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고용형태는?

“임금, 고용형태, 노동강도 등 사전준비 없어”...우려의 목소리 높아지나

지난 24일,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이 휴일근로도 연장근무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장시간 근로개선 계획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기업을 겨냥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주문했으며,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 장시간 근로개선을 위한 종합 시행계획을 시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나섰다.

빠르게 진행되는 ‘장시간 근로개선’ 계획

정부는 휴일근로도 연장근무에 포함시키는 ‘근로시간 단축’ 방침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고 동시에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당 40시간의 노동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인정하고 있어 최대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행정 해석으로 휴일근로를 초과근무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사업장에서는 주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상태였다. 실제로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연간 2,193시간으로 OECD국가들 중 10년 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26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인력이 늘어나면 평일중심으로 일하는 시간이 배분되는 것”이라며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지만 일의 질 자체도 향상될 수 있고 기업의 생산 제품도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약 500군데 사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400개 업체에서 법정근로시간을 위반했으며, 이를 시정하는 과정에서 약 5,2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임금 삭감 역시 이 장관은 문제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자동차 완성차 업체의 효율성이 60%수준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작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 가운데 본업에 종사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보면 다수의 근로시간은 줄여도 현재의 생산 물량은 보전할 수 있다는 뜻이고, 과다한 노동강도의 조정 없이도 얼마든지 현대의 생산성을 조금만 올릴 수 있다면 근로시간은 줄이되 임금은 보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음달부터 3만 5000여 개의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에 돌입하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26일, 사업장 근로감독 종합 시행계획을 수립해 다음 달 전국 47개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이를 시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점검 대상은 완성차업체와 식료품제조업, 1차 금속제조업 등이며, 근로시간 및 휴가, 노사합의, 해고제한 등 사업장의 법 위반 여부를 감독하게 된다.

또한 정부는 근로시간 적용을 예외로 하는 특례업종 분야를 축소하는 방안 역시 추진하기로 했다. 근로시간 적용 배제 특례업종은 운수업을 비롯해 물품판매와 보관업, 금융보험업, 통신업, 광고업, 청소업 등 12개다. 해당 정책은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에 있으며, 정부는 관련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구체적인 사업을 시행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사전 준비 없이 ‘몰아치기식’...우려 목소리 높아


정부의 장시간 근로개선 계획에 대해 노동계는 우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25일, 논평을 발표하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것은 장시간노동으로 삶의 질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 역시 “휴일근로의 연장근무 포함 방침은 일단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노동강도와 임금제도, 일자리 창출 계획 등 사전 준비 없이 몰아치기식으로 시업을 진행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김지희 금속노조 대변인은 “정부가 특별한 준비나 제도를 갖추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불안정한 임금구조 개편이 선행된 후 나아가 일자리 창출까지도 진행되어야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이 없을 시 정부의 생색내기 식 정책으로 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노조는 기본급이 적고, 시간외 근무수당이 높은 불안정한 시간제 임금구조를 월급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불안정한 임금구조가 노동자들을 휴일근로와 잔업, 특근 등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휴일근로가 금지될 경우,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삭감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대기업 일자리 나누기가 사실상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의 후속편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완성차 공장을 중심으로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비정규직 확대와 편법 고용의 문제가 불거질 소지도 있다.

김지희 대변인은 “현대자동차의 1,600명 고용창출 계획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질의한 결과 ‘정규직 고용형태’라는 답을 받았지만, 사실상 고용 형태의 결정은 기업의 사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이번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창출될 일자리의 경우 구체적인 고용 형태나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역시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탄력적 근로제를 도입한 정부가 지난 6월부터는 단시간 근로제를 확대하고 있는데, 고용형대는 90%이상이 비정규직”이라며 “공공부문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유연시간 근로제를 비롯한 노동 유연화가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활동가는 “실질적인 노동시간이 단축되려면 법정노동시간이 대폭 줄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간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생활임금화 해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과거 고용노동부가 행정 지침으로 장시간 노동관행의 원인을 제공해 온 만큼, 이번 법 개정 의지가 사실상 과거의 오류를 ‘면피’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고용노동부가 장시간 노동을 없애고, 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면 복잡한 법개정보다는 과거의 잘못된 지침을 변경해 연장근로한도에 휴일근로도 포함된다는 올바른 행정지침만 내리면 된다”며 “이와 함께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및 근로조건 저하에 대한 별도의 대책마련 역시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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