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콜텍의 예술적 연대...콜트 농성장 예술 작업실을 가다

“예술이란 결국 아름다운 세상을 향하는 일”

“파시스트를 없애는 기계” (This machine kills fascists)

1940년대 미국의 포크-블루스 가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는 자신의 기타에 이 문장을 새겨 넣었다. 그는 당시 대공황의 여파에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가수임과 동시에 미국 포크-블루스의 시작을 알린 거장이었다. 세계적인 가수 밥 딜런(Bob Dylan)도 우디 거스리의 영향을 받았다.

  부평 콜트 농성장 입구

‘파시스트를 없애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

콜트-콜텍은 기타를 만드는 회사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콜트-콜텍이 생산한 기타는 파시스트를 죽이는 기계가 되기도 했고, 연인들의 사랑의 세레나데가 되기도, 로큰롤 키드들의 꿈의 지렛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기타는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이 됐다. 그러나 정작 그 기타를 만들어낸 노동자들에게도 기타는 위로와 희망이었을까

2007년, 정리해고와 연이은 직장폐쇄는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위로와 희망으로부터 갈라놨다. 졸지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오늘까지 1900여일을 싸우고 있다.

그들이 싸움을 시작한 후 그들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대부분 그들이 만든 기타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TV에서나 보던 대중음악인도 있었고, 홍대 클럽 언저리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디밴드도 있었다. 저마다 연주하는 음악도 다르고, 공간과 인지도도, 연령대도 다르지만 오직 한 가지,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이 만든 기타의 위로를 받은 단 한 가지가 그들을 모이게 했다. 투쟁 1900여일, 벌써 콜트-콜텍에 연대한 뮤지션만 450팀이 넘는다.

  농성장 한쪽에 놓인 기타모양 조형물

열악한 노동환경과 정리해고의 공장에서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에게 기타는 그저 상품이었고 착취의 수단이었지만 우정과 연대의 거리에서 기타는 다시 그들에게도 위로와 희망의 연주가 됐다. 콜트-콜텍의 노동자들도 다시 기타를 들었다. ‘콜밴’, 이번에는 제작이 아니라 연주였다. 그러나 연주든 제작이든, 공장이든 거리든 그들의 기타가 전해주는 것은 연대의 위로. 그들은 그렇게 계속 ‘파시스트를 없애는 기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노래의 꿈

“내겐 작은 꿈이 있어. 그대 지치고 힘들 때 그대 작은 가슴에 들어가 위로가 되려해. 다시 한 번 그대 가슴을 펴고 불러 준다면 끝까지 함께 할테야” - 꽃다지, 노래의 꿈 中

시청 앞, 재능교육지부의 농성장, 1600일을 넘긴 장기 투쟁 사업장에 콜밴이 섰다. 관객은 많지 않았다. 콜밴의 연주력도 대단치 않았다. 종종 가사를 잊기도 했고, ‘삑사리’(음이탈)도 심심치 않다. 부족했던 연주력을 메우려는 듯 객석을 향해 던진 유머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객석에선 콜밴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콜밴 역시 실수를 머쓱해 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연주를 이어간다. 모든 실수조차 가능성으로 인식한다는 아마추어리즘을 이야기 하고자함은 아니다. 그들의 연주는 비록 아마추어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공연은 ‘진짜’였다. 조악한 음향시설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들리는 그들의 노래에 실린 위로와 연대의 힘. 그건 콜밴의 힘이기도, 노래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기도. 연대, 위로, 희망 같은 말들이 갖는 힘이기도.

  콜밴이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콜트-콜텍 지부는 16일 새벽 용역 직원들의 기습적인 농성장 침탈로 ‘희망과 연대의 날’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밤 예정돼 있던 콜밴의 무대 역시 취소됐다. 콜밴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많은 동지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연주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

“콜밴을 결성한 계기가 동지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콜트-콜텍과 다른 장투 사업장 노동자들이 연대하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연주하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죠”

어느 날부터인가 투쟁 현장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엄한 결기와 전장의 팔뚝질만이 자리하던 그곳에 로큰롤 사운드의 열광과 전시, 공연의 발랄함이 스며들었다. (결의에 찬 팔뚝질을 구시대적 투쟁이라 폄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팔뚝질과 로큰롤의 결합, 투쟁과 예술의 한 발 나아간 결합이다.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가는 것”

부평 콜트 농성장에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농성장에 상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통한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16일 새벽, 농성장이 용역들에게 침탈당했을 때도 가장먼저 달려온 건 작가들이었다.

콜트 농성장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성효숙 작가는 “예술가란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향하는 꿈을 꾸는 이들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저버린 곳,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는 곳에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재 콜트 농성장에는 3명의 작가들이 작업실을 차려놓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농성장을 ‘전시관’으로 만들고 있다. 집회에 쓰이는 용품들이나 투쟁을 선전하는 선전물품들을 제작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덕분에 콜트 농성장은 여느 농성장보다 화사하다. 폐공장의 을씨년스러움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이 만든 조형물과 벽화들은 이곳이 1900여일째 싸움을 이어가는 농성장이 아니라 마치 폐공장을 활용한 갤러리처럼 보이게 한다.

직장폐쇄 이전에 관리실, 회의실로 사용되던 공간이 그들의 작업실이 됐다. 그곳에서 그들은 작품 활동을 하거나 집회에 필요한 선전물을 만든다.

“이 공장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던 곳이잖아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악기들의 음에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어있는 것 같고… 그래서 그걸 표현해야 겠다고생각하며 이 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들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일이 결코 수월치만은 않다.

“사측의 경비 용역 직원들이 작업실을 철거하고 작품을 훼손하는 일도 있었어요. 단전 단수된 상황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도 쉽지 않았구요. 그래서 경비 직원들이 다 퇴근한 밤에야 나와서 작업하고, 아침에 돌아가기 전에 작업물들을 다 숨겨놓으면서 작품을 준비하죠”

다음 달 15일로 예정된 전시회 일정의 가장 큰 걸림돌도 사측의 방해다. 작가들은 전시회 당일까지 사측이 전시회 일정을 알 수 없도록 몰래 전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구분할 수 없다

80년대 이래 소위 ‘민중예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사이의 갈등과 논쟁을 단 몇 줄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예술의 존재의의’와 ‘민중예술의 부족한 작품성’에 대한 논쟁들일 것이다. 성효숙 작가는 민중미술과 순수예술을 구분하는 잣대 자체가 이젠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민중예술과 순수예술을 구분하는 저마다의 미(美)의식 안에도 공통분모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공통분모들 위에 다양한 폭을 가진 예술가들의 사유가 존재하는 것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미의식 자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효숙 작가

성 작가는 80년대의 노동현장, 매일이 투쟁이던 그 당시 “급박하게 작품을 생산해야 했던 그 시기의 작품들 중엔 조악한 작품들도 분명히 섞여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당시보단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여러 기금들도 조성됐고, 대립하여 서로 적대하는 것처럼도 보이던 순수예술과 민중예술간의 간극도 젊은 작가들 사이에선 많이 희석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예술의 근본적 존재 자체가 “아름다움을 향하는 것”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은 다 만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여전히 조직이나 진영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보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 다양하고 자유로운 스펙트럼을 인정하고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실 ‘민중미술’이라는 말 자체가 보수언론에서 만들어낸 언어다. 현실의 고통에 공감하는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그들이 분리하고 구분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전진경 작가의 벽화

그녀는 “의식에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며 세계는 다양한 차원의 세계가 중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선적인 의식과 미감으로 예술을 규정짓고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혹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뜻일 것이다.

콜트 농성장의 작업실

‘관리실’이라는 문패가 여전히 걸려있는 성 작가의 작업실엔 작업중인 벽화가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기타와 돌고래 그림이 눈에 띈다. 대뜸 강정마을의 ‘남방큰돌고래’가 생각났다. 제주의 돌고래가 멀리 콜트-콜텍의 공장에도 살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저 돌고래는 제주 앞바다에서 제가 직접 봤던 돌고래에요. 돌고래가 내는 음파에 치유받는 느낌이 분명히 들었고 이후에도 어디가 아플 때마다 저 돌고래들을 보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돌고래와 악기를 연주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상징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성효숙 작가의 벽화

성효숙 작가는 16일 새벽 포크레인을 앞세운 용역들의 기습적 침탈에도 작업을 진행했다.
“일부러 보란 듯이 계속했죠.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작업의 결과 예쁘게 색칠된 모자들이 탄생했다. 콜트 농성장의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모자가 아니라 그렇게 직접, 혹은 작가들이 칠해준 본인만의 ‘오리지널’ 모자를 보유하고 있다.

경비용역 직원들의 눈을 피해 밤에 작업을 시작한다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도 여느 미술가들의 작업실과 다르지 않다. 널부러진 물감과 팔레트, 어질러진 작업대, 낙서인지 작품인지 구분되지 않는 그림과 글귀들.

아직 출근(?)하지 않은 전진경 작가의 작업실엔 삐뚤빼뚤한 얼굴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다. 방종운 콜트 지회장이 막걸리 한잔 걸치고 일필휘지로 그려 내린 자화상이다. 그는 그림 밑에 낙관대신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의 그 사랑 앞에 두려울 게 무엇이 있으랴”

  방종운 콜트 지회장 자화상

이 연대, 예술적이다

술에 취해 자화상을 그리는 지회장. 매주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여는 밴드가 있는 노조. 450여 팀의 뮤지션들이 앞 다퉈 연대하는 투쟁 사업장. 건물 한 동을 미술가들의 작업실로 내어주는 농성장. 콜트-콜텍은 예술과 투쟁의 관계가, 연대의 형태가 더욱 다양해 질 수 있음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취재를 마칠 무렵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콜밴의 리사이틀 계획’에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놀랍게도 “기획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7월 23일이 투쟁 2000일을 맞는 날인데, 그 날을 중심으로 15일부터 ‘2000일 주간’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25일에는 그동안보다 규모가 큰 공연장에서 여러 뮤지션들과 콜밴이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00일 주간에는 미술가들의 전시회도 열린다. 작가들은 호시탐탐 침탈과 철거를 노리는 사측의 견제를 피해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전시회는 며칠에 걸쳐 열릴 것이지만 첫 째날이 지나면 사측이 어떻게든 방해를 할지 몰라서 그에대한 대책도 논의 중이다.

콜트-콜텍을 보면서 우드스탁이 떠올랐다. 평화와 반전을 염원하는 세계 유수의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던 바로 그.

전설과 같은 우드스탁의 뮤지션들과 콜밴은 다르다. 그러나 같은 것은 ‘무대 위의 그들이 무대 밑의 우리와 같은 것을 나눈다는 사실’일 것이다. 100만의 인파가 몰렸던 우드스탁과 250명의 희망 뚜벅이가 모였던 콜트 농성장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전진경 작가의 작업실 의자에 새겨진 문장처럼 그들은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여러모로) 예술적인’연대를 통해 마침내 돌아간 공장에서 만든 기타는 ‘파시스트를 없애는 기계’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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