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재벌이 지배하는 나라”

[인터뷰] 한진중공업 노동자, '노사합의 무효, 정리해고 박살 투쟁!'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파업을 철회하고 노사가 합의했다는 뉴스가 27일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측과 교섭이 시작되자 지회가 정리해고 대신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고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곧이어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사실과 다르다며 지회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노사합의?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조합원들, 85호 크레인 도로 건너 노숙농성 지속


그 뒤 법원의 강제집행과 용역깡패에 밀려 공장에서 쫓겨난지 3일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85호 크레인이 마주보이는 도로 건너편 길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왕복 8차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모기에 시달리면서도 아직 7명의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버티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힘들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겠냐며 멍하니 85호 크레인을 바라보는 50대 노동자가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85호 크레인에서 길바닥에서 함께 잠든다.

“언론을 보고 알았습니다. 교섭내용을 가지고 조합원들에게 찬반을 묻기로 했었는데, 현 집행부가 조합원을 속인 겁니다. 지회에서 파업철회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의원들이 노조사무실로 몰려가 ‘절대 안된다’고 말렸습니다. 나중에는 해고자 비해고자 할 것 없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노조 계단에 주저앉아 잠을 자면서까지 막고자 했는데, 팩스로 기자회견문을 보냈는지 언론에 파업철회 소식이 막 뜨더라구요. 그러다 얼마 안 있으니까 노사 합의문이 나오더라구요. 이미 교섭에서 합의문이 나온 상태였던 것 같아요. 물론 내용과 관련해서 조합원들에게 어떤 말도 없었죠. 우리 조합원들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정하는 사람이 없어요.”

문영복 씨(51)는 85년 25세의 나이에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처음 노동조합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청년,
“우리가 왜 쥐똥 섞인 꽁보리밥을 먹어야 하나”


“섬진강이 흐르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한진중공업에 입사하면서 부산으로 왔습니다. 6개월 회사 직업훈련소를 수련하고 정식 출근을 했는데 그때는 작업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그래도 한진중공업이면 대도시 부산에서도 큰 기업이었는데, 임금과 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큰 회사에 식당 하나 없었어요. 회사에서 주는 쥐똥 섞인 꽁보리밥 도시락을 먹으면서 일했으니 말 다했죠. 그런데 처음엔 다 그렇게 사는 건 줄로만 알았어요. 나중에야 ‘우리가 짐승이냐 돼지냐. 우리가 왜 쥐똥 섞인 도시락을 먹어야 하냐’며 도시락을 집어던졌죠.”

그런 그가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해온 것은 입사한 지 1년이 넘어서면서부터다. 월차를 회사 마음대로 정하는 것에 반발해 관리자와 싸움이 붙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형님이 비밀스럽게 귓속말로 권한 것이 대의원 출마였다. 예상치도 못하게 덜컥 대의원에 당선이 된 뒤 공장 정문에서 출근투쟁을 하던 해고자들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새롭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때 3명의 해고자가 정문에서 어용노조 간부와 사측 관리자들과 매일 싸웠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김진숙 지도위원이에요. 대의원은 됐지만 왜 그렇게 싸우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알음알음 연락을 해서 몰래 만나게 됐죠. 그 뒤부터 노동조합도 공부하고 철학도 공부했었죠.”


“사측 관리자들 모르게 조심조심 라면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해고노동자 성금모금을 하고, 그 돈으로 해고자들이 만든 유인물을 몸속에 숨기고 출근해 옥상에서 뿌리기도 하고, 사람들 없는 시간을 골라 현장 여기저기 던져놨었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사측 관리자들에게 활동이 노출되자 미행이 붙고 협박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엔 각종 자재를 필요한 현장으로 운반하던 일을 하다가 그 때부터 몇 년에 한 번 꼴로 계속 부서를 옮겨 다니는 처지가 됐죠.”

형님, 친구, 아우들 얼굴 떠올라
“쪽팔여서라도 갈 수 없다”


6개월을 파업을 해도 회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고, 결국 노동자들은 크레인만 남겨둔 채 공장밖으로 쫓겨났다. 거기에 노조 지도부가 직권으로 사측과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합의까지 해 노조의 체계가 무너진 상황이다.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문씨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후배 조합원이 웃으며 ‘형님, 그냥 버티면 되는거죠?’라고 농을 던지자 ‘나만 믿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제가 정리해고 명단에는 없지만 이렇게 투쟁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저 자신을 위해섭니다. 노조가 없으면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있으나마나한 노조의 조합원이라면 일하는 현장에서 너무 힘들 겁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물론 인간의 권리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회사 관리자들의 노예처럼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노조 깃발 때문입니다. 한진중공업 노조를 힘있게 지켜내고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저의 형님, 친구, 아우들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그들을 두고 뒤돌아설 수가 없습니다. 사측에서는 ‘업무복귀하라’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지만 쪽팔려서 갈 수 없어요.”

인터뷰 도중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말끔한 사복차림의 50대 아저씨가 김 씨 앞으로 와서 인사를 건냈다. ‘자주 와서 얼굴도 보고 하세요’라는 문씨의 말에 어딘가 모르게 쭈뼛쭈뼛 어색한 웃음으로 ‘애들 눈치가 보여서...’라며 말을 흐리는 그 남자. 정리해고 명단에 오르지 않은 그는 현장으로 복귀해 사측으로부터 교육을 받는 중이란다. 그래도 길거리에 노숙을 하며 동료들이 버티고 있다고 하니 걱정 반 미안함 반으로 이곳을 찾았으리라.

“6개월 파업을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복귀자들이 생길 때마다 용서가 잘 안 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은 잘 안 보이는데 가족들의 생계를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인 거죠. 지금도 그 동료들한테 연락이 자주 와요. 걱정된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보고 싶다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괴로운 심정 아니겠나.”

“나만해도 6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어요. 월급명세서에 ‘0원’이라고 찍혀 나오더라구요. 그래놓고 맨 밑에 수고했다는 문구는 뭐하러 찍어놨는지... 결국 보험을 해약하고 대출을 받아 생계를 잇는 상황이다 보니 어제 아내가 전화로 ‘우리 신용불량자 되는 것 아니냐’며 한 걱정을 하더라구요. 말을 자상하게 못하지만 많이 미안하죠. 투쟁한다고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는데... 한 달 전에는 아들놈이 휴학하고 군대를 간다길래 얼굴을 봐야겠어서 집에 들어갔어요. 아빠 된 도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아무런 불평 없이 입대하는 아들 뒷모습을 보고 맘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재벌 총수가 지배하는 나라”
MB정권 4년, 자본가의 힘 몇 배로 커져



국내 조선업계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수주실적이 날로 늘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업계 4위로 알려진 한진중공업이 3년째 수주가 0건 이라고 한다. 그런데 새로 세운 필리핀 공장은 3년치 물량을 수주했다. 그리고 주주들에게 174억 원의 배당금을 나눠주고 임원의 연봉을 1억씩 올려줬다고 한다. 이런 기업이 어렵다며 노동자들을 반드시 해고시켜야 한다고 버티고 있다.

“계획적이고 고의적입니다. 올 상반기 조선업종 흑자 규모가 엄청납니다. 그런데 유독 한진중공업만 3년 동안 수주를 못했다는 걸 누가 믿겠습니까. 한진중공업은 타 조선회사와 비교해 임금 수준이 60%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70%가량이 하청노동잡니다. 그러면 가격 측면에서 다른 조선사 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는 거 아닙니까. 반면 작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필리핀 공장은 배 60척, 약 3년 작업물량을 수주했다고 합니다. 기술력이 부족해 처리가 어려운 물량인데 그렇게 한 것은 그 수주물량의 일부가 여기 영도조선소 물량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벌 총수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국가기관의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 한진중공업 파업 또한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것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대물림 되는 그들의 부과 그에 따른 권력이 언제까지 계속 될 지 모르나, 이번엔 일부 국회의원들이 조남호 회장에게 자존심이 좀 상했나보다. 그래도 떳떳하게 버티는 재벌의 문제를 문씨는 한진중공업의 태생부터 조목조목 따졌다.

“한진중공업은 조남호 회장의 것이 아닙니다. 대한조선공사는 원래 국민의 돈으로 만들어진 국영기업이었어요. 게다가 국가에서 금융과 정책 측면에서 각종 특혜를 주어 한진중공업이 이만큼 커온 겁니다. 그럼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겠어요. 다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아닙니까. 조남호 회장이 한진중공업을 처음부터 자기들 것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그리고 자기들이 열심히 일해서 기업을 이만큼 키웠다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경유착을 넘어 재벌 총수가 지배하는 나라가 돼버렸어요. 오죽하면 한나라당 김형오 국회의원 조차 자신과의 면담도 거부하는 조남호 회장을 비판하고 나섰겠어요. 4대강, 미친교육, 실업, 언론장악 등 MB정권 4년간 많은 것이 망가졌지만, 제일 무서운 건 자본가들의 힘을 몇 배로 키워준 것, 바로 그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확인된 85호 크레인에 대한 사측과 경찰의 강제진압 조짐은 없지만 언제든 한진중공업 파업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성은 여전하다. 용역과 경찰병력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회 지도부가 투쟁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지회가 크레인 농성 철회를 책임진다고 사측과 합의한 것은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저들한테 노동자 목숨이 어디 목숨입니까. 진압한다고 하면 사실 용산참사 때보다 더 쉽겠죠. 하지만 강제진압에 나설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해서 크레인 위의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당당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몫이죠.”

인터뷰 마지막에 그 50대 노동자가 말했다. 왜 힘들고 지칠 때가 없었겠냐고. 불안하고 초조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고.

“이제 악밖에 남은 게 없어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누가 죽든 끝까지 가는 거예요. 다른 생각은 할 여유도 없어요.”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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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바이러스제거

    눈에는눈 이에는이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야 진정한 신도가 아닐까? 소아무개 교회 신도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살지않고 맘대로 사는 것인가? 재벌이 힘을 몇배로 키우듯이 노조도 힘을 키워라 어떻게? 투표 똑바로 하고..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머리가 있으면 생각해 봐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수있는 그날까지 투쟁하라 힘을 키워라 그리고 재벌을 지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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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가가 지배하는 신종 독재공화국 맹박 공화국 속에 노동자들은 무고하게 죽고있다니 참을 수 없습니다.노동자동지의 용기있는 투쟁정신을 본받음을 다시한번 내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박,전통식의 독재회귀적 자본운영은 절대 용서할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