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혁신 토론, 자유주의 논쟁 본격화 되나

NL-PD 문제의식 청산 경계도 제기...“변혁론, 대중정당 노선에 타당한가”

5일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 산하 새로나기 특별위원회가 개최한 ‘통합진보당의 새로운 가치와 비전의 재구성’ 토론회에서 ‘자유’가 진보정당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기반으로 했던 80년대의 문제의식에 대한 청산적 혁신 논의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진행됐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자유는 보수가 중요시하는 가치였다. 진보세력에 있어 ‘자유’의 가치는 자유주의로 통칭되면서 보수 세력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로 분류됐다.

구 민주노동당이 통일운동 세력의 자주와 노동운동 세력의 평등 개념을 주요한 가치로 삼아온 것을 생각하면 자유(주의)에 대한 가치 논쟁은 진보운동 전반에 큰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 운동이 반신자유주의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투쟁을 전개해 온 과정을 본다면, 통합진보당 혁신 논의에서 자유(주의)가 중요한 가치로 거론되고 논란이 되는 것은 참여당과의 통합 이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동안 자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온 세력은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 세력이었다. 이는 이후 통합진보당 안팎에서 치열한 노선 논쟁으로 갈 가능성을 드러낸다.

정태인, 진보진영 자유주의 논쟁 본격 제기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통합진보당의 가치 및 비전과 관련한 논쟁점 중 하나로 자유주의를 들었다. 정태인 원장은 “과연 ‘자유’는 기피되어야 할 가치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문제는 ‘개인주의’”라고 지적했다.

정태인 원장은 “특히 사회적 딜레마(정치의 주 해결과제)에서 개인의 이익을 고집해 문제가 해결 되지 못하는 것이지 자유는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후 서구 복지국가는 대부분 자유주의자에 의해 주도되었다”며 “대공황 극복은 케인스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정태인 원장은 “롤즈-센 등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진보의 훌륭한 이론적 자원”이라며 “롤즈(John Rawls)는 스웨덴 사민주의를 두고도 ‘부정의를 방치하는 소유구조’라고 할 비판할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최대치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진보가 비판하는 정도는 롤즈의 자유주의로 다 포괄된다. 자유주의 이름으로 가치의 정치를 제한하는 것은 협소하다”고 덧붙였다.


정태인 원장은 노동중심성 문제도 논쟁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노동이 인간 실현의 보편적 조건이라는 철학 차원,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인구가 임노동자라는 사회학 차원, 자본주의 경제에서 임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경제학 차원의 이야기라면 노동중심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서도 “노동중심성이 맑스-레닌의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조직(군대)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는 민주집중제와 연관된 개념이라면 현재의 세계 및 한국의 상황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정태인 원장은 “실제로 대기업, 남성, 중화학, 수출 부문 조직 노동자는 스웨덴에서조차 집단이기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노동중심성의 가치는 비정규직 조직화 등의 구체적 실행 방향, 당원 모두의 참여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온 천호선 새로나기 특위위원(전 대변인)은 “자주·민주·통일 그리고 평등·생태·평화·연대라는 가치는 그 정의와 우리 역사와 현실에 있어 바람직한 진보의 가치”라며 “그러나 자주가 단지 반미자주화로, 통일이 북의 현실을 무조건 존중하는 것으로, 평등이 산업시대의 노동계급 중심성으로만 제한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며 생태가 에너지문제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오해받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천호선 위원은 이어 “자유는 분명한 진보적 가치”라며 “최근에 공감을 얻고 있는 정의와 공정의 가치도 수용되어야 하며, 진보적 가치가 시대에 맞게 재정립 되고 새롭게 등장한 과제와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철 한겨레 정치부 선임기자는 “평등을 실현했던 사회가 사회주의 국가인데 역사적 실험의 결과 아닌 걸로 상당 부분 밝혀진 상황에서, 노동자 권익이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평등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포괄적인 개념을 가치로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철 기자는 “이제는 자유와 정의의 개념을 세워야 할 때”며 “자유만큼 개인의 삶에 있어 소중한 게 없으며, 자유는 진보가 달성한 성과물이자 지향할 가치다. 과거에는 자유를 강조하면 소시민적 가치라고 욕을 먹었지만, 이제는 자유를 보수의 전유물로 둘 것이 아니라 진보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내용을 채워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김민웅, “80년대 모순 해결 안 됐는데, 80년대식 이라는 표현 위험”

이런 자유의 가치가 향우 진보정당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제기되면서 토론은 80년대 변혁론의 기반이 됐던 NL(민족해방)-PD(민중민주) 논쟁으로 이어졌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통합진보당의 정당성의 위기 때문에 진보가 가져온 기본 가치인 계급이나 민족문제 자체를 폐기하거나, 모순구조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태인 원장은 기본 전제를 동의하면서도 통합진보당 내 독특한 정파문화와 운동정치가 진보의 기득권 구조와 결부돼 80년대 변혁론을, 기득권을 지키는 이론적 방패로 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창언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교수는 적극적인 가치 재구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NL-PD가 제기한 모순구조를 폐기하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지만, 충분히 진화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창언 교수는 80년대 변혁론이 한국사회 운동 노선이나 변혁 노선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중정당 노선으로 타당한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회 사회를 맡았던 박원석 의원(새로나기 특위 위원장)은 “80년대식 변혁론이 대중적 진보정당의 정치노선으로 유효한가를 봐야 한다”며 “정강 정책이 현대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변혁론적 요소가 상당수 남아 있다. 진보 시즌2에선 새로운 진보의 가치 노선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반면 김민웅 교수는 “혁신 논의에서 진보정당의 낡은 모습을 벗어내고 새로 나가자 할 때 모든 것을 80년대식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위험하다”며 “80년대에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본다면 진보정당의 원칙이 위험해진다. 자주, 평화, 계급, 평등 노선 모두 다 중요하다. 우리사회와 국제정세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바꾸는 문제로 다가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웅 교수는 이어 “자주는 민족이 흔들리지 않고 평화적 해법을 찾는 문제이고, 계급 문제도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지 않고 정치적 주체로 주도권을 잡고 자신의 이해를 우리 사회에서 실현하는 중요한 과제”라며 “우리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킬 주도권과 주체를 어떻게 형성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내외적으로 걸려있는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웅 교수는 “그런 차원에서 자칫 조중동 보수신문의 프레임에 빨려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잘 정리하고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게 문제를 만들 과정에 있지만 이 문제 자체를 마치 낡은 문제제기처럼 생각하면 이를 오늘의 현실에 적용해 진보적 정책을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정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진보정치의 역량을 해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80년대의 문제제기를 폐기하는 것은 대중을 설득하고 진보정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당시의 문제제기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면,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당대의 문제제기와 과거 문제의식을 결합시키는 능력이 떨어진 것이 문제이지 그 문제제기가 낡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정태인, “노동해방.민족해방, 운동권의 기득권 지키는 수단”

정태인 원장은 김민웅 교수의 지적에 동의를 전제로 “민족해방과 노동해방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운동권의 기득권 집단 몇몇이 거기에 연결돼 있는 몇 가지 투쟁을 자기의 이익을 지키는데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 노동해방이나 민족해방 이론으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동북아 정세분석이나 계급분석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 말들 자체가 운동권의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태인 원장은 “가령 노동중심성이란 말이 민주노총 대기업 위주로 돼 있고, 대기업 노조들이 노동시간 연장 투쟁을 하는 상황”이라며 “그런 것들이 노동중심성이나 훨씬 혁명적 언사로 표현되지만 오히려 노동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가로막을 수 있다. 민족해방도 맞는 얘기지만 새로운 사고를 가로막고 주체형성을 가로막는 측면이 우리 당 안에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다.

정태인 원장은 이어 “이념이 고정된 생산관계가 됐다”며 “이념을 혁신하거나 그야말로 조그만 써클을 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다. 진짜 집권을 하고 싶다면 단순히 말투를 바꾸는 것을 넘어 이념에 대해 진지하게 혁신하고 정세분석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민웅 교수는 “민족해방이든 노동해방이든 자기 권력의 의지로 활용하는 자들을 정치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진보세력이 지난 역사동안 치열한 희생과 헌신과 기록 축적을 통해 만든 소중한 진보적 과제와 문제제기를 포기하고 매도당하는 흐름은 경계해야 한다. 성찰에 접근해 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창언, “기존 담론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

이창언 교수는 “과거의 운동성과 새로운 저항성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에 어떻게 잘 접합하고, 당시의 문제의식을 성찰적으로 전화할 것인가에는 일정 의미가 있다”며 “NL의 반미와 대중노선, PD의 여전히 반자본과 노동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문제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재전유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창언 교수는 “여기서 고민은 운동의 주기의 문제다. 권위주의 시대의 운동주기, 권위주의 이후 민주화,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 프레임이 관통되는 시기의 운동주기가 있고 그때마다 운동이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기존담론이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NL이 북한문제를 객관과 보편적 관점이 아닌 특수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게 과도한 과잉 민족주의를 낳고 있다”며 “과잉 민족주의의 특징은 동일성이라서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 집단주의적 논리가 강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요구를 담는 데 제약이 있다”고 도태의 지점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NL과 PD는 근대적인 변혁이론으로 당 운동과는 맞지 않는다고 본다”며 “이를테면 NL론이 갖는 주요 핵심적 요소가 통일전선 중심성이다. 당이 통일전선의 하위조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고전적 PD의 입장은 합법 정당 자체가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PD와 NL론은 진화하고 있고 전화의 가능성도 있지만 여전히 인간 이성과 의지에 대한 강조나, 타자에 대한 집단적 배척, 계몽주체로서의 전위, 집단내부의 동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지도자나 성장주의적 잔재가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언 교수는 “시대가 바뀌고 규칙이 바뀌면 운동 방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시대의 근원적 모순에서 시작하는 진보의 가치 만들어야 하지만, 과거의 관행과 과거 현실 해석이 갖고 있는 틀과 프레임에 끊임없이 의문을 붙이고 개조하고 대중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통합진보당이 현대적 대중정당으로 국민과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김혜정, “강령에 녹색가치 있다가 아닌, 페이퍼에만 있었다는 인정이 중요”

반면 박경순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소 부원장은 “우리 당의 현실은 80년대 프레임을 넘어 발전해 왔다. 운동론적 NL-PD 논쟁은 무의미하다”며 “이미 자주와 평등의 가치만 가지고 다양한 진보적 대중을 대변할 수 있느냐는 강령 개정 과정의 논쟁이 있었다. 토론 끝에 자주와 평등 뿐만 아니라 자유도 중심에 넣고, 환경과 생태 등 녹색의 가치와 성소수자 문제 등에 있어 중심과 부차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연대의 가치로 재구성하는 업그레이드 된 진보의 재구성을 고민했다”고 반박했다.

천호선 위원은 “이제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 해결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과거의 이유는 남아 있지만, 복잡화되고 새롭게 문제되는 생태와 평등을 어떻게 연결하고, 자주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혜정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시대적 흐름을 읽고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대중정당의 역할인데 통진당은 전선식 사고와 패권적인 집단적 사고방식으로 대중을 대상화하는 게 문제”라며 “지루하고 구태의연하다. 그래서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혜정 전 사무처장은 “통진당 강령에 녹색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페이퍼 속 강령은 의미가 없다”며 “우리 강령에 이런 게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페이퍼 속에만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에 변화가능성이 있다. 종이 속에 있는 강령의 실현의지와 플랜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처장은 “통진당은 북핵 문제가 나오면 항상 미국과 관계를 들고 나온다. 자주적 입장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되고 북핵문제에 모호한 답이 나온다”며 “미국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핵개발이 진정 북한과 남한 민중을 위한 길이냐를 봐야 한다. 그 지점을 통진당이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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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그래..

    쓰레기들만 득시글 대는구나!
    청산주의! 반공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