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이후 깊어진 노조의 고민

[동일본대지진 1년, 현장을 가다](12) 일본 전노련

[편집자주] 동일본 대지진 1년, 일본 현장에 가서 한 달간 취재하고 있는 <미디어충청>은 한국의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같은 일본의 총연맹 렝고와 전노련, 노조 협의회인 전노협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전노련과 전노협과는 인터뷰가 진행되었지만 650만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연맹 렝고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렝고측은 에너지 정책을 재검토 하는 작업중으로, 그 작업이 끝나는 5월까지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고 전해왔다. 전노련, 전노협을 만나 원전과 관련한 노조의 입장과 실천, 이에 따른 어려운 지점, 정부의 노동정책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는 25개의 산별노조와 47개의 지역 산하 조직이 가입한 총연맹으로, 130만 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1989년 렝고 결성을 노동운동 우경화로 진단하여, 이에 반대하는 공산당계 노조들의 총연맹으로 출범했고, 중소기업, 공무원 노동자들의 가입률이 높다.

일본 전노련에서 23년간 활동간 세라마 테이지 정책실장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3.11 원전 사고 이후 대응은 엉망이었다”며 “방사능이 유출되는데, 정부와 언론은 건강에 당장 피해가 없다고 했고, 일본 국민이 나서지 못하도록 정보를 통제했다”고 비판했다.


원전 하청노동자와 함께 투쟁해야
조직화 어려워...다단계하청, ‘원전 집시’, 조폭 연류
손가락 잘려 생명 위협 느끼는 상담 사례까지


  세라마 테이지 정책실장 [사진 총괄 : 도영, 정재은]
연맹 산하 노조 중 원전 산업과 관련된 조직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전노련은 원전에서 직접 일하고 있는 조합원은 없다. 관련 산업에서 공무원 중 경제산업성 노조가 있다. 산하에 원자력보안원이 있는데, 그곳에 조합원이 몇몇 있다. 조직율도 낮고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전노련은 건설, 항만을 비롯해 후생노동성(고용노동부), 법원 등 정부 각 부처에 노조가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들 수 있다. 원자력연구소에도 노조가 있는데, 2천여 명의 연구원이 있다. 연구소는 핵연료봉 등을 연구하는 중요한 기술 집단인데, 이곳을 조직화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뿐만 아니라 정규직노동자가 아닌 하청노동자들이 원전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조직한 사례가 있다면

대표적으로 전노련 내 건설교통노련 후쿠시마현 덤프트럭지부에서 조직화한 사례가 있다. 건설교통노련 조합원들도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원전은 1년 내내 가동되고, 단체교섭 대상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54기의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비정규직인데, 직접 작업을 하면서 높은 방사능 피폭된다. 한 군데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원전 집시’라 불린다. 두 번째 어려움은 하청노동자라는 것이다. 상담해 왔던 사례를 보면, 다단계 하청구조는 18차까지 내려간다. 종합 건설 회사 그 밑에 하청, 재하청... 그럼 누가 기업주냐, 누구와 단체 협상을 해야 하나?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세 번째는 조폭과 관련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려운 노동이다 보니 직접 스스로 원전에서 일하겠다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폭이 빈민지역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도쿄의 산야 같은 동네에서 신용불량자들을 끌고 와 차량에 태워 원전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홋카이도에서 노동 상담해왔던 사례는, 원전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조폭이 손가락 자르라고 해서 손가락이 잘렸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 노동 상담하러 온 사례였다.

81년에 원전 하청노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맞다. 당시 야쿠자까지 동원해 노조 파괴했다. 80년대 후반 후쿠이현은 원전이 밀집돼 ‘원전 긴자’라 불렸는데, 하청노동자 100여명이 노조 건설에 나섰다. 현재 전노련 소속인 건설교통노련(당시 운수일반노조)에서 조직화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두 달 지나니까 또 뿔뿔이 흩어졌다.

  도쿄 빈곤지역 산야와 인접한 다떼가와. 다떼가와 하천 재정비 이유로 철거민, 노숙자들을 쫓아내자 이들이 투쟁하고 있다. 빈곤지역에 머무는 일용직노동자들 대다수가 원전에 일하러 가거나 빚에 허덕여 사실상 끌려가기도 한다.

원전 사고 이후 정부 대응 엉망
정부 노동 정책으로 비정규직 증가, 임금 하락
사고 이후 전력회사 민영화 문제도 수면 위로


3.11 사고 1년, 수습 끝났다고 보는가?

일본 정부는 사고를 천재라고 하는 데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원전 사고는 인재이다. 작년 말 일본 노다 총리가 사고 수습 선언했다. 요즘 언론에 계속 보도되듯, 원전 2호기 냉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만 봐도 사고가 수습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원전 사고 이후 정부 대응은 엉망이었다. 방사능이 유출되는데, 일본 정부와 언론은 건강에 당장 피해가 없다고 했다. 일본 국민이 나서지 못하도록 정보를 통제했다. 방사능 오염 지역을 원전에서부터 원을 그려 10, 20km 등으로 나누는데, 방사능은 바람이 중요하다. 정부 지시에 따라 움직였던 주민들이 오히려 바람 방향으로 이동해 방사능에 더 많이 피폭되는, 그런 아이러니한 비극도 있었다. 일본 정부만 모른 척 했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사고 직후 대만, 한국으로 피난 갔고, 독일은 당장 오사카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프랑스는 정부 비용으로 자국 국민들을 이주시켰다.

일본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데, 원전 산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이 많은 것은 그동안의 정부의 노동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노동 정책에 대한 대략적인 흐름을 말해 달라

1985년 노동자 파견법 만들어지고, 비정규직이 상당히 많아졌다. 신자유주의는 노동 규제 완화인데 우리는 반대한다. 노동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렝고는 민주당 소속 장관도 많이 배출했는데, 그들이 규제 완화 찬성 입장에 서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 정부 들어 노동 규제 완화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예를 들어, 2008년 리먼 쇼크때 자동차 산업과 전기 산업에서 파견 노동자가 대량 해고됐다. 정규직은 그래도 버틴다. 2008년 가을은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노동계가 투쟁했다. 이는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민주당은 적어도 비정규직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 즉 파견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파견 노동 문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증가 추세로, 현재 1,750만 명, 35.2%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임금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내부유보금은 226조 엔가량 된다. 이를 숨기고, 설비투자도 안 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이며 구매력도 생기고. 경제가 돌아갈 것이다. 임금 하락, 소비 감소 악순환에 놓여 있다.

사고 이후, 오랜 기간 침묵했던 전력 산업 민영화 문제도 제기되는 것 같다. 반면 국영화에 대한 주장도 나온다던데

일본 민영화 문제는 1945년 패전 직후, 소위 경제 민주화로 미군 점령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9개의 전력회사가 민영화됐다. 완전한 민영화로는 보기 어렵다. 주식회사지만 공적영역으로, 대주주는 도쿄도이다. 정부와 지방정부가 전력회사에 끼치는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민간 기업 부분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3.11 사고 이후 전력회사가 경영을 못하는 상태가 됐다. 주민들에게 손해 배상해야 하고, 재산 처분도 안 되니까 오히려 국영화해서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민영화는 반대 입장이지만 지금 전력 국영화 논리를 국민의 세금을 털어 넣자는 주장이다.

3.11 사고 이후 정부의 노동 정책 중 달라진 지점이 있는가

긴급노동정책에서는 좀 달라진 측면이 있다. 좋은 측면인데, 피해 지역에 긴급 고용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보험을 보장, 실업기간 연장 등 노조가 주장한 것은 다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 노동정책이 바뀌었나 생각해보면 별로 바뀌지 않았다.

“전노련도 반성...사고 이후 5월 정책제언안 만듦”
원전 폐기, 자연에너지로의 전환 등 원전 없애기 운동 강화
핵의 평화적 이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
“3.11 이후 노조의 과제와 역할 다시 생각하게 돼”


핵발전에 대한 노조의 입장을 듣고 싶다

우리도 솔직히 말해 깊이 반성하는 부분이다. 무슨 문제냐면, 전노련의 각 지역조직, 특히 원전이 있는 지역조직에서 원전 안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지자체나 전력회사에 꾸준히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노련 총연맹의 입장으로 정리하고, 에너지정책과 원전정책을 하나의 방침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2011년 3.11일 직후 4월 18일 제1차 상임위 토론을 했다. 원전이 아닌 에너지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는, 정책적 제언 마련을 위한 토론이었다. 5월 9일 제2차 상임위 회의가 열리고, 사무국 회의, 17일 일본 과학자 협의와의 회의 등을 통해 19~20일 정책제언안을 만들었다.

쉽게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는 건데... 정책적 제언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 정책은 4가지인데 먼저 현존하는 원전의 폐기이다. 당장 폐기다 어렵다면 예를 들어, 신규건설 계획은 당장 중단하라는 것이다. 지진 발생 경고 지역인 하마오카 원전의 운전 종료이다. 이는 간 나오토 총리가 작년 5월 직원으로 원전 중단 가동을 중지시키라고 한 곳이다. 또, 핵폐기물을 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한 재처리 계획 중단, 구형 원전 가동 중단이다. 현재 남아 있는 원전을 가동 중단 시키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원전에서 벗어나서 자연에너지로 전환하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일본은 산도 많고 강도 많고, 수력, 풍력 발전이 가능하다. 화산이 많아 지열발전도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

세 번째 정책적 내용은 장시간 노동의 시정과 대량 소비, 즉 ‘24시간형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또 원자력 행정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지탱해온 구조인 ‘원자력마을’의 실체가 드러났다. 정부, 관료, 노조, 언론, 연구자 5개가 하나 되어 유착구조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위원회 회의로 도쿄대학 학자가 하루 참가비용으로 받는 돈이 75만 엔이라고 한다. 여기다 도쿄전력이 정치가들에게 정치자금 대주고, 노조가 밑에서 지탱하고, 언론이 침묵하고.

  작년 3월 26일 탁핵 집회 [출처: 일본 레이버넷]

구체적인 실천은?

먼저 피해 지역으로 뛰어가 자원봉사를 해 왔다. 여러 가지 대처한 부분은 많이 있지만, 3.11이후 매달 11일 진행하는 ‘일레븐액션’, 원전 없애기 운동 강화의 일환으로 100만 서명운동, 피해자 지원 사업. 제염대책 강화, 도쿄 전력과 정부에 피해보상 위한 배상 행동 등이다.

취재 과정에서 렝고의 경우 원전과 관련한 입장을 유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노련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는지

렝고는 3.11 직전에, 원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바 있다. 하지만 3.11 직후 이를 추진한다고 내놓고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원전 입장을 ‘동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보’가 아닌 ‘동결’인데, 얼음은 녹는 법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시 그 방침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왜냐면 현재 렝고 총연맹 위원장은 파나소닉 출신이다. 사무총장은 전력노련 출신이다. 말하자면 원전 기계 만드는 곳 출신이 위원장이다. 사무총장은 도쿄전력 사원이었던 사람이 전력노련에 가입해 사무총장이 됐다. 렝고의 원전 방침이 크게 달라질 수 없다고 본다.

렝고 내에도 탈핵을 주장하는 노조들이 있지 않는가

렝고 내부의 지방자치체노조(공무원노조 지자체 부분), 교직원노조는 탈원전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 노조는 열심히 하고 있다. 지역 조직의 경우, 특히 이번 3.11 각 곳에서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중심적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탈핵이 총연맹의 하나의 의견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핵발전에 대한 입장을 정할 때, ‘핵의 평화적 이용’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장기간 논란의 주제였다. 전노련은 어떤가

1989년 전노련이 결성되었는데, 당시 강령 안에 원전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정리할 지 토론이 있었다. 때문에 처음에 말했듯, 22년 동안 전노련이 탈원전 방침을 내세우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결국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반대하면 과학 전반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전노련 산하는 과학자 집단, 특히 연구소 노조 등이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저항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는 원자력 과학이라고 하면 옛날 퀴리 부인의 발견, 방사능 의학 등 평화적인 이용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무턱대고 반대하는 입장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3.11 이후, 특히 원전 정책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했을 때, 상업적 이용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정보를 숨기는 것뿐만 아니라 핵폐기물을 둘러싼 문제 등 지구상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3.11 이후, 노조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나는 노조는 사회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회 정의의 깃발을 듣고 연대해야 한다. 노조는 조합원의 이익뿐만 아니라 노조 밖에 있는 사회적인 입장, 사회적 이익을 지키는 집단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3.11 직후 노조의 과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덧붙이면 일본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지금까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가하지 않았는데, 3.11 이후 일본의 청년들이 나서고 있다. 전노련에서 집회하면 100명, 200명 동원 형식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요즘 탈핵 집회에서, 마지모토 하지메 라는 젊은이가 자기 지역에서 200여명으로 행진을 시작했는데, 신주쿠까지 걸어오니 2만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일이 사고 이후 세 번이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젊은이들의 힘과 특히 아이 엄마들의 힘이 일본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 통역 : 가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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