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여기 사람이 있어요”

빈민, 장애인, 철거민, 해고노동자... ‘사람이 있다’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담은 패치워크 작업 ‘바늘땀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쌍용차는 어떤가. 죽음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나날이 속도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공장 안팎으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자동차 절망 공장’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는가. 인면수심의 괴물로 변해가는 회사 쪽을 따라 공장 안 노동자들도 어느새 그 대열에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망각한 인간들의 출퇴근 행렬은 죽음의 행렬만큼이나 끔찍하다. 이들은 두 부류가 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모르는 사람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대열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이다. 파괴된 인간성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 했던가. 이들도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고 사람의 온기를 상실한 냉혈한이 돼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대한문에 사람이 모여야 하는 이유는 죽음을 막고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공장 안팎으로 파괴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사람의 온기와 인간의 핏줄을 만들어줘야 하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무감각의 괴물을 생산하는 것에 동의할지 모른다. 대한문엔 사람이 있어야 한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대한문, 여기 사람이 있어요’



‘대한문엔 사람이 있어야 한다’

  5월 18일로 49재를 맞이하는 쌍용차 스물두 번째 희생자 고 이윤형 씨의 분향소.
대한문, 그곳에 쌍용차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있다. 오는 5월 18일은 쌍용차 스물두 번째 희생자 고 이윤형 씨의 49재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스물세 번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 날 선 긴장감과 보이지 않는 희망이 먼지처럼 엉켜 그 공간에 흐르고 있다.

무심하게 지나가며 힐끗 눈길만을 주는 사람. 미끄러지듯 비껴가는 사람. 때 묻은 은박깔개 위에 익숙하게 털썩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그리고 낡아 헤진 옷차림에 술 취해 아스팔트 길바닥에 누워있는 저 늙은 남자까지. 이 모든 모습이 서울 시청 대한문의 풍경을 이룬다. 아침의 서늘한 공기, 한낮의 뜨거운 볕이 공간 위로 흐른다.

지난 10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 걸까.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서명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는 걸까. 궁금해졌다.

이날 아침 11시부터 대한문 분향소 앞에 모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은 자신의 가방에서 갖가지 색상의 반소매 티를 꺼냈다. 안 입는 각종 단체 티였다. 그들은 옷들을 하나하나 펼치며 자로 치수를 재더니 가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옷들은 제각기 하나씩 챙겨가기도 했다.

빈곤사회연대 장호경 활동가는 “빈곤사회연대는 빈민 대중 단체들이 함께 만든 연대체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하루 농성을 함께하게 됐다”라며 “안 입는 옷들을 잘라 바늘땀으로 이어 연대와 지지의 메시지를 담은 3mX3m의 대형걸개작업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담은 패치워크 작업 ‘바늘땀연대’는 10일과 17일 2주에 걸쳐 진행된다.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대한문에 연대하러 오는 사람들 100명의 목소리를 모아 지지와 연대의 동영상 '바늘땀행동 영상패치워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송경동 시인이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바늘땀행동 영상패치워크도 이뤄진다. 빈곤사회연대는 “대한문에 연대하러 오는 사람들 100명의 목소리를 모아 지지와 연대의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youtube) 등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패치워크는 17일 저녁 촛불문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날 대한문 분향소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연대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도 함께했다.

전장연 정은주 활동가는 “지금까지 22명이 죽었지만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 편한 마음으로 올 수가 없다”라며 “쌍용차와 관련한 기사도 잘 보지 못한다”라고 토로했다.

정 활동가는 “활동하면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이러한 부분이 가장 힘들다”라며 “집권당이 바뀐다고 이 사회 자본주의 구조가 통째로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은주(오른쪽), 문애린 활동가가 '바늘땀연대'에 함께하고 있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애린 활동가는 “장애인에게 바느질은 거의 불가능하고 힘든 일인데, 같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도 연대라고 생각한다”라며 “집회 때 함께 싸우는 것도 연대지만 같은 자리에서 마음을 함께 하는 것도 연대”라고 강조했다.

문 활동가는 “쌍용차, 재능, 하이닉스 등 전국 곳곳에서 몇 년씩 싸우고 있는 사업장이 있는데, 특히 그 안의 장애인 노동자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왜 그렇게 당해야 하는지 깨닫고, 나부터 변해서 주변 동지들과 연대하며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시민상주단으로 참여한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박호철 부위원장(41)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소홀히 되는 것 같고, 정부도 이 문제를 잘 풀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수문장 교대식을 하루라도 중단했으면 좋겠는데 분향소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이날 대한문 분향소 앞에는 특별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밝은 오렌지색 티를 입은 그녀는 분향 후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분향 후, 대구 영남대 병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씨도 ‘바늘땀연대’에 함께했다.
대구 영남대 병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씨(50). 박 씨는 “2006년 투쟁으로 해고됐으며 작년 7월부터 상경투쟁 중”이라며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는 영남대, 영남이공대학, 영남병원에 맞서 투쟁하고 있으며, 현재 삼성동 박근혜 집 앞, 국회 새누리당사 앞, 서울역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 씨는 “06년도에 열 명이 해고됐다가 7명이 대법원 판결로 11년 2월 복직했으나 세 명은 여전히 해고상태이고, 사측의 노조탄압으로 당시 천여 명에 달했던 조합원이 07년 후반부터는 백 명도 채 남지 않았다”라며 “쌍용차 동지들과는 작년에 (경기도 평택 쌍용차공장에서 부산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곳까지 9일 동안 행진했던) 소금꽃 천리길도 함께했다”라고 전했다. 현재 박 씨는 다른 여성조합원 한 명과 자그마한 방을 구해 살면서 상경투쟁 중이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 ‘바늘땀연대’에 묵묵히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2009년 용산참사 이상림 열사 며느리이자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 씨의 아내 정영신 씨였다. 그녀는 자신을 ‘용산 며느리’라고 소개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로 있는 정 씨는 “매일 대한문에 틈나는 대로 오는데 오늘 빈곤사회연대 분들이 바느질하고 계셔서 함께하고 있다”라며 “시아버지(이상림 열사) 돌아가시고 남편(이충연 씨) 구속되고 나도 철거민이었는데,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마침내 큰 걸개가 되듯 우리도 뭉쳐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정 씨는 “용산과 쌍용차는 2009년 같은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진압당했기에 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이 3년이 지났고, 용산과 쌍용차 문제는 함께 해결돼야 한다.”라며 “유가족들이 장례 치르고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당시 경찰 한 명이 죽었다는 이유로 돌아가신 분들까지 살인자 취급받으며 살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정 씨는 “이 걸개가 완성되기 전까지 대통령이 단 한 번만 만나줬으면 좋겠다”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세금도 잘 내고 살고 있었는데 왜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지, 당시 왜 그랬는지 말이라도 듣고 싶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큰 도롯가에는 ‘용산, 쌍용차 살인진압 김석기, 조현오를 처벌하라’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서명테이블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용산, 쌍용차 구속자 석방과 살인진압 김석기, 조현오 처벌'을 촉구하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날 서명을 받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박승환 조직차장은 “이 두 사건은 정당한 요구를 하는 시민에게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이 이뤄졌다는 것과 그러한 요구가 범죄시 되고 처벌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라며 “정리해고가 노동권을 박탈하고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는데,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는 당연시되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서명 후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차문제 해결하라!'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또래 친구들과 서명을 하던 김채영 양(고3)은 “용산참사 사건은 TV에서 보고 알았는데 쌍용차 사건은 방금 (기자분이 말씀해주셔서) 처음 알았다”라며 “그래도 이렇게 서명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밝혔다.

동료 직장인들과 함께 서명에 동참한 하아무개 씨는 “쌍용차 사건에 대해 생계가 어려워 자살했다고는 들었는데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른다”라며 “이러한 소식을 들으면 슬프고, 해고당해도 제도적 보호 장치가 있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기사제휴=비마이너)

  '해고는 살인이다' 플래카드 앞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자리를 지켰다.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차문제 해결하라!' 1인 시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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