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하청업체에 조합원 ‘싹쓸이 징계’ 지시 드러나

하청업체 사장은 ‘유령사장’...회식까지 ‘원청 지시’에 따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가 사실상 원청의 노무관리 지시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금속노조는 지난 9월 8일, 현대차 아산공장 A사내하청업체 총무 B씨의 수첩을 입수했다. B씨의 수첩에는 현대자동차의 지시 하에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을 관리해온 정황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다.

사내하청업체를 관리하는 현대차 아산공장 협력지원팀은, 지속적으로 업체에 노무 관리 지시를 내렸으며 업체 사장들을 모아 주 2~3회의 정기적인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수첩에는 업체 사장이 협력지원팀의 지시를 받아, 업체의 소장과 반장에게 비정규직 조합원에 대한 해고, 징계, 노무관리, 조합탈퇴, 휴직 등을 조치를 취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인력관리가 하청업체 자율로 이뤄지고 있다는 현대자동차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잃게 됐다.

하청업체 사장은 ‘유령사장’...회식까지 ‘원청 지시’에 따라

하청업체 총무 B씨의 수첩에는 작년 12월 6일부터 올해 9월 7일까지의 협력지원팀과 사내하청업체의 업무 내용이 기재 돼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25일 공장점거파업 종료 하루 뒤인 2010년 12월 10일, B씨의 수첩에는 ‘협력지원팀에서 파업대비 여유인원 12/15자로 정리하라함-사장님’이라는 원청의 일괄적 지시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12월 21일에는 협력지원팀의 C차장이 업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생산에 문제없이 잘 협조해준 비조합원들과 회식하라”며 사장의 카드로 275만원의 회식비를 사용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수첩에는 사장은 지시에 따라, 275만원을 회식비로 사용했으며, 현대차는 12월 기성금으로 이를 처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현대차의 지시에 따른, 하청업체의 조합원 탈퇴 회유와 감시 탈퇴 현황 보고 등의 정황도 밝혀졌다. 수첩에는 1월 6일, 업체 사장의 요청으로 조합원들의 상세 명부를 정리 작성, 보고 후 협력업체 E과장에게 우편으로 보냈으며, 같은 달 10일에는 활동가 7명의 근태현황을 작성해 D차장에게 우편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1월 14일에는 협력지원실 H대리가 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파업과 관련한 가압류 건을 2명에서 3명으로 조정할 것을 지시했다. 2월 7일에는 협력지원팀의 J과장이 방문해 ‘품질문제 관리 철저 및 조합원 탈퇴 역량 강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월 10일에는 김 모 씨의 탈퇴서를 협력지원팀 팩스로 보냈으며, 협력지원팀 F과장에게 김 모 씨의 탈퇴건을 전달했다고 보고했다. 다음날인 11일에는 김 모 씨에게 향후 노조활동이 없도록 확답을 확인하고, 원청에 이를 보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 활동에 대한 불법 채증과 감시 활동 또한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3월 28일 해고, 정직자들이 온양온천역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할 당시, B씨는 온양역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사진을 협력지원팀 과장에게 우편으로 발송했다. 이들은 온양역 건너편 사진관에서 천막쪽으로 수차례 불법 채증을 했으며, 4월 1일과 4일에도 ‘사장님과 온양역 사진촬영하러감’이라는 내용이 수첩에 적혀있었다.

노조 탈퇴 공작도 진행됐다. 지난 2월 21일, 울산 비정규직지회 조합비 유용 문제가 불거지자, 아산공장 협력지원실 과장은 ‘울산하청지회 임원 비리내용’을 하청업체에 전달해 조합원들이 많이 모이는 사무실 써클룸에 비치하도록 지시했다. 금속노조 측은 “현대차 관리자들이 전 하청업체를 통해 울산의 조합비 유용문제를 알려 비정규직의 불신을 조장하고, 2차 파업을 막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업 후 대량징계와 해고, ‘원청’ 지시에 따른 것

작년 11월, 공장 점거파업에 돌입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무려 1500명이 사측으로부터 해고,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받았다. 이는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최대의 징계 인원으로 기록됐다.

  업체는 문자로 징계결과를 통보했다.

울산, 아산, 전주에서 이뤄진 대량징계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사내하청업체의 주도하에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사 협상이 결렬된 이후, 현대자동차가 울산, 아산, 전주공장의 하청업체 사장을 통해 일괄적으로 징계에 착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산공장 10개의 사내하청업체는 협력지원팀과의 회의를 통해 ‘징계 착수 계획’을 논의했으며, 회의 결과에 따라 일제히 대량 징계를 강행했다. 2월 25일자 B씨의 수첩에 따르면, ‘사장님과 협력지원팀 회의내용’이 기재 돼 있다. 여기에는 2월 28일,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사이에 징계위원회 개최 공고문을 게시할 것이라는 회의 결과가 적혀 있다. 징계위원회는 3월 2일 시행되며, 오전 9시부터 A조, B조 순으로 실시할 것이라는 세부 내용도 나와 있다.

실제로 2월 28일, 현대차 아산공장 10개 하청업체는 일제히 파업에 동참한 노조 조합원을 중심으로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공지했다.

또한 수첩에는 3월 3일 오후 3시, 징계 결과를 통보하고, 3월 4일 해고 정직 인원은 정문 밖으로 끌어내는 등의 출입을 불가 할 것이라는 방침도 적혀 있었다. 이 같은 방침은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10개 사내하청업체는 3일, 조합원들에게 징계위원회 결과를 하루 종일 문자로 통보했다. 이에 따라 징계 해고 13명, 1~3개월 정직 94명, 1~3개월 감봉 143명 등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중 파업에 참여했던 25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실상 모두 징계됐다. 특히 이 사태로 송성훈 사내하청지회장을 비롯한 양회삼 부지회장과 대의원, 현장위원 등 지회 간부들이 모두 해고통보를 받았다.

4일 아침부터는 징계 통보를 받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출입이 봉쇄됐다. 아산 공장 정문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출근투쟁과 동시에 진입을 시도하자 현대차 관리자, 경비업체 직원 400여 명이 물리적으로 출입을 막아섰다.

  3월 4일 아침, 현대차 관리자와 용역업체 경비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또한 원하청의 징계 논의 과정에서, 현대차 협력지원팀은 해고자와 정직 3개월, 정직 1개월 대상자까지 정했으며, 3월 10일에는 하청 사장을 통해 강모, 김모, 박모, 안모 등의 조합원을 해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사장은 3월 22일, 성 모 조합원의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직 45일을 얘기했으나, 협력지원팀 H대리가 현장위원 활동을 했기 때문에 2개월로 늘리라고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2개월 정직 처분이 이뤄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원청의 관리자들이 하청업체에 인사와 노무에 관한 모든 사항을 지시하고, 지시에 따라 해고와 징계가 진행되고 있는 등 현대자동차 전 공장에서의 불법파견 은폐행위가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입수한 수첩 내용에 대해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업체는 유령회사이고, 현대차의 노무부서이며,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라는 명명백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현대자동차 원청의 사용자성 및 부당노동행위의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만큼, 현대차는 더 이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동취재팀=윤지연, 심형호, 김용욱 기자)
태그

현대차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참세상, 미디어충청 합동취재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