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첫 산재 인정...“0%도 기대안했다”

김지숙 씨 “힘들어도 끝까지 싸워 승리하자”

“오늘 소식을 들었는데,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인터넷에 소식이 올라오고 지인에게 연락을 받아 이제 실감이 난다. 너무 좋은 일이고, 당연한 결과이지만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다른 피해자들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노동자가 처음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온양공장 반도체 조립공정 등에서 약 5년 5개월간 일하다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로 앓아온 김지숙(37세) 씨에 대해 공단이 산재로 승인했다고 10일 밝혔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으로 산재 신청한 노동자는 총 22명이지만 이 중 단 한 명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18명중 10명이 다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참세상 자료사진]

김 씨는 22명 중 18번째로 산재 신청했고, 1년가량 공방이 오가다 산재로 인정됐다. 19살 입사한 지난 93년 12월부터 약 1년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그 후 약 4년 5개월간 온양공장에서 근무했다. 그 뒤 퇴직 이후 빈혈 증세를 보이다가 2005년 혈소판감소증, 2008년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았다.

공단은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99년 퇴사 당시에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이 고려돼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김지숙 씨는 이번 결과에 대해 “당연히 산업재해로 인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개인적으로 0%도 산재로 인정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며 “거대기업 삼성이고, 힘든 싸움이고, 다른 동료들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뜻밖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몸이 아프지만 놀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몇 년 동안 삼성전자를 상대로 싸울 각오를 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쓰러질 지도 모르기 때문에 병원비라도 마련하자는 심정으로 현재 일을 하고 있다”며 “힘든 일은 어렵고, 아줌마라고 잘 받아주지 않아 골프장에서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다시 한 번 동료 피해자들을 떠올랐는지 “다 같이 산재 인정을 받으면 좋겠는데...”라며 “그냥 죄송하고, 힘들어도 건강 관리해 끝까지 싸워 승리하자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측도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는 자동화된 최신 반도체 공정에서도 백혈병 유발인자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 1급 발암물질이 공기 중에 노출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실시한 이 연구 결과는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결과에서 일부 감광제 성분 속에서 벤젠이 미량 검출된 결과조차도 “조사가 잘못됐을 뿐 삼성에는 벤젠이 없다”고 계속 주장한 것과 반대된 의견이었다.

반올림 소속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사업장은 다양한 유기화학물이 많고, 고온에서 작업하는 일도 많은데, 삼성전자측은 수동 공정과 자동 공정을 가리고, 해외업체 인바이런까지 동원해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환경과 백혈병 발병이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산보연 연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발암물질이 발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노무사는 이어 “때문에 삼성은 반도체 백혈병을 비롯해 재생불량성빈혈 등 각종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해야 하며, 반도체 사업장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유해하다는 주장을 인정해야 한다”며 “김지숙 씨의 사례로 앞으로 더 많은 피해자들이 직업병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그

삼성 , 반도체 , 산재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재은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