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중간층 사수대 인터뷰

[인터뷰] “잠정합의안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어요”

지난 10일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137일간 농성하던 사수대는 크레인에서 내려와 경찰에 의해 동아대의료원으로 갔지만 입원을 거부당하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병원측은 밤 9시가 넘어서 병원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고 대기실 밖에는 20여 명의 사복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은 어차피 조사받을 거 지금 가자며 경찰서로 갈 것을 요구했고 사수대는 자의반 타의 반으로 안정을 취하기도 전에 경찰조사를 받았다. 14일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사수대와 김진숙 지도위원은 OK병원에서 정밀검사와 진료를 받고 있다.

  10일 밤 동의대의료원 관계자가 담당의사 소견이 입원을 요하지 않는다며 사수대 3명에게 병원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용석록 울산노동뉴스 현장기자]

사수대가 11일 새벽 1시까지 대기하고 있던 시간에 크레인에서의 힘들었던 점과 잠정합의안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중에 병원측이 나가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뒤로 갈수록 충분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박성호(정투위 공동대표)

크레인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초반 6월 27일 용역들에게 밀려 올라가면서 용역들과 대치했을 때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심적 고통이 가장 컸다. 100일 넘어가니까 정신적으로 자신이 컨트롤 안될 때도 있었다. 사수대 3명 뿐인데도 한번씩 고함 지르며 의견이 대립될 때도 있었고 특히 몸이 안 좋으면 더 그랬던 같다. 김주익 지회장 생각이 많이 났다.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과 소통은 잘 됐나?

협상하다가 안이 나왔을 때 김진숙 지도위원이 힘들어하는 모습 보면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니까 답답했다. 국회에서 권고안 나왔을 때 가장 힘들었다. 밑에서도 안이 안나오고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김진숙 지도위원도 가끔 약해지고 굴곡이 올때 허접한 안이라도 받고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서 참길 잘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잠정합의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잠정합의안이 마음에 안 든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근속기간 포함한 재복귀와 성과금, 학자금, 퇴직금이 쟁점이었는데 특히 퇴직금은 일반적으로 지급돼야 하는 것의 절반 정도밖에 지급받지 못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자 퇴직금 산정할 때 근로기준법도 위반했고 상식적으로 다시 계산하는 게 맞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학자금이나 퇴직금 2개 중 어느 하나라도 해결됐어야 그나마 위안이 되는데 나이 많은 해고자들은 자녀가 컸으니까 학자금도 못받고 퇴직금도 손해고 너무 피해가 크다.

그런데 잠정합의안에 사수대는 동의한 거 아닌가?

잠정합의안이 못마땅해도 조직적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아직 임·단협에 손도 못댄 현장조합원들도 있고 이 싸움이 정리돼야 민주노조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투쟁주체의 내부 역량도 진단해 봐야 한다. 경험 있고 간부 했던 사람은 더 싸우자고 할 수 있지만 경험없는 젊은 해고자들은 힘들어한다고 여겼다. 잘못하면 정투위가 걷잡을 수 없이 흩어지고 크레인도 해고자가 지쳐서 떠나면 힘을 가질 수 없다. 타이밍이 중요한데 더이상 길어지면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우려됐고 그래서 정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정합의안을 맨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미흡한 느낌은 받았으나 엎고 다시 협상하기는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낼 안과 양보할 수 있는 선을 명확하게 정해놓고 공유했어야 했는데 그게 부족했다. 치열하게 토론해서 그 안을 만들자고 요구했으나 크레인 내부에서 거부되기도 했고 크레인 아래서도 그걸 제대로 못 만든것 같다.

복직하기 전 1년간 하고 싶은 일은?

정투위 사업 정해서 1년 후 재복귀가 무리없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지금까지 한진에 연대 왔던 분들 기억하며 어려운 사업장 지원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투위는 자연스럽게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니 그 속에서 역량 강화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함께 계획을 짜서 사업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너무 못해서 아이들도 잘 챙기고 싶다(웃음).


박영제 조합원

건강 상태는 어떤가?

부분적으로 이상이 있는것 같은데 지내봐야 알겠다. 오늘 간단한 검사만 받았고 입원해서 몸을 추스려야 할 것 같다.

크레인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기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웃음). 크레인에 비바람 칠 때 하루종일 비닐과 천막이 흔들리니까 엄청 시끄럽고 심리적으로 긴장되곤 했다.

내부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심리적으로 극한으로 가지 않게 하려는 뜻으로 중간크레인에 남았다. 혼자 있으면 아무래도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김진숙 지도위원하고 소통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으면 종이에 글을 적어서 올리곤 했다. 의견일치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했는데 얼굴 마주보고 토론할 수 없으니까 그 부분이 어려웠다

잠정합의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고자들 대부분이 실업급여도 끝났고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다. 회사는 경제적으로 힘든 약점을 이용해 밀어붙이기 식으로 빨리 해결하려 한 것 같고 장기근속자는 불만이 많다. 부분적으로 불만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합의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정홍형 금속노조부산양산지부 조직부장

한진 조합원도 아닌데 어떻게 크레인에 남을 생각을 했나?

수배중인 상태이기도 했고 자발적으로 남았다. 행정대집행 이루어진다는 거 알고 혼자 생각했다. 김진숙 지도위원 지키는 게 뭘까. 아무래도 크레인에 혼자두면 걱정돼서 25일부터 천막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은 부산의 금속사업장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심사업장이 무너지면 노동계 전반에 상당이 안좋은 영향이 미칠 거라 생각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

인연을 떠나서 김진숙 지도위원 지키는 건 운동의 양심이다. 행정대집행 이후 일주일 내에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자연스런 것이었다.

크레인에서 힘들었던 것은?

초기에 용역들이 매트 깔고 침탈할 분위기를 보일 때 위기상황이 많아서 힘들었다.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에는 어떤 역할을 했나?

6.27 행정대집행 이전에는 민주노총부산본부와 금속노조부양지부, 한진중공업지회가 공동투쟁본부를 꾸려서 싸웠고 그 일을 함께했다. 6.27 이후에는 지회가 이상한 결정을 하는 바람에 공투본이 저절로 없어졌다.

잠정합의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하게 반대다. 결정적 이유는 근속년수때문이다. 근속년수에서 해고기간은 뺀다고 했는데 포함시켜서 정리할 수도 있었다. 근속년수가 1년 8개월이나 빠져버린 거다. 그게 마지노선이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몇차례 토론하자고 했는데 크레인 아래서도 토론이 잘 안됐던 걸로 알고 있다. (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
태그

한진중공업 , 김진숙 , 정리해고 , 85호크레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용석록(현장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3인

    모두 아는 사람들이다.
    고생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다. 역시...
    앞으론 좋은 일들만이 함께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