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끝에 올라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인터뷰] 울산공장에서 영도조선소로...장창근 해고 조합원

한진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일하다 부산 영도조선소로 배치전환된 조합원 가운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는 30~40명이다. 이들중 대부분은 희망퇴직서를 냈고 현재 7명이 남아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한진 조합원들은 정투위 사무실에서 하루 세 끼 식사를 해결한다. 거기서 선 채로 그릇을 닦는 장창근 조합원을 6일 만났다.

울산공장 직장폐쇄하고 울산지회 노동조합 깃발도 접고 부산으로 내려올 때 심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다들 힘들게 왔는데 대의원 했던 친구들도 있고, 믿었던 동생들도 6월 27일 행정대집행 이후 많이 희망퇴직서를 썼다. 그래도 울산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라 남다른 끈끈함이 있다고 믿었는데 마음이 별로 좋지는 않다.

말을 하면서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는 그의 시선에 지난 시간들이 어른거려 보였다. 거주를 부산으로 옮겼는지, 정리해고 통보받은 이후 가족들 반응은 어떤지 물어보자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잇는다.

아이가 초등 5학년 아들과 3학년 딸, 여섯살 된 아들 이렇게 셋인데 아내와 함께 가족들은 울산에 있고 나는 부산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지금은 본가에는 거의 가지 않고 울산 집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간다. 아내는 별 말이 없고 부모님은 희망퇴직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하셔서 그 후 본가에는 가지 않게 된다. 부모님이나 울산 가족들한테 미안하다.

영도 대동조선에서 5년 일하다가 1996년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울산공장에 발령받았다는 장창근 조합원의 얼굴을 보면 살아온 시간이 그리 평탄치는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처음에는 할 말이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살아온 시간 이야기하려면 하루종일 해도 모자란다며 소리나지 않게 웃는다.

젊었을 때 사고친 것도 있고 정말 열심히 일해서 행복한 가정 꾸리는 게 꿈이었는데 내가 왜 해고됐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회사에게 왜 해고했는지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심정도 있다. 정리해고된 이상 멀고 험한 길이라도 대법까지 가서 정당함을 인정받고 싶다. 울산에서 특수선 쪽에 발령된 사람들 중 나 혼자만 정리해고가 됐다.

울산공장에서 대의원이나 상집을 하기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해고된 것일까. 하지만 부산에서는 묵묵히 일만 했다고 한다.

힘든 거 중 하나가 몸이 성하질 않다. 96년에 입사해서 99년에 회사에서는 아니고 뺑소니 차에 치여서 초진 16주 진단 받고 큰 수술을 받았다. 허리뼈 깎아서 왼쪽 다리에 이식했고 다리가 굽혀지지 않아 지금도 책상다리를 하고 앉을 수가 없다. 거기에다가 2003년 허리디스크로 6~7개월 산재판정을 받았으니 다리도 시원찮고 허리도 시원찮으니 잘린 거 아닌가 괜히 혼자 있다보면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장 조합원이 집회 때 대오 중간에 앉지 못하고 맨 뒤에 서 있거나 하면 싸울 의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어중간하게 뒤에 서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끝까지 싸울 거고 스스로를 믿으니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정투위 사무실에서 식사시간이 끝난 뒤 선 채로 그릇을 닦는 장창근 조합원.

6월 11일 용역들과 부딪쳤을 때 왼쪽 다리를 용역들한테 밟혔다. 싸울 때 마음껏 싸울 수 없는 내가 밉고 동료들에게 해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날 동료가 부축해서 4층 생활관에 올라갔는데 회사한테도 화가 나고 나한테도 화가 나고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갈까도 생각해봤다.

맨 꼭대기 올라갈 생각도 해봤는데 아픈 사연 많은 만큼 더 강하게 싸우고 싶다. 배부르면 움직이기 싫을까봐 먹는 것도 덜 먹고 그랬다. 배가 고파야 독기를 품고 싸울 수 있는 거 아니겠나.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정투위 사람들과 김 지도 그리고 나를 위해 정리해고 철회될 때까지 싸우겠다.

최근 2년간 성당에서 신부님을 만나 성령묵상이라는 걸 했다. 그 뒤 세상에 불만스럽던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이 편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묵주를 만진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지금 조남호 회장은 회사가 어렵지 않은데도 정리해고를 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돈과 권력과 용역들을 앞세우는 회사를 보면 분통이 터진다.

그가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보여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도 모순이 너무 많다며 그래도 가족들이 있으니 거기서 힘을 얻는다고 아내와 아이 이야기를 한다. 살짝 눈가가 젖는 것 같았으나 눈물을 보이는 대신 아픈 침을 삼켰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이 편지를 한 장 썼더라고요.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5월 6일 지노위에서 기각되고 그 분위기를 알았는지 5월 8일 어버이날이라고 딸이 쓴 편지 중에 첫 구절이 "아빠, 캄캄한 곳을 보지 말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세요" 이렇게 시작하더라고요.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가슴이 뭉개지기도 하고, 어떤 순간도 힘들 때 쓰러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내가 저한테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 왜 나한테는 무뚝뚝하노" 하고 한번은 묻더라고요. 대수롭지 않은 듯 대충 못들은 척했는데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한번도 못했습니다. 내 만나 고생 많이 하고 그래서 미안하고 아내와 아이들 사랑하고 복직해서 함께 웃고 싶습니다.

  배부른 게 싫다며 하루 한 끼만 먹는다는 장창근 조합원.

실업급여를 받고 있으나 그것으로 아이 셋 키우기란 쉽지 않다. 그의 아내는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하면서 가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실업급여는 근속연수나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100만원이 채 되지 않거나 조금 넘거나 그렇다.

이날 저녁 집회 때 누군가 빵과 캔커피를 가득 갖고 왔는데 말없이 빵을 건네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여전히 집회 뒷자리에 다리를 펴고 앉거나 서 있을 장창근 조합원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날이 85크레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웃으면서 내려오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은 이렇게 모든 이의 고공이기도 하다. (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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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 85호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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