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까지 부는 유성기업 ‘민주노조 사수’ 바람

단식 농성중인 이구영 지회장, 엄기한 부지회장을 만나다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조계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도심을 헤매다 잠시 발길을 멈춰 쉬러 오든, 숲 속을 헤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불법을 만나러 오든, 신경을 자극하는 자동차 경적소리에도 한가득 퍼지는 절의 향에 두 손 모아지며 몸과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렇게 꾸역꾸역 모인 사람들이 뜨거운 한 낮 처마 밑 너른 그늘 쉼터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고, 그 한편에 파란색 천막으로 단식 농성장이 차려졌다. 경찰에 쫓겨 충남 아산공장에 조합원들을 두고 서울로 올라온 유성기업(금속노조 소속 유성기업지회) 이구영 영동 지회장, 엄기한 아산 지회장은 5일로 단식 7일차다.

매일 아침 몸을 씻고 대웅전과 탑을 돌며 마음을 다스리고, 바람을 되뇌어 본다는 이들. 농성장에 발을 들이면서, 숨이 헉헉 막히는 무더위에 어질어질 하지 않을지 마음이 쓰였는데, 한가득 웃음 지으며 반갑게 맞아준다.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았는데...경찰에 잡히느니 농성을"
웃음바다 농성장, “식탐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단식 농성?”


‘농성장에 사람들 많이 찾아와요?’ 하고 물으니 주저 없이 그렇단다. 연대 노동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국회의원들도 온단다.

5일 취재차 갔을 때도, 서울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과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모임 소속 여성이 둘레둘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대 온 이들에게 대접된 음료는 충북 정식품 노동자들이 만들어 박스 채 가져온 ‘희망의 베지밀’. 하지만 이들은 단식 농성자 앞에서 차마 마시지 못한 채 돌아갔다.

“오늘 아침에 조계종 총무가 방문했어요. ‘불변하거 없냐? 날도 더운데 각오하고 올라오셨을 테니까 잘 버텨서 해결됐으면 좋겠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 하셔라’ 하고 갔지요. 우리 농성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없어요. 다만 화장실에 혼자 못 가니까 조합원과 가죠. 조계사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데 사복 경찰들이 감시하고 있어요. 하도 얼굴을 봐서 이제 다 안답니다” -이구영 지회장

22일 노조원-경찰과 야간충돌이 벌어진 뒤 경찰의 추적을 피해 이곳 조계사로 들어왔다. 5월 18일부터 시작된 노사 파행 이후 아직 아무 것도 해결 된 게 없다. 경찰병력에 끌려 나와도 되레 파업 안 하고 공장으로 일괄 복귀해서 일 한다고 했는데, 회사는 개별 복귀 시키며 노동자를 갈라치기 했다. 수배, 구속되는 노동자만 늘고, 노동부, 검찰-경찰은 불법을 저지는 CJ시큐리티 소속 용역경비원들과 회사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22일 아침, 회사가 물량 반출을 이유로 용역경비원을 동원해 집단 폭행해 혼비백산했던 그 날, 쇠파이프가 직선으로 날아와 광대뼈에 꽂히고, 무엇으로 맞았는지 기억도 못 하지만 두개골이 함몰되어 수술한 동료들이 아직 병원에 있다. 경찰에 맞아 전치 4주 진단을 받은 동료, 연대 왔다가 또 경찰에 맞아 머리가 찢어진 건설노조 조합원은 구속영장이 기각됐음에도 불구하고 재구속 됐다.

경찰에 잡혀 조사 받고 감옥으로 가느니, 질기게 버텨 민주노조를 깨려는 회사-현대차, 정부와 맞서는 방법을 선택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싸움에 노동부, 경찰이 공정하지 않고 편파적인 대응을 하고 있어요. 조합원이 용역과 경찰에 맞아 다쳐 나가고 있는데,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조 간부들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해 말을 묶어 놓고, 조합원들은 복귀시키지 않고. 서울에서 단식 농성 하면서 이 사태를 알려내고자 합니다” -이구영 지회장

“수배되어서 도망치거나 체포되느니 거점을 잡아서 조합원들의 투쟁 결의에 도움이 되고자 단식 농성을 시작했어요. 5월 24일 경찰병력이 들어와 전 조합원을 연행했고, 김성태 아산 지회장과 김순석 쟁의부장을 구속했죠.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노조 간부도요. 너무 아쉽고 보고 싶습니다” -엄기한 부지회장


그래도 이들은 웃었다. 혈압이 높은 이구영 지회장의 건강을 걱정하다가도, 엄기한 부지회장의 한 마디에 농성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배고파요(웃음). 나는 두 끼만 굶어도 쓰러지는 사람이야. 우리 집이 어렸을 적 가게를 했는데, 가족들이 나더러 보릿고개 때도 안 굶을 사람이라고, 남들이 아카시아 따 먹을 때, 나는 아이스크림 먹었다고. 나는 밥 굶는 거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회사 관리자들도 식탐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단식 농성 하냐고 할 걸?(웃음)”


아들 못 보고 발걸음 돌린 어머니
‘민주노조 사수’는 충남 아산에서 서울로


41세의 이구영 지회장, 43세의 엄기한 부지회장이 단식을 하자 가족들은 응원하면서도 걱정한다. 특히 이구영 지회장의 모친이 2일 농성장에 찾아왔는데, 그 전날 농성장에 왔다 차마 아들을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 소식을 들은 이구영 지회장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토요일 저녁에 어머니, 여동생, 매제, 우리 아내와 8살, 11살 아들 둘이 찾아왔죠. 전날 왔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참... 아이들은 ‘아빠 여기 왜 있어? 집에 언제 와?’ 하고 물었죠. ‘아빠 회사 일이 안 끝나서 집에 못 가고 있는 거니까 끝나는 대로 빨리 가겠다’ 했죠. 눈에 많이 밟힙니다. 아내는 영동에서 가족대책위 활동을 열성적으로 하죠. 분하니까. 그런데 단식하는 건 불만스러워 했어요. 몸 상할 수 있으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죠. 어머니는 ‘아들이 힘든 데 도와줄 수 없어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우리 아들 믿으니까 힘내고, 꼭 이기라’고 하셨죠” -이구영 지회장


“아내가 제일 처음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단식 할 수 있겠어? 내가 열심히 투쟁 할 테니까 몸 잘 챙겨’라고 말했죠. 아내가 가족대책위 활동을 열심히 해요. 우리 아이들도 아빠 투쟁 지지한답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 촛불집회도 데리고 나가고 해서...” -엄기한 부지회장


이들은 조합원들과 떨어져 있으니,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할 말도 많았다. 조합원들을 굳게 믿으면서도 비닐하우스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모습만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 온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고,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마음속에 느꼈던 회사-현대-정부, 용역경비원과 경찰에 대해 느꼈던 분노와 우리의 동지애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당당하게 정문으로 일괄복귀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 조계사에서 조합원과 함께 투쟁한다는 거 잊지 말고, 두 손 꼭 잡고 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구영 지회장

“노조의 태생은, 노동자 개별이 회사와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단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지요. 회사가 50여 년 동안 수천억 원을 벌고, 75명에서 시작한 회사에서 800여명이 일하고, 계열사가 5~6개씩 늘어난 것은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가 있어서예요. 지금 와서 야간에 일하지 말고 잠 좀 자자는 걸 다 무시하고 노조를 아예 없애려고 하는 현실에, 가슴에 피멍이 들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일괄복귀 해야 해요” -엄기한 부지회장


사진 좀 찍겠다고 하자 농성자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자세를 취했다. 속된 말로 ‘언론빨’ 한 번 타보지 않았던 이구영 지회장과 엄기한 부지회장. 이번 유성기업 사태를 계기로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카메라 앞에선 손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모르는 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고 영락없는 노동자라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

그런 노동자들이 손가락을 모아 주먹을 쥐고 공장으로 돌아가고자 투쟁한다. ‘민주노조 사수’의 외침은 충남 아산 유성기업 울타리를 넘어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노조 탄압하지 말고, 민주노조 깨려고 하지 말고 일괄복귀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동부, 사법부, 정부도 노동자 자꾸 밀어붙이지 마세요. 이 사태가 오래 가면 회사에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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