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조합원 믿고 금속노조 믿고 가보자”

[인터뷰] 10년만에 두 번째 정리해고 싸움, 시그네틱스 윤민례 분회장

[편집자주] 반도체 후가공업체인 영풍그룹 계열사인 시그네틱스는 지난 달 13일 32명 노동자 해고예고를 통보한 뒤 한 달 만인 14일 결국 전체 조합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천 380억 원에 순이익 196억 원을 냈다.


경기지부 소속의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이 2001년에 이어 10년 만에 또다시 해고에 맞선 투쟁에 들어간다. 정리해고 강행을 이틀 앞둔 12일 만난 윤민례 시그네틱스분회장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우릴 해고한 회사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2007년 대법원 복직판결로 조합원 32명이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자 윤 분회장을 포함해 복직 못한 29명이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부터 7년간 교섭을 거부해온 회사가 지난 해 9월 갑자기 “경영상 이유에 의해 정리해고를 진행해야하니 해고기준을 협의하자”며 공문을 보내온 것.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이 7월6일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서 열린 '금속노조 총파업 경기지부 파업결의대회'에서 '정리해고철회'를 외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윤 분회장은 회사가 조만간 이런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윤 분회장은 “영풍그룹 계열사는 대부분 지난 10년 동안 사내하청업체를 통한 비정규직 고용을 꾸준히 진행해왔다”고 설명한다. 이어 윤 분회장은 “마지막 정규직 고용 공장이던 시그네틱스 정규직 노동자들을 없애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회사는 마지막 정규직고용 공장을 노렸다

언젠가 닥칠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공문을 받고 회사의 입장을 확인한 윤 분회장은 답답해졌다. 6년 복직투쟁으로 32명이 복귀했지만, 말이 쉽지 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2001년 첫 해고 때는 그래도 다들 젊었지만 조합원들 열 살이나 더 먹었고, 힘들었던 그 시간을 다시 겪어야 한다고 조합원들에게 말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는 윤 분회장.

윤 분회장은 혼란스러웠다. 괜한 고집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조합원들 어렵게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내 결정과 판단이 조합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텐데 내가 과연 이 싸움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나는 준비가 돼 있나? 자기 자신에 여러 차례 되물었다. 윤 분회장인 내린 결론은 “그래, 조합원들 믿고 끝까지 한 번 가보자”였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힘든 상황이 생길 때마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생각을 나눈다. 문제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고 그 과정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조합원 전원이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막막했지만 윤 분회장은 그런 조합원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2001년 해고 싸움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6년 복직 싸움 기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금속노조 때문에 이번 투쟁도 결의할 수 있었다"는 윤민례 분회장은 "금속노조가 갖고 있는 능력과 힘을 알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출처: 금속노조 박향주]
“그래 조합원 믿고 가보자”

시그네틱스 분회는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 전원이 여성이다. 윤 분회장은 “육아나 가사일 등 고민이나 처지도 비슷해 조합원들끼리 서로 잘 이해하고 돕는다. 남성들이 의리 얘길 많이 하는데 정말 긴박한 상황이 생기면 여성들이 의리를 더 잘 발휘한다”며 웃는다.

“지금 고등학생인 큰 애가 7살 일 때 구속돼 영등포구치소에 있었다”며 말을 잇는 윤 분회장은 “그 때 우리 조합원들이 우리 큰 애 유치원 졸업시키고 또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와 주고 했다”고 말한다.

윤 분회장은 “시그네틱스 이모 여럿이 엄마 역할을 대신해 준 것인데 우리 조합원들이라 가능했던 일”이라며 “여성사업장 특유의 자매애, 아줌마의 힘으로 지금까지 온 거 같다”고 조합원들의 결속력을 자랑한다.

이제 두 번째 해고 투쟁을 조합원들이 결의했다. 그리고 이제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윤 분회장은 “조합원 내부의견을 정리하고 난 뒤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오히려 큰 아이가 “엄마 존경하고 그래서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다른 조합원 가족 역시 지난 10년 세월과 회사 부당함을 잘 알기 때문에 이번 싸움을 당연히 이해하고 지지한다.

“엄마 존경하니 밀어주고 싶다”

윤 분회장은 금속노조 이야기도 꺼낸다. “금속노조 없었다면 2001년에 싸움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는 윤 분회장. 그런 금속노조가 요즘 힘이 많이 빠져 있는 것 같아 윤 분회장은 그저 안타깝다. 그는 “힘든 상황이 오래 계속 되다보니 노조에 섭섭한 점도 있었지만 금속노조가 굳건히 서 있기 때문에 6년이나 싸울 수 있었고 이번에도 투쟁을 결의할 수 있었다”며 “금속노조가 갖고 있는 능력과 힘을 알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조합원들도 힘을 낼 수 있다고.

윤 분회장은 산별노조의 중요성도 지적했다. 윤 분회장에 따르면 시그네틱스에는 회사가 만든 기업노조 조합원과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이 나뉘어져 있다. 윤 분회장은 “만약 산별노조가 아니었다면 그동안 우리는 회사에 교섭요구조차 못했다“고 강조한다.

무자비한 회사의 처사에 대해 “영풍그룹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오히려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당당히 말하는 윤 분회장. 하지만 그는 “6년의 복직투쟁 끝에 어렵사리 다시 일하게 된 우리 조합원들을 또 내쫓으려 하는 영풍그룹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한다.

  경기지역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윤민례 시그네틱스분회장(사진 가운데)과 지회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투쟁승리'를 외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박향주]

윤 분회장은 “지금도 충분히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으면서도 공장 내 노동자들을 전원 비정규직으로 돌려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영풍그룹을 그냥 두면 안 된다”며 “대기업의 이런 횡포를 정부는 제대로 벌하고 특히 영풍그룹에 대해서는 특별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을 잇는다. 실제 시그네틱스는 지난해 매출 2천 380억 원에 순이익 196억 원을 벌어 들였다.

“금속노조가 씩씩해야 우리도 힘 낸다”

그래서 윤 분회장은 이번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고 싶다.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영풍그룹을 제대로 혼내주고 싶고 영풍그룹 내 다른 노동자들이 “아, 저래서 민주노조가 필요하구나. 금속노조가 잘 하는구나” 느끼게 하고 싶다. 영풍그룹 스물 네 곳 24개 계열사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는 이들뿐이다. 한국노총 두 곳을 제외하면 나머지 회사에는 노동조합 조합원조차 없다. 윤 분회장은 “영풍그룹 내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들처럼 금속노조에 가입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길 기대한다”고 강조한다.

이들 노동자들은 지난 2001년 8월 9일 새벽 공장을 점거했었다. 그 뒤 회사가 불러온 용역들에게 공장 밖으로 내쫓기기도 했다. 윤 분회장은 “그 때 소식을 듣고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와 줬다”고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도 많이 와서 정확히 몇 명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연대의 힘으로 그 날 정오에 우리는 다시 공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3만 명에 불과했던 금속노조가 이제 15만 명으로 늘지 않았나.” (제휴=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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