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우위영 대변인은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두고 “야권연대가 훼손되고, 일부 언론의 심각한 색깔공세성 보도까지 나가는 상황에서 복잡한 양상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적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곧바로 이정희 대표가 사퇴한 관악을에 이상규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출마시키기로 확정해 이정희 대표의 용퇴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규 후보는 이정희 후보가 사퇴 결심과 함께 직접 대표단에 추천해 이견 없이 바로 인준, 전국운영위에서 통과됐다.
“야권단일후보 지지해달라” 호소
이정희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분들이 긴 시간 애써 만들어온 통합과 연대의 길이 저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며 “야권단일후보들이 이길 수 있다면 기꺼이 어떤 일도 해야 하며, 진보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도 당연히 저의 것이다. 몸을 부수어서라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정희 대표는 또 “야권단일후보 경선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저”라며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갈등이 모두 털어지기를 바라며 전국 각지의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정희 대표는 “정권교체가 아니면 민주주의도 경제정의도 평화도 그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기에,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켜 달라”고 재차 호소했다.
이어 이 대표는 “야권연대를 만들어냈다는 잠시의 영광보다 야권연대의 가치와 긍정성을 훼손한 잘못이 훨씬 큰 사람으로서, 부족함을 채우고 차이를 좁히며 갈등을 없애는 데 헌신해 전국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키겠다”고 밝혔다.
경기동부연합, 무리한 자파 후보 밀기 자충수
애초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진보정당에게만 유독 조그만 실수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며 자신이 강하게 후보사퇴를 만류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23일 오전까지도 이정희 대표는 전혀 사퇴할 의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에 대한 후보 사퇴요구는,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상대 후보였던 김희철 후보 쪽의 40대 이하 유권자 지지 호소 경선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고, 김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상황에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에 통합진보당 ‘빅4’라 불리던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후보와 단일후보 경선을 치른 민주당 후보들이 통합진보당의 문자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며 경선 불복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야권연대 자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23일에는 상당수 언론과 여론을 주도하는 인터넷 게시판, 트위터 등에서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 그룹인 ‘경기동부연합’이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경기동부연합 사정을 잘 아는 통합진보당 비당권파 계열의 한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로 대변되는 경기동부연합이 표면적으로는 사퇴 배경으로 야권연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야권연대에 대한 여론을 걱정했다면 이미 사퇴했어야 한다”며 “경기동부가 무리하게 자파의 후보를 밀어붙이다 온 국민이 경기동부의 행태를 알게 되자 다른 경기동부연합 출신 후보들과 정파에 더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이제야 사퇴를 한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이번 선거를 다 망쳐 버렸다”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이미 사태가 너무 커져서 이정희 대표의 사퇴로도 경기동부연합에 튄 영향이 쉽게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경기동부연합은 이번 사건으로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경기동부연합은 지난 21일 다음(Daum) 실시간 검색어에, 23일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만큼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의 과거 패권주의 행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통합진보당 비례후보들의 상당수가 경기동부연합 성향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에게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일반명부 1위를 차지해 비례 순번 2번을 받은 이석기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전 민중의소리 이사)는 통합진보당 내에서나 진보민중운동 내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선거에 돌입하기 전부터 일반명부 투표 1위를 차지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통합진보당 한 관계자는, 이석기 후보는 경기동부연합이 조직적으로 밀었다고 말했다.
윤원석 후보가 물러난 성남중원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새로 인준을 받은 김미희 후보도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역풍은 더욱 거세졌다.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인사들은 이미 윤원석 후보의 성추행 전력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비례 3번을 받은 김재연 청년비례 후보와 성폭력 사건 2차 가해자 면죄부 논란으로 사퇴요구가 거셌던 4번 정진후 후보도 경기동부연합이 강하게 밀고 있다는 것이 통합진보당 내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중부지역당 사건과 관련이 있는 비례 5번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총장의 후보 추천도 경기동부연합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비례 2번부터 5번까지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사실상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같은 경기동부연합의 패권주의는, 이정희 대표가 국민 정서를 거슬러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용퇴 시기를 늦춤으로써 통합진보당 당내를 넘어 국민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민주당, 이정희 사퇴하자 야권연대 불복 후보들 정리
진보신당, “늦게나마 다행...소선거구제 폐지해야”
이정희 대표의 사퇴 발표를 두고 진보신당 박은지 대변인은 “이정희 후보는 문제가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더 확산되기 전에 국민께 사죄하고 후보직을 사퇴해야 했다. 늦게나마 사퇴와 불출마를 선택해 참으로 다행”이라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두 당 연대 마찰의 원인은 한국정치의 소선거구제라는 승자독식 게임 자체에 있다. 이번 기회에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전면적 비례대표 실시로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정희 대표의 총선 후보 사퇴 결단은 총선 승리와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고 하는 야권의 공동 과제를 실현하고 야권연대를 공고히하기 위한 희생과 양보”라며 “민주통합당 역시 태산 같은 책임감으로 야권연대를 공고히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어 “몇 가지 야권연대 쟁점지역들의 문제가 해소가 되었다”며 “좀 전에 통합진보당 후보들께서 성동을과 동대문갑에서 후보 용퇴를 통한 단일화에 함께해주셨고, 문제가 있었던 인천 부평과 연수 지역 역시 야권연대 쟁점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전했다.
박 대변인은 또 “한명숙 대표는 경선결과에 반발해 왔던 은평을과 노원병, 고양 덕양의 민주통합당 후보들을 만나 야권연대를 위한 당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이에 함께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대표의 사퇴로 야권연대 불복 지역이 하나하나 정리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이정희 대표 기자회견 30분 뒤에는 안산단원갑에서 야권연대 경선에 불복해 출마를 선언했던 백혜련 후보도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함께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명숙 대표는 “이정희 대표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큰 결단을 해준 것에 경의를 표한다”며 “민주통합당 백혜련 후보도 야권연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결단해 준 것에 대해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