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지문이 채취되고 있다"

"국가의 디엔에이 정보 수집은 감시권력 확장"

  22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디엔에이(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무엇이 문제인가> 주제로 토론 워크숍이 열렸다.

아동성폭행, 살인, 강간 같은 범죄로 구속된 피의자나 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해 재범을 방지할 목적으로 DNA를 채취할 수 있게 한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아래 디엔에이법).

인권침해 논란 속에 시행된 이 법은, 지난해 검찰이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참사 철거민의 DNA를 채취하면서 법의 오남용 논란을 다시 일으켰다. 지난해 6월 인권단체들은 디엔에이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이와 관련해 22일 이른 10시 국회의원회관 128호실에서 국민대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의 사회로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 워크숍이 열렸다.

디엔에이, 애초 수집 목적과 다르게 쓰일 가능성 농후

이날 발제자를 맡은 시민과학센터 김병수 박사는 “디엔에이는 처음 수집이 어려우므로 처음 수집 목적 이외에 범죄성향에 대한 연구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대단히 많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 박사는 “유전자 정보은행인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DNA data base)는 정보량이 많아야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단 구축되고 나면 입력 대상을 지속해서 확장하는 속성을 가진다”라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신원확인 시스템인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전 국민의 지문이 전산화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가 이 둘과 연동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감식 기술의 활용이 매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뒤 “현재 이 문제가 ‘과학수사냐, 인권침해냐’의 단순 논쟁구조로 집중되어 다른 중요한 논쟁들은 사라졌는데 유전자 감식뿐만 아니라 분석 과정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시민과학센터의 김병수 박사가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의 특징과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 또한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의 지속적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며, “디엔에이법에 의한 국가의 디엔에이 정보 수집은 감시권력의 확장과 위험통제 정책의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형이 있는 자의 경우, 장래에 있을 수도 있는 범죄에 대한 형사소추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디엔에이 감식을 허용하는데,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혐의 있는 무고한 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 즉,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반된다.”라며 디엔에이법의 위헌성을 꼬집었다.

또한 이 교수는 “현 디엔에이법 규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범죄수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수많은 사람의 디엔에이 정보를 무작위로 검색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무작위 검색이 과연 정당한가?”라고 묻고 “디엔에이 감식시료의 채취는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침해이며, 시료 분석을 통해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시료채취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개의 수색에 해당하는데 이때 또 한 번의 침해가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이 범행현장에서 수집한 디엔에이 정보를 가지고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를 검색하게 되면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수많은 시민의 디엔에이를 검색하게 되는데, 이렇게 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수천에서 수만 건의 수색을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형사기관의 이러한 수사활동이 “적법절차 원칙에 의한 통제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 철거민의 DNA 채취, 법 오남용 이미 시작

이어진 토론에서 가천대 생명과학과 남명진 교수 역시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의 확장 가능성에 관해 지적하며, 이 문제가 현실화한 사건이 "이번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철거민들에게 판사가 영장을 발부해 강제로 디엔에이를 채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 교수는 “두 사건 모두 강력범죄로 보기 어려울뿐더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에 참여한 서아무개 씨의 경우,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도 디엔에이를 채취했다”라며 실형이 선고되지 않고 형이 확정되기만 하면 디엔에이를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실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의 디엔에이를 채취해 이를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하는 것은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한다는 법률의 입법목적에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디엔에이를 채취당한 당사자로서 워크숍에 참여한 쌍용차 해고노동자 서아무개 씨는 자신을 “사회에서 떠밀린 자”라고 소개하며 “이러한 법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에게만 적용되어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 이 나라 관료들은 돈 봉투, 성 접대를 하지 않는가. 이미 범죄가 관행이 되어 있는 이들이야말로 재범 방지를 위해 법 적용을 해야 하는데 왜 이들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가”라고 성토했다.

또한 서 씨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법을 도입해야 한다”라며, “디엔에이를 채취당한 후로 식당에 가도 머릿속에서 ‘여기서도 내 지문이 채취되고 있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소송에서 이겨도 이 생각은 평생 갈 것”이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서 씨는 “이것이 어떠한 부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져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신문에 실리지도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수사기관의 디엔에이 채취에 동의해야만 하는 '압박상황'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민영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디엔에이법과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정당성을 논하며 예로 드는 논거 중 하나가 외국의 입법사례와 판례”라며 독일의 디엔에이 분석개정법의 내용을 설명했다.

특히 최 연구원은 ‘디엔에이 채취에 대한 동의’와 관련해 “형의 집행을 받는 자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사기관의 주도와 필요에 따라 동의가 발생하는 ‘압박상황’이 생긴다. 이럴 땐 자발적인 동의로 볼 수 없다고 간주한다.”라는 독일 부퍼탈 주 법원의 판례를 들며 "이러한 압박적인 상황에서의 동의가 과연 진짜 동의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엄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류제성 변호사는 “현재 사건에 대한 헌법 소원의 목표는 디엔에이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대상과 요건이 허술하다는 것인데, 최소한 지금 채취한 것은 위헌이다는 판결은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라며 현 재판 진행상황이 쉽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장여경 활동가는 “디엔에이법의 주요 대상으로 알려진 성폭력 범죄자의 비율은 사실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 전체 대상 중 낮은 편에 속할뿐더러 경찰이 구속 피의자에 대한 디엔에이 채취로 범인을 검거한 사례로 든 예시는 엄밀히 말하면 별건 사건"이라며 "대상 범죄의 ‘구속’ 피의자에 해당하는 사례도 아닐 뿐만 아니라 디엔에이 대조를 통한 처리 안 된 사건의 발견 사례 84.2%가 절도에 편중되어 있다”라고 경찰 발표의 허점을 꼬집었다.

사회를 맡은 김 교수는 “디엔에이법은 법사위 공청회 후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우린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국회를 대상으로 어떠한 입법을 할 것인가, 그리고 사법적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면서 "현재 법이 성범죄 재범 방지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예민한 문제이기는 하나, 이러한 논의를 통해 이 법의 존폐에까지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이날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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