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다. 지난 15일 전 세계적 수준에서의 반자본주의 국제행동의 날 시위는 혁명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시위는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에서 텐트 3채로 시작된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의 시위가 미국 ‘월가 점거’ (Occupy Wall Street)를 통해 현재의 야만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된 뒤 ‘세계 점거’(Occupy World)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전 세계 노동자 민중들이 지배계급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가깝게는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약탈적인 금융자본으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알려진 부동산 부문에서 시작된 사태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경제위기로 빠뜨렸던 것이다. 또한 지난 30여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소수의 부유층에게 부를 집중하게 만든 반면 대중들에게는 비정규직과 실업의 일상을 안겨주었고, 그로 인해 빈곤의 세계화 즉, ‘1% vs 99%’의 사회를 형성함으로써 99%가 집단적인 분노를 표출하고 집단적인 행동을 연출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에 ‘혁명’과 ‘계급투쟁’과 ‘민중봉기’라는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의 시대에는 항상 반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서울에서의 ‘Occupy 서울’은 시민경제를 수탈한 금융자본을 규탄하고 ‘한미FTA’를 반대하고, 소파(SOFA,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반값등록금 등 다양한 현안들을 요구했다. 이러한 집단행동에 대해 조.중.동은 월가 시위에서 나온 주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현안들이 요구 대상으로 다뤄졌다고 혹평했다. 정말 무식하고 안하무인적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점거’(occupy)는 특정한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대중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Occupy 서울’에서 금융투기자본과 양극화 심화, 사회적 불평등, 한미FTA, 한미 행정협정(SOFA), 반값 등록금 등의 이슈가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이들 이슈는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상호 분리해서 요구될 이슈가 아니다. 1%의 금융자본은 대부분 투기자본이며, 이들의 탐욕이 99%의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불평등 심화는 가정경제로 이어져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한미관계
그런데 세계경제위기의 주범으로서 미국은 여전히 반성은 커녕 자국의 위기만을 타개하기 위해 양자협정인 FTA를 추진해서 상대국가의 주권 박탈과 경제 위기를 가중시키려 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각종 범죄와 악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어떠한 법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해서 한반도 및 동북아의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직후 한미동맹 복원을 최대의 국정목표로 정하고 남북관계 악화와 친미일변도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그것은 곧 대미외교에 있어 이른바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를 계속 하겠다는 논리로도 연결되며, ‘한미동맹 복원’이란 편향된 이념이 옳았음을 강변하는 사례가 속출될 위험성을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반도에서의 일련의 흐름들이 투쟁과 혁명의 국제화시대를 역행하는 반동인 것이다. 첫째, ‘Occupy 서울’을 전후로 이명박은 미국을 방문하여 한식당 ‘우래옥’에서 오바마와 만찬을 가지며 한미FTA 의회 비준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미FTA로 인하여 한미동맹은 군사안보동맹에서 경제동맹을 더해 양국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미국 자동차산업의 상징인 디트로이트에 오바마와 동행했고,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미 군사안보의 상징인 펜타곤을 방문했다.
[출처: 청와대] |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한미FTA 협상 과정을 보면 협정문의 번역 오류도 그렇고, 양국 간 분쟁이나 국제 소송가능성, SSM 규제 문제, 의약품 문제, 지재권 문제 등 ‘퍼주기’라는 비판이 당연하다. 미국 측 분석에 의하면 한미FTA 이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가 연평균 90억 달러 가까이 악화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미국에게 알아서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속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둘째, 그래서 올해 들어와 주한미군의 범죄가 빈번히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불평등한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할 의지가 박약한 것이다. 주한미군 범죄자는 현행범으로 체포당하지 않는 한 우리 경찰이 마음대로 구속 수사할 수 없다. 강력범죄에 한정해서 현행범이 아니어도 미군을 구속할 수 있지만 미군 쪽이 동의해야 한다. 미군은 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일 뿐이다. 거꾸로 미군 당국이 피의자를 자체 구금하겠다고 주장하면 우리 당국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001년에 개정된 SOFA 22조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최근 주한미군 수는 3만8000여명에서 2009년 2만6000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미군 범죄는 2004년 298건 324명에서 2010년 316건 380명으로 늘었다. 병력 감소를 고려하면 75%나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게 주한미군은 구국의 영웅이자 복락의 원천이다. 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셋째,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필연적으로 미중간 군사적 갈등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중국의 급성장과 미국의 경제군사적 위기로 인해 동북아시아에서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한국 해군의 ‘지역적 역할 강화’가 곧 중국을 상대로 한미합동 해양전력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의 갈등이 격화되는 동아시아에서 ‘해양안보’ 혹은 ‘해양수송로 보호’를 내세운 한국해군의 ‘지역적 역할 강화’는 곧 중국을 상대로 한미합동 해양 전력을 형성할 것이며, 필연적으로 중국과 군사 갈등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물론 해군은 이러한 우려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해군기지가 얼마든지 미 해군의 기항지로서 중국을 견제하는데 활용될 수 있으며, 이 기지에는 이지스 탄도 미사일 방어(ABMD)를 정착한 미 이지스함, 그리고 핵항공모함, 핵잠수함이 기항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으로서, 영구적인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해양파트너십’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2008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전략적 동맹관계를 선언하고, ‘지역/세계안보 수요’에 공동 대처하기로 하면서 한미동맹의 지역적/지구적 협력, 특히 해양에서의 협력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국 측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라고 조언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미중갈등에의 연루 위험성은 한갓 잔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금번 한미FTA 미 의회 비준은 한미관계를 군사안보 속국에서 경제 속국까지 더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속국으로 도약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 세력은 ‘죽 쒀서 개 준’격이고, 이명박 정부는 ‘누워서 떡 먹은’ 격이다. 이제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가 아니며 누구도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미 간 평등한 관계 맺기다. 하지만 ‘뼛속’까지 친미적인 이명박 정부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