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내 인생 바꿔놓은 7.22 대법 판결”

[인터뷰] 전국순회투쟁 때 만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를 내걸고 전국 순회투쟁에 나선 이들. 특히 여기에 동참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2011년 7월 23일은 다시 비정규직 투쟁에 불이 붙는 날이 될 겁니다.” 이들은 새로운 투쟁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호관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지난 해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일이 그저 들뜨고 기뻤던 날이라고 말한다. “2006년부터 일하면서 월차조차 못쓰고 특근도 강제로 하고 특근 없는 날은 청소하러 공장에 나가는 날도 있었어요. 부당한 일이야 말도 못하게 많지만 항의하면 찍히니 엄두도 못냈죠.” 그래서 노조 활동을 시작했고 2008년 업체 변경 과정에서 ‘근속인정’을 거부하는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했다. 하지만 싸움은 졌고, 김 조합원은 상실감에 잠시 노조를 떠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김 조합원에게 대법원 판결은 다시 힘을 내고 싸움을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대법판결은 다시 힘을 내게 한 계기”

이런 분위기 전환은 현대차 전주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김용철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전주공장에 비정규지회를 만들고 두 번 제대로 싸움을 해봤고 작년 싸움이 그 두 번 째”라며 “2백 명이던 조합원이 3백 40명으로 늘었고 다들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지난 해를 떠올렸다. 이곳 조합원들은 울산의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을 벌이던 지난 해 11월, 매일 6시간 파업을 벌이며 생산라인을 세웠다. “우리가 죽기살기로 버티니 회사 관리자들도 우리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김 조합원의 설명이 당시 비정규 노동자들의 기세를 말해준다.

  7월 18일 불법파견 정규직화, 비정규직없는 공장만들기 순회투쟁에 나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출처: 금속노동자 강정주]

무엇보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열의와 의지는 지난 해 11월 현대차 울산 1공장 점거파업 때 나타났다. 정용주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장은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계기”라고 당시 투쟁을 평가했다. 울산 1공장에 같이 있지 못했으나 밖에서 당시 파업투쟁에 함께했던 배재원 조합원은 당시 투쟁 참여를 이유로 해고됐다. 그런데도 배 조합원은 “당시 파업 정말 잘했다. 조합원들이 대거 참여해서 정말 놀랐다”며 “제대로 승리하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한다. 배 조합원은 올 해 2월 해고된 뒤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울산공장 정문 도로에서 늘 집회를 펼치고 있다.

“뭔가 해 볼 수 있다는 자신감”

지난해 대법판결 뒤 11월 세상을 뒤흔든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 때까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 자본은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울산, 아산, 전주 세곳의 비정규 노동자 백 여 명을 해고했다. 울산공장은 3백 명이 넘는 징계자가 발생했다. 이날 순회투쟁에 참여한 이들도 대부분 해고자이거나 정직을 당해 아직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조합원들이었다.

울산공장 징계 여파는 특히 컸다. 정 사무장에 따르면 당시 대규모 징계와 현장 간부들이 모두 공장 밖으로 쫓겨나면서 조합원들이 극도로 위축됐다고 전한다. 지회 집행부 사퇴와 집행부 선출이 늦어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업체 사장이나 소장 눈치도 많이 보고 뭔가 적극적인 활동을 못한다”는 것이 정 사무장이 전하는 울산공장 상황이다.

  순회투쟁단이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정규직 전환을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출처: 금속노동자 강정주]

정 사무장도 회사 징계인 정직기간을 거쳐 지난 5월 현장에 복귀했지만 현장 통제와 위축된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회간부의 현장복귀에 바짝 긴장한 듯, 회사 관리자들은 정 사무장을 쫓아다니고, 조합원들을 만나 얘기를 하려고 하면 정 사무장의 사지를 들어 쫓아내기 일쑤였다. 이에 정 사무장은 “그래서 현장 활동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년 파업 때 비정규 노동자들이 관리자들을 뚫고 1공장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전혀 기대 못했다”고 말하는 정 사무장. 하지만 ‘그들은’ 해냈고 아무도 소송 결과를 기다릴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정 사무장은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던 그 때 마음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첫 마음”

이날 만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위축된 모습은 없었다. 아산공장의 김 조합원은 “해고되고 나니 오히려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싸운다. 부당한 해고인데 내가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산공장에서는 여전히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한 업체에서 6명이 해고됐다. 하지만 해고자들이 똘똘 뭉쳐서 출근길 투쟁을 계속 벌이자 오히려 업체 사장들이 당황하고 있단다.

전주공장의 김 조합원도 현장의 위축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징계자들이 투쟁에 더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소송 접수를 하긴 했지만 소송은 일종의 코걸이예요. 회사 도망 못가게 확 걸어둔. 하지만 소송만 기다리면 10년은 걸릴텐데 그때되면 어차피 정규직 다 없어질거 아닙니까. 정년퇴직자들 나간 자리에 다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판에.”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해고된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이후 투쟁 결의를 밝히고 있다. [출처: 금속노동자 강정주]

그래서 김 조합원은 이번 순회투쟁이 징계자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투쟁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징계자 백 명이 전국 누비고 다니면서 언론에도 나오고 세상도 시끄럽게 해야된다. 그러면서 현장에도 힘이 생기면 회사도 교섭 하자고 나서지 않겠냐”며 “우리가 이렇게 다니는걸 보면 현장 조합원들도 힘을 얻는다. 이번 순회투쟁은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을”

“지난 1년은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11년 동안 현대차에서 일했는데 그 기간보다 지난 1년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그냥 똑같이 출근하고 일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숨을 쉰다는 걸 느끼고 살았으니까요.” 울산의 정용주 사무장은 지난 투쟁의 의미를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서 다시 숨 쉬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되찾기 위해 현장 조직화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다시 벌여야 한다는 각오를 한다. 아산의 김 조합원도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 건 없습니다. 이 버스를 타는 모두 같은 마음일거예요. 정규직 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죠”라고 마음을 다진다.

지난 1년 동안의 투쟁이 이들에게 남긴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 이상 뺏기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동을 걸었던 차가 장애물을 만나면서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들의 얘기처럼 ‘정규직 쟁취’를 향한 열망은 꺼지지 않는다. 23일 서울 양재동에서, 청계 광장에서 이들이 다시 모인다. 아니 더 많은 이들이 모여 쌓인 분노를 분출하고 더 큰 투쟁을 결의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전하고 희망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제휴=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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