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철회투쟁 1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

“주변서 좋은 일 한다 응원해줘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회사. 별다른 욕심 없이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곳에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어느새 청춘을 다 보내고 30년이 넘었다. 6월 14일 서울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만난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시그네틱스분회 이미자 조합원에게 시그네틱스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 조합원을 두 번이나 해고했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지난 해 7월 정리해고를 당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6월 14일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 전에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이 율동 연습을 하고 있다 [출처: 강정주 금속노동자]

이날 만난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대부분 20~30년씩 일한 노동자들로 이 조합원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모두 2001년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 이전 반대 투쟁을 벌이다 해고됐다. 그리고 2007년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했지만 4년도 되지 않아 두 번째 해고를 당한다.

벌써 1년

“2007년에 복귀한 뒤에도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가 자진해서 회사를 떠나도록 괴롭혔다.” 이 조합원은 작업하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이 일도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하냐면서 몇 달씩 일거리도 없이 앉아있게 했다고 증언한다. “자기 발로 사표 쓰고 나가길 원했지만 조합원들은 똘똘 뭉쳐 견뎠다.” 그러자 회사가 꺼내든 것이 2011년 정리해고였다. 이 조합원은 “일하면서 힘들더라도 또 이런 일 당할 줄은 몰랐다”고 억울해한다. 또 다른 조합원도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옆에서 거든다.

  "이왕 하는 투쟁 즐겁게 해야지."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본사 앞 하루 난장집회를 하면서 조합원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다. [출처: 강정주 금속노동자]

“영풍그룹은 하나도 어렵지 않아. 잘 나가는 회사잖아. 그런데 소상장제하고 비정규직 쓰겠다고 이러는 거지. 다 똑같이 일하는데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다 나누는 건 정말 잘못된 거잖아.” 이 조합원은 비정규직 고용만 늘리려는 회사 태도에 분노했다.

이 조합원이 2007년 복귀해 일하던 안산공장에도 비정규직이 있었다. “어느 날 비정규직 노동자가 새벽에 출근했는데 회사가 일 없다고 그냥 가라는 거야. 그런데 가다말고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돌아오더라고. 회사가 다시 필요하다고 불렀다면서. 회사 돈 많이 벌었다고 우리 더 주는 것도 아니면서 일해서 먹고 살아야하는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이미자 조합원은 "잘나가는 회사에서 비정규직, 소사장제 하겠다고 이렇게 해고하는 것 잘못된 것"이라며 회사의 행태를 규탄했다. [출처: 강정주 금속노동자]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되지”

“사람인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다리 아프면 의자 달라고 말하는 게 당연한 건데, 비정규직은 그렇게 못해. 회사는 그런 사람만 고용하길 원하는 것이잖아.” 이 조합원은 “우리가 싸움 포기하면 영풍자본이 한 일은 아무 문제없는 게 되고, 다른 회사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지 않겠냐”고 덧붙인다.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싸움을 이어간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경기도 안산공장에서 집회하고 영풍그룹과 영풍문고 등을 다니며 1인시위도 한다. 이 조합원은 “10년 전에 처음 투쟁할 때는 1인시위도 잘 못했는데, 이제 창피한 것도 아니고 내 주장이 당당하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며 친구와 친척들도 ‘좋은 일’ 한다고 응원한다고 전한다.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정리해고 철회 결의대회에서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과 연대 온 동지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투쟁에 왜 어려움이 없겠는가. 하지만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이왕 하는 것 즐겁게 하자”고 한결 같이 말한다. 김은정 분회 조직부장은 “회사가 고용한 용역이 지켜서 본사 앞 집회는 할 엄두도 못 냈었다”며 “어떻게든 2박 3일 버티며 집회신고하고 이렇게 집회하니까 내가 하겠다는 생각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느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본사 앞에서 집회 하는 것도 꿈만 같고, 투쟁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왕 하는 것 즐겁게”

이 조합원도 “강제로 쫓겨난건데 그냥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 걸리고 아팠을 것인데 이렇게 함께 싸우니 사람도 만나고 생동감도 느껴지고 좋다”고 얘기한다. 이들이 이런 마음을 먹는 데는 지난 10년의 투쟁 역사가 역할을 했다. 이 조합원은 10년 전 노조가 뭔지도 몰랐고, 간부 한 번, 노조 행사에 참여 한 번 한 적 없었다. “많이 변했지. 예전에는 남자들하고 말도 못했는데, 이제는 남성 동지들하고 농담도 하고 경찰서 가서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큰 소리로 싸우기도 한다. 춤도 못 췄는데 이제 노동가요 들으면 저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발언도 하고 집회 사회까지 봤다니깐.” 이 조합원은 “든든한 노조가 있고 그 덕에 내가 세상에 눈을 떴고, 덕분에 나도 이만큼 변했다”고 말한다.

“이길 것이라는 생각만 하니 걱정 없다. 이미 한 번 복직해봤는데 또 못하란 법 있나. 우리 투쟁은 꼭 이길 것 같아. 이기는 방법? 우리가 잘못한 것 없으니 끝까지 하면 이기지 않겠어?” 이 조합원은 이번 싸움에 자신감이 가득하다. 다른 조합원에게 물어도 이들이 싸우는 목표는 하나다. 복직해서 정년까지 시그네틱스에서 일하는 것. 김은정 분회 조직부장은 “시그네틱스는 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라고 강조한다. (제휴=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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