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강제 퇴거에 쫓겨난 노숙인들, 어디로?

서울역 노숙인들의 밤...‘분노’만 남아

“옷은 냄새나고, 몰골도 말이 아니고. 어쩌다 돈이 생겨 밥 먹으러 식당 가도 밥을 안줘. 그래서 맨날 여기서 컵라면으로 때워. 여기 있는 사람들 손으로 한번 밀어봐. 다 픽픽 쓰러질껄? 그런 사람들보고 밖에서 자라고? 기자 양반이 하루라도 길에서 자봐. 그 심정 이해할거야. 작년 겨울에도 밖에서 자다 얼어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밀어내면 밀리는 진짜 ‘사회적 약자’ 노숙인들...‘분노’만 남아

한국철도공사가 서울역 내 노숙인 퇴거를 집행한 8월 22일 저녁. 서울 역사 바깥에는 여느 때와 같이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공사 측은 사실상 8월 1일부터 강제 퇴거를 진행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여론을 의식해 8월 22일로 연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8월 1일이든, 22일이든 노숙인들은 이제 여지없이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밤이슬을 맞아야 한다.

서울역의 강제 퇴거는 22일 새벽 1시 30분에 이뤄졌다. 애초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용역 직원을 고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발표했지만, 퇴거 과정에서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역 직원들의 퇴거 조치에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저항 없이 밖으로 쫓겨나갔다.

하지만 22일 저녁에 만난 노숙인들에게 분노가 남아있었다. 인터뷰를 한 두 차례 거절하다가도, 어느새 몰려들어 서울역 강제퇴거의 부당함을 쏟아냈다. ‘아무리 인터뷰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며 언론에 대한 미움을 말하다가도, 또 한 번의 지푸라기를 잡으며 ‘기사를 잘 써달라’며 당부를 했다.

45년 째 서울역에서 노숙을 해온 한광석(가명, 68)씨는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서도 ‘왕고참’이다. 오랜 시간 이 곳에서 노숙을 해온 탓에, 서울역 노숙 변천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하다.

“신 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구 역사에서 잤어. 거기는 의자가 길어서 편하게 잘 수 있었지. 신 역사가 만들어지고 나서 노숙인들이 그 곳에 들어가서 잘 수밖에 없었는데 의자 한 칸씩 다 팔걸이가 있잖아. 의자에서는 영 잠을 잘 수 없어.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단속도 심해. 우리는 매일 ‘꽃잠’을 자. 꽃잠이 뭐냐 하면은 자다 깨다를 계속 반복하는 거야. 역사에서 자면 4시 30분에 직원이 박스를 치우라고 꼭 깨워. 그 전에는 청소 한다고 깨우고... 그래도 역 안에서 잘 수밖에 없지. 밖에서 자면 죽을 수 있으니까. 지난 겨울에도 밖에서 자다 죽은 사람 많아. 죽지 않아도 위급 상황이 많아서 구급차도 많이 오고... 근데 이제 계속 바깥에서 잘 수밖에 없으니까 걱정이야.”


[출처: 비마이너]

한 씨 옆에 있던 조성만(52) 씨도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서울역 노숙 16년차다. 어쩌다 돈이 생겨 식당에 가도 밥을 주지 않아 매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이곳 대부분의 노숙인들의 생활이다.

“형님(한광석 씨) 말대로 작년 겨울에 여기서 죽은 사람들도 꽤 있어. 얼어 죽고 술 마시다 죽고 그래. 매일 라면만 먹는 노숙인들 몸이 어떻겠어. 추운 밖에서 자면 죽는거지. 서울역 밑에 지하도가 있는데 거기서도 많이 자. 그래서 자리가 없어.

서울역에서 우리가 역사에서 술마시고 그런다고 쫒아내는거잖아. 근데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어. 아무리 역사 안이나 지하도 안이라고 해도 밤에는 춥거든. 술 마시고 몸이 따뜻해져야 자는거지. 서울역에 이제 못 들어가게 됐으니, 추워지면 영등포역이나 을지로역으로 가지 않겠어?”


조 씨에게 잠자리를 잃고, 추위와 싸워야 하는 노숙인들을 위해 정부와 서울역이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지 물었다. 조 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우리 좀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어. 구속하지 말고, 자유롭게 놔뒀으면 좋겠어”

나이와 노숙 기간 등의 일체 사생활 공개를 거부한 김철민(가명) 씨는 누구보다 정부와 서울역에 불만이 높아 보였다.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잖아. 시설이나 휴게실을 만들고 쫒아내든가 해야지. 아무 대책도 없이 나가라고 하면 어떡해. 코레일 사장이 허준영이란 사람이지? 그렇게 노숙자들이 꼴보기 싫으면 허준영이 떠나면 되잖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여기 있던 사람들을 한 번에 내쫒으면 어쩌라는거야.

쪽방 100개 만들어놨다구?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만 300명이 훨씬 넘는데... 그리고 쪽방에 들어가는 노숙자도 별로 없어. 시설도 문제야. 쉼터는 밤 9시에 들어가서 새벽 5시 30분이면 나와야 돼. 그 마저도 술 안 끊으면 들어갈 수도 없고. 여기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누가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데 들어가겠어?”


노숙인을 위한 ‘쪽방’, 하지만 노숙인은 없는 ‘쪽방’
일 해도 걱정, 일도 할 수 없어 걱정인 노숙인들


서울역의 야간 노숙행위 전면 금지 조치 후, 일각에서는 서울역 노숙인들이 영등포역과 용산 역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풍선효과를 우려했다. 이에 코레일 관계자는 언론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퇴거조치 첫날인 22일, 영등포역과 용산역에 노숙인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고, 서울역 노숙인들이 인근이나 쉼터로 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역은 강제 퇴거 조치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서울역 노숙인을 위한 쪽방 100개를 무상 임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역 측 설명에 따르면, 쪽방 대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숙인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조장호(48) 씨는 얼마 전, 서울역에서 잠을 자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조 씨가 노숙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갑작스런 폭행에 머리가 찢어지고, 얼굴에 멍이 들었다. 다친 곳도 아프고, 거리 노숙도 무서워져 그는 지난 1일 쪽방에 입주신청을 하고, 쪽방생활을 시작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 얘기는 꼭 보도를 해 줬으면 좋겠어. 쪽방에 들어간 사람 중 노숙인들은 5% 밖에 안돼. 지금 봐봐. 서울역 노숙인들이 그대로 있잖아. 오리지날 노숙인은 5% 밖에 안 되고, 나머지 95%는 생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인력 소개소 찾아다니면서 일 다니는 사람들. 심지어 방도 있으면서 공짜 방이라니까 들어온 사람도 있어.

심사하는 과정이 잘못돼서 그래. 심사 기준이 틀려먹었어. 여기 있는 진짜 노숙인을 우선으로 신청 받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도 안하는 것 같아.”


노숙인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일 할 능력이 있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다는 ‘나태함’을 지적하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을 하는 노숙인도 있고, 자활 활동을 하는 왕년의 노숙인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그들의 노동이 그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노숙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노숙을 벗어난다해도 여전히 생활고에 헐떡이는 경우가 다반수다. 특히 일을 하지 못하는 노숙인은 그야말로 ‘오리지널 노숙인’ 생활을 면치 못한다.

조 씨 역시 일을 하지 못하는 노숙인이다. 8개월 전까지는 가끔씩 노가다 일을 하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손에 쥐었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이 심해지며 그 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내가 보기에는 말짱해 보이지? 근데 다리 봐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최근에 자꾸 물이 차. 그래서 노가다도 일이 끊겼어. 하긴 일 하면서 다리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긴 했지만.

일 해도 돈을 몇 푼 못 벌었어. 하루 종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 수급자 요건도 안 된대. 그래서 나처럼 할 수 없이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무리 여름이라도 밤이슬 맞고 자다보면 몸이 완전히 가. 특히 겨울 오면 역사 아니면 갈 데가 없어. 지하도 들어가도 잘 공간이 없고. 방 구할 돈은 없고, 지낼 곳은 역사 밖에 없는 거지. 근데 이제 역사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노숙인들은 비를 피할 곳도 없어졌어”


3년 전부터, 10여 년의 노숙 생활을 접고 자활 활동을 하는 홍정석(가명)씨는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거리 담배꽁초를 줍는 일을 하며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33만 6천원. 다행히 조건부 수급자로 인정 돼 한 달에 수급비 10만원을 받지만, 한 달 생계비는 고작 43만 6천원에 불과하다. 고시원 방값 20만원을 제외하면 매 끼니를 챙겨 먹거나 담배를 마음대로 사서 피우는 것도 어렵다.

특히 노숙인 자활근로 예산은 고무줄 예산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계절에 따라 특별자활근로를 지속적으로 증가, 감축 시켜왔다. 동절기를 앞두고는 일자리를 증가시키고, 날이 풀리면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동절기에 특별자활근로 참가자 수는 860명에 달했지만, 3월에는 456명으로 인원을 감축시켰다.

급여 또한 날씨에 따라 인상, 또는 인하하기도 한다. 근로일수를 조절하여 하절기에는 31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며, 동절기에는 39만원으로 인상시키는 식이다. 때문에 일자리조차 빼앗기거나, 안정적이지 않는 특별자활근로는 노숙인들에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않는다.

노숙인의 죽음의 행렬...‘사회적 살인’은 언제까지

서울시에서 한 해 동안 객사하는 노숙인은 대략 300명에 이른다. 지난 10년간 서울시에서만 1800명의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노숙인에 대한 대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숙인들의 죽음 역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 서울역에 민원이 접수된다는 이유로 노숙인의 강제 퇴거가 이뤄지는 것 역시, 노숙인에 대한 인권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에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서울역 역시 여론의 반발에도 결국 야간 노숙행위 전면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출처: 비마이너]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철회, 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숙은 빈곤의 극단적 형태일 뿐 청소대상도 단속대상도 아니다”라며 “노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연한 사회적 차별과 탄압이 용인된다면, 단언컨대 인간의 보편적 권리는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역시 조치와 관련해서도 “서울역 이용객들의 민원의 본질은 탈 노숙 대책 없이 해소 불가능하며, 이에 대한 책임분담은 공공역사인 서울역과 한국철도공사에게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철도역은 입지적 특성으로 다양한 위기계층의 유입관문이 되고 있는 만큼, 서울역과 철도공사가 이들에게 공공기관으로서 긴급지원을 실시하고 전문화된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로 연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공대위는 공공역사의 홈리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 위기개입센터 설치 △사회위기계층 인권보호를 위한 업무처리지침 마련 △공공역사 등 노숙인 밀집지역에서의 현장지원팀 확충과 효과적 운영 체계 구축 △공공 역사 등 지역에서의 안전조치 강화 △특수욕구를 지닌 노숙인에 대한 지원체계 구축 및 강화 등을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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