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번째 연쇄살인, 1만의 노동자들은 분노했을까

민주노총 노동절대회 퍼포먼스 ‘6개의 관’ 뒷이야기

“사람들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아. 너의 죽음보다도 어떤 슬픔보다도. 사람들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아. 그저 내가 죽지 않았음을 안도할 뿐” -‘메이데이’ 1집 <죽음> 中

  사진:김용욱 기자

스물 두 번 째. 죽음을 세는 숫자 앞에 사람들의 마음도 무뎌진다. 말 그대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분노조차 쉽지 않다. 누구도 잡으려 하지 않는 연쇄살인범 앞에, 사람들의 무력함이 더해진다. 향내가 밴 상복을 좀처럼 벗지 못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대한문 분향소 안에 갇혔다.

‘세계 노동자의 날’이라고 불리는 5월 1일 메이데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 투쟁한다는 이 날, 결국 쌍용차 노동자들은 직접 관 속으로 들어갔다. 시청에 모인 1만 노동자 앞에서 이들은 직접 동지들의 죽음을 재현하고 오열했다. 이제는, 함께 분노를 느껴야만 한다는 호소였다.

지난 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제 122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현장노동자 퍼포먼스가 민중의례 직후에 배치됐다.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 퀵서비스, 시그네틱스 노동자, 그리고 현장의 율동문선대, 노동예술단 선언(몸짓선언)등이 무대 위에 올랐다. 활자로만 전해지던 죽음이, 관속으로 들어가는 노동자와 그 위에 흩뿌려지는 국화 꽃잎으로 재현됐다. 무대 위에 오른 사람도, 무대 밑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울었다.

퍼포먼스의 시작은 죽음이었다. 신발과 조끼를 벗고 천천히 죽어가는 노동자와 괴로워하는 동지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어떤 감흥도 없다. 대한문 분향소 앞, 재능교육 농성장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는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그룹 ‘메이데이’의 <죽음>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아. 그저 내가 죽지 않았음을 안도할 뿐”



건조하고 기계적인 사람들의 삶은 그로테스크한 춤으로 표현되고, 삶의 군상이 곳곳에 나타난다. 싸움을 요구하는 노조를 따라 팔뚝질을 해보지만 그저 그렇게 투쟁은 흘러가고, 그 틈새를 비집고 정치꾼들의 유세가 이어진다. 그 뒤편에 자리한 분향소에는 여전히 오열과 향내가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극은 ‘혼란’이라는 두 번째 막을 연다.


누군가가 농성장에서 흘러들어온 메시지에 감흥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세상은 갈라진다. 세상을 멈춰야 한다는 사람과, 이를 체념하고 내 갈길 가겠다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엉킨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무대 위에 다섯 개의 관이 올라온다. 관 속에 채워지는 사람들과, 그 주위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



이 혼란은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에 반응하면서 극복의 과정을 거친다. 무대를 가득채운 사람들은 세워져 있는 관을 눕히고, 그 위에 천을 씌우고 죽은 이를 애도하면서 죽음에 대해 반응한다. 그들의 죽음이 외롭지 않도록,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 죽음을 받아 싸우겠다는 메시지다.

퍼포먼스를 연출한 ‘몸짓 선언’의 박현욱 씨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그 장면을 사람들 앞에 대면시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대면한 1만의 노동자들. 그들은 과연 분노했을까.



“노동자가 죽어도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를 애도하고 싶었다”

노동절 무대에 오른 퍼포먼스 ‘6개의 관’은 이미 전 사회적으로 알려진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룬 공연이었다. 대다수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다수가 대면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울었고, 공연한 사람들도 울었다.

퍼포먼스를 연출한 ‘몸짓 선언’의 박현욱 씨는 스스로 ‘불편한 공연’이라고 이야기 한다. 무뎌진 마음에 불편한 상처를 내고, 그 속에서 분노의 싹이 돋기를 바라는 의미다. 연습 내내 문선대들의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는 ‘6개의 관’, 기획의도를 들어 봤다.



박현욱 씨는 “이제는 노동자가 죽어도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총파업의 이유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파업을 선동하는 메시지로서, 노동자들의 죽음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6개의 관’ 기획의도라고 설명한다. 민주노총이 노동절대회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총파업을 해야 하는 강력한 당위가 무엇일까 고민했고, 사람의 죽음만큼 강력한 당위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노동자대회 집회에서 숱한 발언이 있지만, 명망가들의 발언배치로 점철된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발언이 충분히 배치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큰 대중 집회 속에서 진짜 싸움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6개의 관’은 연습 때부터 눈물바다였다. 22명의 동료를 먼저 보내야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직접 관에 들어가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문기주 쌍용차 정비지회장이 관속으로 들어가는 역할을 했고, 쌍용차 노동자 고동민 씨가 오열하는 연기를 했다.

박현욱 씨는 “기주 형님이 관에 들어가는 연습을 하려고 조끼를 벗으려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너무 울기 시작해 연습이 안됐다. 감정 추스르느라 30분을 갈무리하곤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람들이 너무 울어서, 내가 춤을 추는 문선대에게 문기주 형님과 고동민 동지가 연기하는 부분을 아예 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그들이 연기할 때 문선대는 뒤 돌아서서 있었다. 심지어 음악소리가 들리면 장면이 떠올라서 귀도 막았다. 문선대는 무심한 표정으로 춤을 춰야 하는데, 무심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무대에 섰던 문선대도 숱한 고생을 했다. 이들이 춤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난이도 있는 춤을 출 때 목에 무리가 오는 등 힘든 점이 있었다. 특히 사람들끼리 엉키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에서 양 측의 힘 관계가 정말 팽팽하게 부딪히면서 멍이 들기도 하고, 결국 한 명은 공연이 끝나고 새끼손가락이 골절됐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노동절 기념대회의 율동문선을 할지 말지 고민해야 될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박현욱 씨는 “총선 이후부터 민주노총이 총선에 기대 정치권에 청원하는 노동운동 방식에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대회는 그것이 옳다는 사람, 그르다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일단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축사가 맨 앞부분에 배치되면서 또 다시 고민이 들었다고 한다. 희망광장 노동자들의 시청광장 투쟁에 과태료가 부과되고, 재능 농성장에 팬스를 설치하고, 대한문에 침탈이 반복되는 데도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다 했는가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무대에 서는 것이 망설여졌던 것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동지들이 또 다시 관에 들어가는 것을 목도시켜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쌍용차 노동자에게 관에 들어가는 연기를 요구하는 것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또 많이 망설였다.

박현욱 씨는 “무대에 서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정말로 하시겠느냐고 계속 물었다”며 “또한 무대밑에서 지켜봐야 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공연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공연 시작이 살짝 늦었다. 공연 시작 전까지도 문선대가 무대 밑에서 공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견은 팽팽했는데, 일단은 조합원들이 모인 대회를 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향후 평가 하는 걸로 결정하고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알리고 싶었을까? ‘6개의 관’을 연출한 박현욱 씨는 공연 끝 무렵 대오를 향해 국화꽃을 던지는 장면을 여기 모인 우리들을 애도한다는 메시지였다고 한다. 그는 “분노를 느끼지 못하고, 싸움을 망설이는 우리 마음에 대한 애도다. 아울러 이를 극복하고 이제 싸워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지막에 세워져 있던 관을 눕히고 노동해방 천으로 감싼 뒤 관을 끌어안은 장면은 관에 있는 사람을 깨워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싸우겠으니 편하게 잠들라는 의미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고립감과 외로움에 싸우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이제 우리가 총파업을 성사시키고 쌍용차 동지들을 현장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위로와 약속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과 그들의 분노가 무대를 넘어서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 지, ‘6개의 관’을 품은 5월의 하늘은 뜨겁게 달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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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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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 분노 분노!

    정말 노동자들의 분노를 표출하게 하고 싶다면, 애도나 동정심을 끌어내는 것보다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본가들과 함께, 선거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 정당 지지로 몰고 가는 통진당, 민주노총 관료들을 향한 분노는 어떻게 조직될 수 있을까요? 공연을 기획하는 동지들은 이 고민을 해야 합니다.

  • gmagma

    투쟁하지 않은채 선거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에 대한 부분도 공연에 있었습니다. 특히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제대로 찍혀있더군요. 누가 찍으셨는지... 굉장히 분노해서 공연 그부분을 촬영하신듯...
    그리고..애도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정심이 아니라 연대에 대한 호소 역시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심지어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도 공연의 큰 의미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