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위 회의 살펴보니 민주당은 전자주민증 찬성?

행안위 회의서 전자주민증 도입 문제 제기도 없이 합의

23일 민주통합당(민주당)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전자주민증 도입을 담은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안을 한나라당과 합의 처리한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민주당 쪽에선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하려고 해 상임위에서 막기 어려웠다고 항변하지만 실제 행안위 법안 처리과정에서도 민주당은 전자주민증 도입에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련 인권시민단체들은 민주당이 애초부터 전자주민증 도입을 막을 의도가 있었는지조차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합의한 주민등록법 일부개정안은 2013년부터 기존의 플라스틱 주민증을 전자칩이 들어간 전자주민증으로 바꾸는 내용이 담겨 있이 인권시민단체들은 개인의 사생활 통제 가능성과 개인정보 유출문제를 들어 강하게 반대해 왔다.

  전자주민증 예시 [출처: 행안부]

백원우 의원, 행안위 전체회의서 전자주민증 도입 반대 안 해

전자주민증 도입을 의결한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는 23일 오전 10시 8분에 개회해 25분 만인 10시 33분에 산회했다. 행안위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소위원회에 백원우 의원은 소위 개최를 반대하고 소위를 퇴장했다. 그러나 민주당 이윤석 의원이 소위에 참석해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법안처리를 합의해 줬다.

이 과정을 두고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이 전자주민증을 막을 의사가 있었다면 소위에 끝까지 남아 처리를 막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며 “백원우 의원은 개회를 합의해주고 중간에 자리를 비껴준 꼴이 됐다. 미리 퇴장한 것도 자신에게 쏟아질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 같다”고 비난했다.

곧이어 10시 35분에 열린 행안위 전체회의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핵심 논란이었던 전자주민증 도입 자체의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백원우 의원은 전체회의에서 전자주민증에 들어갈 정보 중 혈액형 정보만 빼자고 요구했다.

백 의원은 “정부 쪽과 상의한 결과 오전에 법안심사 소위에서 결정 된 개정안 24조 2항의 12호의 혈액형(정보) 삭제를 정부 측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안효대 의원(한나라당)께서 혈액형(정보) 삭제에 동의해 주시면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이 혈액형 정보를 전자주민증에 넣고 싶은 사람은 넣자고 하자 백 의원은 “(전자주민증에) 혈액형 기록이 있어봐야 응급 환자 수혈을 하도록 하는 정보인데 어차피 새로 채혈을 해 확인해야 하는 정보”라며 “그런 필요 없는 정보를 괜히 넣도록 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가능성만 높이기 때문에 인권단체는 반대하고 있다”며 한나라에 양해를 구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나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백원우 의원이 요구한 혈액형 정보를 빼는 문제엔 “전자주민증은 위조나 변조, 개인정보 방지가 가장 큰 취지”라며 “굳이 혈액형 정보는 반대가 있다면 넣을 필요가 없다”고 흔쾌히 동의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안 처리 과정을 두고 행안위 행정실 관계자도 <참세상>과 통화에서 “법안심사소위에서 주민등록법 개정안 관련 논란은 전혀 없었고, 전체회의도 절차상 문제가 없이 다 합의 처리 됐다”고 밝혔다.

법사위원장 민주당이라 통과 어렵다?...“상임위 막는 게 쉬운데”

이렇게 전체회의 과정은 별 문제제기도 없이 평온하게 진행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강행처리 하려고 해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백원우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백원우 의원은 강행처리에 반대하고 법안심사 소위에서 퇴장을 했으나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를 했다”며 “어차피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고 민주당에 전자주민증 자체를 반대하는 의원이 많아 개정안이 통과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인권시민단체들이 전자주민증 통과를 강하게 비난하자 한나라당의 강행처리에 책임을 미루는 모양새다. 다른 야당과 인권시민단체들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두고 강하게 반발했다.

류제성 민변 사무처장은 “백원우 의원실이나 민주당은 이전부터 전자주민증을 막겠다는 의지가 안보였다”며 “시민들이 등원을 반대하는데도 슬그머니 등원해서는 시급한 법안도 아니고 이번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법안도 아닌데 민주당이 동의해 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간사도 “이번에도 시민사회가 민주당에 발등을 찍혔다. 상임위에서 막는 것이 더 쉬운데도 막지 않고는 법사위에서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며 “상임위 통과 전에 상정을 안했어야 하고, 상임위에서라도 버텼어야 한다. 그나마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막는 것이 실망한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를 만회하는 유일한 기회”라고 지적했다.

한편 트위터 등에선 전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전자칩에 담을 경우 개인정보 유출문제와 함께 민감한 개인정보를 기업에 넘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전파 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전자주민증 사업과 삼성과의 연관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께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행안부 담당팀장이 행안위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전자주민증 통과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삼성과의 관계가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조승수 통합진보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10월께 행정안전부 담당팀장이 행안위 법안소위가 열리기 전 의원실에 찾아와 ‘삼성이 전자주민증 사업의 시행 주체로 유력하다’고 말했다”며 “사실상 용역공고도 안 된 상황에서 삼성이 유력하다는 것은 기술적인 부분은 삼성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전자주민증 도입 예산으로 10년 간 4,862억 원을 추계했지만, 민주주의법학연구회는 누락된 것으로 추정한 비용을 합산하면 1조 원 가까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