 산재신청 후 절차까지의 전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설명했다. 우선, 산재신청 접수 이전부터 노동자들은 해당 질병을 직업병으로 의심하지 못하며, 의심한다해도 산재신청을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또한 산재신청을 하려해도 산재보험 신청서 양식에 ‘사업주 날인란’이 있어 접수하기도 전에 사업주의 회유나 방해 등으로 산재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산재신청 이후에도 재해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각종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청구권자가 유족인 경우, 업무 자체를 알 수 없으며 청구권자가 재해당사자라 해도 어떤 물질이 어떻게 노출됐는지 다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가 자신이 사용한 물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업주 관리하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나 과거 작업환경측정자료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함에도, 근로복지 공단은 이를 바탕으로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역학조사와 재해조사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존재한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 백혈병 산재신청에 따른 역학조사 과정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좀처럼 밝혀내기 어려운 백혈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면밀한 조사라기보다는 사업주와 사전에 합의된 날짜와 시간에 현장에 들어가 공기 중 농도를 한번 재보았다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재해조사 과정역시 철저한 비공개여서, 재해노동자는 최종적으로 승인 여부만 일방적으로 통보받아야 한다”며 “또한 회사측이 영업 기밀을 주장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최종 처분이후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더라도 비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의료기관, 산재보험에 지정되는 당연지정제도 실시해야

때문에 이종란 노무사는 △재해 조사과정에서 당사자와 당사자 추천 전문가의 참여 보장 △재해 조사과정에서 사업주가 제출한 자료와 역학조사 과정 투명하게 공개 △불시에 현장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 개정 △근로복지공단이 혹은 담당 조사관이 사업주 눈치를 보며 재해조사를 부실하게 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견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그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때문에 현행 직업성 암 승인율이 0.1%에 지나지 않아 무엇보다 산재보험 인정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재보험 신청 간소화에 대한 요구도 제기됐다. 공유정옥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산재를 인정받는 절차가 훨씬 간소해져야 한다”며 “이번처럼 3~4년 소송까지 가서 인정을 받으면 치료시기를 놓치고, 피해노동자들과 가족들의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통은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또한 제도개선이 가능하다면 업무와의 관련성을 따지기 전에 진료비나 생계 부담 없이 치료를 받고, 다시는 이런 사람이 생기지 않아야겠다는 위지의 예방적 차원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역시 산재보험 청구 및 급여 제공 절차에 대한 개선 방안을 내 놓았다. 임준 집행위원장은 “재해노동자가 반드시 산재를 신청해야만 급여 절차가 시작되는 제도를 바꾸어야 하며, 이는 건강보험처럼 의료기관에게 산재 환자의 청구를 대리하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의사가 직업관련성에 대한 평가가 요구되는 재해노동자를 진료실 또는 응급실에서 만나게 될 경우, ‘건강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 ‘산재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를 일정한 기준에 의거해 분류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임준 집행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산재환자가 산재임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데, 제도 개선을 통해 근로복지공단 또는 제3기관에게 반증의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 한다”며 “이러한 제도가 되려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에 지정되는 당연지정제도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