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통령이 인정한 연봉7천 1등 신랑감이다”

[인터뷰] 유성기업노조 ‘싱글맨’ 김수종 씨

요즘 시대 연봉 7천만 원 받는다면 1등 신랑감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거짓말로 밝혀졌지만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연봉 7천만 원 받는 고액 연봉자라고 전 국민에게 발표했으니, 이 보다 좋은 일이 있으랴. 누구라도 맞선 주선 한다고 나설 법도 한데 김수종(37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사무장은 아직 ‘싱글’이다.

“여기 총각들 대통령이 인정한 1등 신랑감이네. 우리 피켓 만들어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자. 애들 다 장가보낼 수 있겠네. 사무장도 장가보내고. 좋네. 근데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하고 같이 산다고 말하지 마. 혹시 그것 때문에 결혼 안 한다고 하면 어쩔겨.”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이 정정보도 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반론 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는데, 농성장에 걸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주야맞교대, 포도밭농사...바쁜 김 씨

누구나 그러하듯, 김수종 사무장의 인생에도 몇 번의 인연이 있었다. 지인들의 소개로 맞선도 봤지만 숫기 없고, 시간 없어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봤단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멋쩍게 미소 짓는 김 사무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총각’이었다.

“맘에 드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맞선에서 상대방과 즐겁게 대화 나누고 헤어져도 다음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사실 바쁘기도 해요. 주야 맞교대로 1주는 낮에, 1주는 밤에 일하니까 생활 패턴이 불안정 하죠. 그리고 어머니와 사는데, 아버지가 4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감나무 좀 심어둔 포도밭 농사를 지니까 바쁘죠.”

김 사무장은 야간근무 할 때 농사일을 한다. 아침에 퇴근해 바로 일을 시작하고, 오후 3~4시 되면 잠자고, 밤 10시 출근한다. 2천 평 밭농사를 짓는데, ‘날림 농사’로 어머니 용돈 드릴 정도의 수익이 나온단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서 그런지 김 사무장과 어머니와의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 3남 3녀 중 막내이기도 하고, 형, 누나들은 모두 결혼해 출가했다. 특히 농성이 길어지면서 집에 못가고, 경찰 출석요구서, 회사 가정통신문 등이 집으로 날아오면서 76세 늙은 모친의 걱정은 이만 저만 아니다.

“어머니와 각별하지 않은 것 같은데(웃음)... 충북 영동 집에 혼자 계시는데, 70일 투쟁하는 동안 5번 정도 집에 간 것 같아요. 포도밭 농사도 지어야 하는데 제가 이러고 있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경찰, 회사에서 이것저것 보내니까... 지난 주 일요일에 집에 갔더니 많이 반가워 하셨어요. 아들이 뭐 하는 지 대충 아시지만 정확히는 모르세요. 그냥 회사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정도.”

노조 간부로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김 사무장. 발언할 때 농담을 잘 해 조합원들이 즐거워한다. 며칠 전 노동부 중재로 회사와의 1차 간담회 결과를 보고하던 김 사무장이 발언 도중 ‘엄마 보고 싶어요. 빨리 공장으로 돌아갑시다’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며칠 전 어머니가 계속 전화하셨다. 알아보니 포도밭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집회 사회 보다가 재미로 ‘엄마 보고 싶어요’ 한 게 조합원들에게 마마보이로 보인 모양이다(웃음). 조합원들이 다 들 힘들 거다. 애들 보고 싶고, 마누라도 보고 싶고, 결혼 못한 나는 엄마 보고 싶다고 한 건데(웃음).”


일 끝내고 소주 마시고...일괄 복귀해 다시 일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연봉 7천만 원 거짓말 연설은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았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통령까지 나섰다고 비난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등 가릴 것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밤에 잠을 자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 ‘밤에 잠자고 낮에 일하자’는 요구는 고액 연봉자라는 한 마디에 왜곡되었다.

“나는 대통령이 인정해준 1등 신랑감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연봉 7천만 원? 그 정도 받아봤으면 좋겠네요. 실제 4천만 원 조금 넘게 받아요. 세금이다 뭐다 이것저것 떼면 한 3천만 원? 연봉 3천에 주야맞교대, 아마 결혼 못한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70일 동안 농성하면서 용역경비에게 맞은 동료를 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단다. 동료들은 용역경비 대포차 뺑소니에 오른쪽 다리 근육이 파열되고, 쇠파이프에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고 머리가 깨졌다.

“대포차에 치인 동료에게 전화해서 치료 마치면 농성에 결합하라고 했다. 근데 용역경비한테 맞아서 광대뼈가 함몰됐다. 두 번 다친 건데...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안 좋았다.”


근무 희망서를 노동부, 회사에 냈는데도 회사는 노동자들을 일괄 복귀시키지 않고 있다. 직장폐쇄 기간 공장 안에 ‘어용노조’가 생겼고, 복귀자-미복귀자 사이의 갈등도 생겼다. 회사가 노동부 중재 간담회도 참석하지 않고 회사-노조 와의 갈등을 노동자 간의 갈등으로 몰아가자 농성자들의 분노가 올라온다.

그래도 이들은 ‘민주노조 사수’ 이유뿐만 아니라 공장이 그립고, 동료가 보고 싶어 참고 있단다. 회사가 갈라치기 해도 동료들끼리의 미운정, 고운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복귀한 동료들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회사와 한 편인 사람과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토로하며 어쩔 수 없이 복귀한 사람들이죠. 회사와 한 편인 사람들은 말할 가치도 없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복귀 한 사람들은 밉기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해는 하죠. 빨리 일괄 복귀해서 공장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힘들 때 동료와 소주 마시고, 아침에 퇴근해서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동료들과 어울려 보냈던 시간들이 많이 생각나네요.”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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