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이후 깊어진 노조의 고민

[동일본대지진 1년, 현장을 가다](14) 일본 전노협

[편집자주] 동일본 대지진 1년, 일본 현장에 가서 한 달간 취재하고 있는 <미디어충청>은 한국의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같은 일본의 총연맹 렝고와 전노련, 노조 협의회인 전노협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전노련과 전노협과는 인터뷰가 진행되었지만 650만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연맹 렝고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렝고측은 에너지 정책을 재검토 하는 작업중으로, 그 작업이 끝나는 5월까지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고 전해왔다. 전노련, 전노협을 만나 원전과 관련한 노조의 입장과 실천, 이에 따른 어려운 지점, 정부의 노동정책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3.11 사고 직후, 일본 전노협(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은 ‘토호쿠 간토 대지진 대책본부’를 설치해 △의연금 모금 △구호물자 지원 △인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 바 있다. 나아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정부 대책이 불충분하다고 보고 ‘원전 정지, 건설 중지’를 요구하는 한편, 지역주민과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최우선적으로 지킬 것을 촉구했다.

전노협은 이번 올해 춘투 방침에도 제일 먼저 ‘탈핵사회 저항을 위해 크게 전진하자’며 “춘투에서는 ‘안녕 원전 발전’하고, 폐로가 우리의 큰 과제”라고 정했다. 본 지와 이번 인터뷰 한 전노협 가나자와 히사시 의장은 “사고 책임은 일차적으로 도쿄전력, 그리고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운전체계도 원전 수출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며 “재생가능자연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탈핵 1천만 명 서명 운동에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9년 당시 렌고결성에 반대하여 국철노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노협은 총평 좌파 계열의 노조들의 협의체로서 공산당계 전노련과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다.

“전노협은 89년 결성 당시부터 탈핵”
“어떤 사회체제든, 원전은 위험하고,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


  전노협 가나자와 히사시 의장 [사진총괄 : 도영, 정재은]
원전문제와 관련한 전노협의 입장을 말해 달라

일본 전노협(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은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1950년 7월 ~ 1989년 11월) 해산 이후 1989년 결성되었다. 전노협은 결성 당시부터 탈원전 정책을 맨 먼저 내걸고 계속 투쟁해왔다. 우리는 원전 그 자체를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 체제이든, 원전은 인간에게 위험하고, 특히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

그렇다면 노조(노동)운동과 반핵운동의 역사적 과정과 관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핵의 평화적 이용’까지 반대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전노협을 만들었다. 총평 당시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운동이었다. 지역노동운동이 활발했는데, 그때는 각종 평화운동, 핵무기 반대 운동을 열심히 했다. 총평 노동운동 시절에는 그렇기 때문에 평화운동과 같이 했는데, 당시 사회주의권에서 핵실험을 계속했다. 때문에 총평안에서 평화운동과 원수폭 금지 운동을 하는 가운데 의견이 갈라졌다. 특히 공산당 계열은 사회주의국가에서 핵실험을 하고, 여러 가지 원전이 만들어지면서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서는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원전이 만들어질 때도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은 우리쪽(현재 전노협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공산당이 제3자적 입장을 취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동맹(어용노조, 64년 건설)과 총평이 합쳐서 80년대 후반 일본 노조가 통합되어 갔는데, 동맹은 결국 회사의 방침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조였다. 동맹과 총평이 통합되면서 렝고가 만들어졌는데, 렝고의 방침에 반대해 만들어진 게 전노련이다. 우리는 양쪽 다 가입하지 않고, 깃발을 들었는데 이것이 전노협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노협이 처음부터 원전 정책에 반대했다는 건, 이런 노동운동의 흐름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도 한다.

덧붙여 말하면,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로부터 일본에서 반핵운동이 시작됐다. 반핵운동은 일본에서 하나의 운동 기조었는데, 소련이 핵실험을 하며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말이 나오게 됐다. ‘핵의 평화적 이용은 있을 수 없다’며 핵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게 전노협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전 그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 원전 건설부지 선정이라든지 건설할 때도 계속 반대해왔다. 사고 직후부터 우리 입장은 상당히 명백했다.

탈원전 프로젝트로 나서...
가혹한 피폭노동에도 ‘얼굴 없는 노동자’
수도, 청소 등 원전 간접피해 노동 문제도 심각


원전산업 관련한 노조 조직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직접적으로 원전을 움직이게 하는 기업의 노조가 가입하고 있지 않다. 물론 하청의 하청, 예를 들어 원전 펌프 제조 회사, 펌프 도금 중소기업 등이 있다. 도시바의 하청기업 노조도 있다. 이곳 조합원들은 원전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고 이후 “우리가 원전 문제까지 관여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탈핵 실천을 소개해 달라

탈원전 운동은 원전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 지역 당사자 운동이 주가 되는 운동이었다. 어떻게 보면 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는 이를 반성한다. 그래서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탈원전에 대해 생각하고, 운동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탈원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3.11 직후 9명의 학자, 문화인 등이 탈원전을 제안했다. 이는 일본에서 국민적 운동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고, 1천만 명 서명운동 등을 하기 시작했다. 전노협은 나름의 독자적인 운동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국민운동을 지탱, 확대하기 위해 우리의 몫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탈원전 운동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피폭노동에 대해서 짚어야 한다. 현재 원전서 직접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산업의 노동자들에게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여러 가지인데,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방사능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도, 쓰레기 청소 등의 일에서도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있다. 쓰레기를 소각하면 재가 나오고, 이 재에서 방사능 선량이 상당히 높게 나오고 있다. 이 소각재를 파란 시트에 싸서 청소 공장 안에 두고 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청소 노동자들이 가해자인 것처럼 언론에서 보도한다. 이들도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가지 이런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원전 둘러싼 노동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다. 나도 청소 노동자였다.


탈원전사업 프로젝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전노협에 가입한 산하 노조에서 자원봉사, 피해 지원 등을 비롯해 각 종 사업을 하고 있다. 단위노조가 중심적으로 움직이고, 전노협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또, 후쿠시마 교직원노조 등과 같은 단위노조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노동자 기숙사 J빌리지 앞에서 ‘노동 상담을 받는다’, ‘당신의 몸이 안 좋으면 이렇게 하십쇼’라는 내용의 유인물, 자료를 뿌리며 원전 노동자와 만나고 있다. J빌리지 앞은 주민들까지 강력하게 출입을 막고 있어 좀처럼 접근하기 어렵지만 단위노조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원전을 짓고, 사고 난 원전을 수습하는데, 이들의 실상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조직화의 어려움은?

원전 산업 둘러싼 구조 자체의 문제가 있다. 원전 사업은 건설, 전력, 기계회사 등이 얽혀 있고, 다단계하청구조로 원청이 어디인지 명백하지 않다.

또, 일본 정부에서 원전 사고 수습 선언을 했지만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종종 새어나지만, 실태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요즘에는 언론을 통해 새어나왔던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까지 차단되는 상황이다. 도쿄전력 등 회사측은 언론인과 노동자가 접촉하지 못하게 강력하게 막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상담해 올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다.

원전 현장 노동자는 ‘얼굴 없는 노동자’로 불린다. 빨리 보호하고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 피해도 그렇거니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가혹한 노동인데도, 얼굴 없는 노동자로 되어 있다. 우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빨리 손을 뻗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전의 간접피해 노동자들이 나서는 사례가 있는지? 예를 들어 방사능 피해와 관련한 회사측과의 교섭, 집회 등 말이다

간접피해 노동자는 교섭 상대, 예를 들어 수도 노조 경우에는 도쿄도가 단체교섭 상대이고, 쓰레기 청소노동자는 청소 업자들의 조합이 교섭 상대인데, 이들과 교섭하면서 방사능 문제에 대해 투쟁하고 있다. 물론 도쿄전력에 항의 투쟁도 병행한다.

방사능과 관련한 문제로 간접피해 노동자들이 사업주와 교섭을 하면 물론 사업주는 굉장히 싫어한다. 일례로, 청소노동자들이 청소업주들에게 “그럼 당신들은 빠지고, 우리가 도쿄전력에 피해보상을 직접 요구하겠다”라고 하면, 업주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고 싫어한다. 회사는 어디까지나 교섭 틀 안으로 가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경제계, 3.11 사고 이유로 “이럴 때일수록 노동 규제 완화”
“도쿄전력, 지역독점자본이만 공공 재산”...민영화 고민스런 주제
“탈핵운동에서 노조 역할 중요”


3.11 사고로 원전 ‘안전 신화’가 깨졌는데,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봐야 하지만, 사실 원전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었나

우리는 원전 사고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일본 정부, 도쿄전력 그리고 학자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해왔던 것이 ‘상정 외’이다. 인간이 상정했던 외의 일이라는 것이다. ‘상정 외’가 유행어처럼 되었다. 원전 입지도 상당히 위험한 곳에 선정되어 왔다. 원전을 지을 때도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었고, 원자력 정책을 일본 정부에서 내세우지만 사고 이후 도쿄전력이 사고 내용을 은폐했다. 사고 뒤 정부, 도쿄전력, 학자 등이 하나가 되어 원전을 추진한 위험천만한 일이 명백히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나 원전보안원도 감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근 민간 기간으로 원전 사고 조사위가 꾸려져 보고서를 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직후 간 나오토 총리가 상당히 동요했다. 여러 군데 전화도 하고 직접 지시도 내렸다. 그만큼 정부 동요가 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을 둘러싼 구조는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안정성은 빼놓고 진행되어 왔다.

  최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모습. 3호기. [출처: ANN 뉴스 방송 화면 캡쳐]

사고 이후 일본의 경제 회복은 장기간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이 쏟아지는데, 노동정책의 변화는 없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의 규제 완화이다. 이로 인해 파견법이 통과되고 수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3.11 사고 이후 노동 문제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경제계는 오히려 사고를 구실로 규제를 완화하라고 한다. 경단련(경제인단체연합회) 같은 곳은 지금 시기 노동의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가 잘 돌아간다, 이런 논리다. 특별히 크게 변한 것은 볼 수 없다.

3.11 사고 이후 정부와 도쿄전력의 책임을 꼬집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NHK 기획 취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단, 전력산업 민영화 이야기는 안 나오더라. 민영화 문제는 일본에서 오래된 주제이긴 하나 중요한 문제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는가

이것은 상당히 어렵고 고민스러운 문제이다. 일본 공기업 민영화는 한국의 공기업 민영화와 역사적으로 많이 다른데, 일본은 전후 재벌이 해체되고 나서 민영화 이루어졌다. 도쿄전력은 지역독점자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본의 도쿄전력은 지역독점자본이긴 하지만 공공 재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이것을 민영화해서 쪼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민영화와 관련해 말한다면, 일본에서는 노조를 와해, 분열하기 위한 정책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긴 하지만, 전후 군국주의을 벗어나서 활발하게 노동운동이 벌어졌던 총평 시기, 전력산업, 철강산업 노동자들은 굉장히 투쟁적이었다.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민영화를 추진한 측면도 잇다. 전력회사 민영화의 문제는 여러 가지 각도로 봐야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탈핵 운동은 시민운동, 노동운동 할 것 없이 운동진영이 많이 나서고 있고, 분위기도 고조되는 것 같다. 노조의 과제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 총평 노동운동이 활발했을 때는, 지역 노동운동의 힘이 셌다. 지역 노동운동이 중심이고, 시민운동이 결합하는 상황이었다. 요즘에는 일본 노동운동이 계속 쇠퇴, 몰락하다보니까 오히려 시민운동 쪽에서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부분이 있다. 물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함께 하고 있고, 탈원전은 일본 국민들의 70~80%가 찬성하고 있다고 언론에서 보도되듯, 전반적으로 탈원전 분위기가 고조되는 영향도 있다. 시민운동의 목소리를 묶어가고, 정착된 사회운동으로 하기 위해서도 노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인 저항의 목소리가 작았을 때도, 시민운동의 버팀목이 되었던 건 사실 노동운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제대로 노동운동을 해야 사회운동으로 크게 확대된다고 생각한다.

* 통역 : 가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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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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