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중집, 한진중 지회 책임 묻지 않았다

“잘못된 합의” 결정, 정리해고 저지투쟁 계속...갈등 불씨는 여전

지난 27일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채길용)와 사측의 업무복귀 합의를 두고 조합원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속노조가 이후 투쟁을 두고 고심하는 모양새다. 특히 정리해고 투쟁 주체를 어떻게 새워낼 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금속노조는 28일 오후 2시부터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를 열고 향후 한진중공업 투쟁 방향을 논의했다. 첫 번째 안건으로 상정된 한진중공업 투쟁건에 대해 금속노조 중집은 노사가 합의한 ‘노사협의 이행합의서’를 ‘잘못된 합의’라고 규정하고 이후 정리해고 철회 사수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진중공업에서 상경한 조합원들이 28일 열린 금속노조 중집에 참관했다.

금속노조 중집, “한진중 합의는 잘못된 합의”

채길용 지회장과 이재용 한진중공업 대표이사는 지난 27일 오후 1시, 영도조선소 식당에서 ‘노사협의 이행합의서’에 서명했다. 해당 합의서에는 △해고자 중 희망자에 한해 정리해고 이전 희망퇴직 처우 적용 △형사 고소고발 및 진정 건 노사 쌍방 취하 △지부 및 지회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최소화 △조합원에 한해 징계 등 인사조치 면제 노력 △김진숙의 퇴거는 노조에서 책임 △타임오프 및 현안 문제는 법 테두리 내에서 전향적으로 노사가 계속 합의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노사 합의서는 지금까지 190여 일 동안 노조가 요구해 온 ‘정리해고 철회’ 내용이 배제된 것으로 사실상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꼴이 돼 버렸다. 때문에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들은 노조의 업무복귀방침에 반발하고 나섰으며, 지회의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복귀방침을 공개했으며, 노사 합의 이후 1시간 만에 강제퇴거집행이 진행됨으로써 갈등이 증폭됐다.

특히 조합원 의견 반영 절차가 생략된 채 진행된 노사합의서는 채길용 지회장에 대한 ‘직권조인’ 논란 등을 불러일으켰다. 금속노조 역시 중집회의를 통해 ‘잘못된 합의’라고 규정한 상태다.

지회장은 이번 합의를 ‘노사 교섭’이 아닌 ‘노사 협의회’의 형태로 진행했다. 노사 협의의 경우, 노사 교섭처럼 금속노조 위원장과 부양지부 지부장의 동의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아, 실제로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은 지회의 합의내용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금속노조 규약에 명시 된 바와 같이 노사 협의회는 정리해고 등의 고용문제 사안을 다룰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규약 37조는 조합원 고용과 관련한 사항은 단체협약에 의해 규정돼야 하며 노사협의를 통해 결정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또한, 규약 73조에는 노조 소속 사업장단위는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노조 위원장 동의 없이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다룰 수 없도록 돼 있다. 금속노조 중집은 이 같은 근거로 이번 합의가 ‘잘못된 합의’였다는 점에 동의 했다.

때문에 금속노조 중집은 이후 정리해고 투쟁을 사수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를 위해 현재 대책위를 보강, 강화하고 예정대로 희망의 버스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6월 29일, 금속노조 영남권 조합원들은 부산역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투쟁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금속노조 중집, 한진중 지회 집행부 책임 묻지 않아
비대위 구성 등 현장 갈등 상황은 여전


그러나 합의 과정에서 생겨난 지회 집행부와 조합원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이를 풀어나갈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지회의 합의가 잘못된 것은 알지만, 노노갈등이 확대 돼 조합원이 등을 돌리면 고립된 싸움이 된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산자, 죽은 자를 가르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정리해고 투쟁의 성격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한정적인 투쟁동력도 발목을 잡고 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은 총 800명이지만, 공권력 투입 시 남아있던 조합원은 100여 명에 불과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회 집행부에 대한 처분과 배척은 조합원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금속노조 내부의 시각이다.

이런 이유로 28일 금속노조 중집은 ‘잘못된 합의’라고 규정했지만 그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회 집행부에 묻지 않았다. 때문에 금속노조 중집 결정은 비록 잘못은 있었지만 기존 지회 집행부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고 투쟁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일방적인 합의로 논란을 일으킨 지회장 등에 대해, 금속노조 차원의 대책과 수습이 논의되지 않은 채 ‘투쟁 사수’가 이루어질 지는 미지수다. 이미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일부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조합원과 85호 크레인을 버렸다”며 지회 집행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음을 밝히고 나섰다. 게다가 지회의 이번 합의에 반발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조의 교통정리 방식에 따라 투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이 당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저지투쟁을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은 상태임을 분명히 강조한다”고 밝혔음에도, 현장 투쟁주체의 문제를 금속노조가 해결하지 않고 서는 힘겨운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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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 김진숙 ,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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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냅시다

    노사 문제 정말 어려운 문제 입니다. 한진 노,사간의 합의가 있었다면...서로 의견도 존중을 해주어야 할 것 같네요. 노조원 개개인의 가정문제, 경제문제 등을 고려해보세요. 당사자간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 부산사랑

    노사간 이루어진 합의를 존중해 줍시다. 제3자가 나서는 것도 보기 안좋습니다. 이제 부산경제를 살리는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 까요

  • 노동자

    야 미치 알바들아 댓글 아무나 달지 마라. 노동자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며...

  • skrmsp

    한진집행부는 조합원을 버렸다.그래서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금속노조 차원에서 제명처리 해야 합니다.
    합의내용은 사실상 백지 투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