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전자주민증 그리고, 삼성

[기고] 민주당은 反정보인권 세력이다

전자주민증이 기습적으로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였다. ‘기습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민주통합당(민주당)이 정부여당과 전자주민증을 합의했다는 사실이 뜬금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FTA 날치기에도 불구하고 민생법안을 처리한다며 등원한 민주당이 겨우 해낸 일이 온 국민의 정보인권에는 재앙이 될 일이다.

전자주민증 반대 운동을 벌여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민주당은 왜 전자주민증에 대하여 입장이 흐릿한가?”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전자주민증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백지화시켰다. 그런데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삼성-조폐공사와 함께 전자주민증을 재추진했다. 예산과 정보인권 문제가 불거지고 정권교체 시기까지 맞물려 당시 전자주민증은 지지부진해졌지만 관료들과 기업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민주당이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전자주민증 도입에는 그 외에 아무런 타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1월 8일, 네이트 유출 피해자 주민번호 변경 소송 기자간담회 [출처: 진보넷]

“3500만건 대 499건”, 전자주민증으로 개인정보 유출을 막겠다고?

올해는 정보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재앙의 해였다. SK컴즈의 네이트/싸이월드에서 3천5백만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전자여권에서는 정관계 인사를 비롯해 92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초중등학생을 포함한 1천3백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최고의 보안설비를 자랑하는 곳들도 예외 없었다.

왜 개인정보 유출이 계속되는가? 보안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주민번호에 이미 현금성이 있다고 본다. 게임 아이템 거래, 보이스 피싱은 물론 개인정보 그 자체를 사고파는 암시장도 형성되어 있다. 타인의 주민번호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 형사처벌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유출과 위변조 시도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있다. 주민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주민번호를 보호한다면서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려 한다. 개인정보 보호가 시대적 과제라면서 전자주민증을 추진한다.

전자주민증 도입의 대의명분은 유출과 위변조 방지이다. 그러나 주민증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은 매우 미미하다. 아직 전자화되지 않아 육안식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인권규범에서 누차 강조해 왔듯이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전자화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처하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아직 주민등록증의 위변조 통계는 1년에 겨우 499건에 불과하며 그 대부분이 곧 성인이 될 청소년의 변조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것을 명분으로 하여 전자주민증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또 주민번호와 지문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자주민증을 도입한다고 한다. 표면에서 지우고 칩 속에 넣으면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전자주민증은 주민번호와 지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간과 공공에서 그 전자적 쓰임을 촉진하는 계획이다. 정말로 주민번호와 지문을 보호하려는 생각이면 여기저기서 함부로 주민번호와 지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주민증에서 주민번호와 지문을 삭제해야 한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제언한 바이고 정부도 모르지 않는다.

전자주민증 도입, 어디까지 갈까?

전자주민증 추진을 위한 대외적인 명분이 모두 궁색하다면 정부는 대체 왜 전자주민증을 추진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전자주민증의 암묵적인 쓸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자주민증은 앞으로 공공기관은 물론 병원, 은행, 그리고 인식기를 설치한 곳곳에서 주민번호와 지문을 ‘전자적으로 긁으라’고 하는 계획이다.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휴대전화대리점 등 민간 곳곳에서 실명확인을 강제하고 일상적인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나아가 전자주민증 인식기가 중앙정부에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전국민이 전자주민증을 긁는 흔적(trail)이 기록될 것이고, 정보수사기관이 제공받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의혹이 계속된 끝에 결국 예산 문제와 맞물려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가 좌절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전자주민증을 일단 도입한 후 나중에 칩 안에 이것저것 넣자는 요구가 계속될 경우다. 주민번호와 지문만 칩에 넣는다는 정부가 딱 그만큼의 용량을 가진 전자주민증을 배포할까? 그럴 리 없다. 칩은 얼마든지 확장될 것이다. 칩 안에 건강보험도, 운전면허도, 신용카드도, 이것저것 넣자는 계획들이 넘쳐날 것이다. 삼성과 조폐공사의 본래 아이디어가 그러했다.

인터넷 실명제도, 국정원 감청 확대도 민주당이 먼저 시작했다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는 데에는 아무런 타당한 이유가 없다. 인권침해와 막대한 예산을 무릅쓸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자주민증은 국민들의 정보인권에 재앙이다. 이 법의 통과로 덕 볼 곳은 삼성과 조폐공사 등 전자주민증과 그 인식기의 제조 및 판매에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뿐이다.

그러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개인정보 보호는 세계적 화두이다. 특히 서구에서는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시민들이 개인정보를 재산권처럼 간주하는 경향을 두고 논쟁이 벌어져 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주당 자유주의 진영이 오히려 전자주민증을 지지한다. 아니, 그들을 자유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 그들에게는 이념적 뚜렷함이란 본시 없었다. 그들에게는 기업 편향만 있을 뿐이다. 시민들의 정보인권은 안중에 없다.

잊을 뻔 했다. 지금은 MB악법으로 불리는 인터넷 실명제도 그들이 도입하였고, 국가정보원의 감청을 확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악도 그들이 추진하였다. 그들은 정보인권의 적대 세력이었다. 결국 전자주민증이 통과되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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