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제국주의와 독재자 사이에서

[국제통신] 시리아와 좌파운동의 역할

[편집자주] 사미 라마다니(Sami Ramadani)는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 사회학 조교수였고 여러 해 동안 사담 후세인 정권과 제국주의 반대투쟁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독립언론인인 사무엘 그로브(Samuel Grove)와의 인터뷰에서 서구와 걸프 국가들이 지원한 반동세력에 의해 빛을 잃고 있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맞선 민주적 저항을 논증하며 시리아에서의 갈등의 역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리아 민중의 투쟁과 제국주의 세력의 개입, 이 속에서 좌파운동진영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상세한 역사서술과 종파, 계급간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짚어 보고 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그로브: 서구의 외부자들이 시리아의 대변동을 이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문제다. 그것은 시리아 내외부로부터 입장과 힘을 두고 다투는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먼저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해서 말해보자. 알아사드 가족의 유래, 그들이 1970년 권력을 잡은 이래로 시리아를 장악한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라마다니: 완강히 버텼던 두 명의 독재자를 무너뜨린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의미심장한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 반정부 운동 내부에서든, 아랍정권들에서든 권력투쟁을 위해 경쟁하는 다양한 세력의 특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리비아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나토의 개입은 그런 점에서 반동세력이 자유를 위한 민중투쟁을 도둑질하는 위험에 대해 알렸다. 시리아 정권의 특성과 변화하는 역할에 대해 간략히 조망해 보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민중의 투쟁을 가로채는 최근 갈등과 반동세력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리아는 냉혹하고 부패한 정권에 의해 통치됐다. 1970년 하피즈 알아사드(알아사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의 쿠데타 이후 시리아 좌파 활동가들은 가혹한 탄압에 시달렸다. 쿠데타 이후 소련 군부가 이 정권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키신저가 시리아를 “안정 요인”으로 묘사했다. 사우디의 봉건 독재자가 자금을 지원한 하피즈 알아사드 정권은 1970년과 80년대 초 팔레스타인 저항을 약화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75년과 76년 레바논 내전 동안 시리아군은 친 이스라엘 팔랑헤 민병대와 다른 극우 세력의 편이었다. 이 정권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리아 골란 고원과 사우디 오일 달러에 대한 미국 측 약속에 대한 보답으로 1991년 미국이 주도한 쿠웨이트 전(걸프전)을 도왔다.

당시 레바논에서 시리아군의 존재는 미국과 사우디 통치자를 완전하게 지원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이기도 했다. 시리아가 외교정책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저항운동에 대한 적에서 동맹으로 역할을 전환한 이후, 미국과 사우디의 지배자들은 (시리아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바꿨을 뿐이다. 미국과 사우디는 레바논에서 시리아 철수(1985년)를 강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활동을 밀고 나갔다. 특히 2003년 이라크 점령 후, 미국은 심지어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에서 일부 시리아 군인들을 죽이기도 했다.

오늘날 언론 보도와 관련해, 시리아가 변하기 전에 (서방)언론들이 시리아 정권의 억압적인 특성에 대해 침묵했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는 다양하며 무자비한 독재 세력의 억압에 대한 그들의 침묵과 유사하다. 오늘날 그들은 시리아에서 알라위파(시아파의 일분파로 알아사드는 알라위파 출신이다)에 반대했던 수니파인 사우디 지배세력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언론은 수니파 사우디 지배자가 시리아 정권에 돈을 댄 것도, 사우디가 종파적 독약을 몰아넣은 사실도 강조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종파 보도가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전복시킨 이란 혁명 후, 사우디-이란 관계와 관련하여 펼쳐지기도 했다.

시리아 정권의 반대자들은 좌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1982년 하마(Hama)의 본거지에서 대중적인 반란을 이끌었던 무슬림형제단도 포함된다. 시리아 정권은 도시를 파괴하고 수 천 명을 살해하며 당시 반란을 짓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 민족주의는 한 세기 또는 보다 더 오랜시간 동안 시리아에서 주된 이데올로기적 경향이었고, 오스만 통치와 프랑스 제국 지배에 맞선 투쟁의 과정에서 발전했다. 시리아는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오늘날 카타르와 사우디 독재자에 의해 지원된다. 그러나 언론은 반대파를 짓밟고 바레인에서 민중봉기의 억압을 위해 군대를 보내면서, 시리아에서는 민주주의를 고취시키고 있는 (카타르와 사우디와 같은) 독재자들의 모순에 대해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1967년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침략했고 이 지역 전략지인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그 후 아사드 정권은 골란 고원을 부분적으로 되찾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며, 그들의 지배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점령된 땅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끄집어내어 시리아에 보상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시리아의 준수정책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한 것과 동시에, 여러 가지 요인이 시리아의 역할을 변화시켰다. 이들은 가공할 반미-반이스라엘 패권으로서 이란의 등장,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란, 서부 레바논의 해방을 이끈 헤즈볼라 주도의 레바논인들 거침없는 저항과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을 따라 적대적인 미군의 주둔, 그리고 이라크 저항의 증가와 이라크에서 미군의 패배(걸프전)가 그것이다.

시리아의 군사력과 보안기구는 다층 피라미드로 된 정보원들과 더불어 시리아 사회에 대한 정권의 통제 구조를 형성했다. 상당 부분이 시라아 정권의 종파적 성격 그리고 알라위파 사회에 대한 의존에 의해 구성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종교적 해석이 매우 과장돼 있고, 이 지원이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또는 ‘구관이 명관이다’는 식이든지, 아사드 정권이 획득한 더 넓은 지원세력에 대해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힘 있는, 주로는 수니파 출신인 시리아의 상인 계급은, 특히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 이 정권과 가깝게 연결돼 있다. 사실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는 부분적으로 상인 계급이 그들의 입장을 바꾸도록 전개됐다. 중간층과 중산층 계급에 대한 제재 또한 이 정권을 지원하게 만들었다. 10%의 인구에 해당하는 기독교도를 포함하여 시리아의 종교적 소수자들은 무슬림형제단의 사회, 문화적 정책을 두려워한다. 또한, 그들은 형제단이 지원하는 사우디와 카타르가 지배하는 (종교)국가보다는 비종교적 정권을 원한다. 소수파인 쿠르드족 또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터키의 영향 그리고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시리아 자유군이 터키에 주둔하여 터키에서 2만 이상의 쿠르드족을 죽인 끔찍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수백만의 여성들 또한 형제단의 사회정책을 두려워한다.

현재 갈등의 맥락에서, 초기에 대부분 자발적인 저항운동을 지지한 빈민, 실업자 그리고 대학생은 이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정권의 억압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나토-사우디-카타르 그리고 특히 시리아국민회의(SNC)와 형제단이 주도하는 자유시리아군(FSA) 등 반대 진영의 군사화에 대한 반대 때문이다.


그로브: 당신은 최근 저항 운동을 ‘대체로 자발적’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시라아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불만이 형성돼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집트와 튀니지에서와 같이 강력하게 장시간 동안 저항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라마다니: 살라흐 제디드(Salah Jedid)가 이끈 좌파 분파를 축출한 1970년 하피즈 알아사드의 쿠데타 이후 시리아 정권에 대한 좌파와 진보 진영의 저항은 수 십년 간 지속됐다. 이 좌파 분파는 1970년 후세인 국왕 군대의 군사 공격에 맞서 요르단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을 지원했다. 쿠데타 전에 국방장관이었던 하피즈 알아사드는 즉시 후세인 왕 쪽에 서고 이 나라의 좌파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하기 시작하며 미국과 사우디 지배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시리아에서 좌파는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시리아 공산당에 의해 조직됐다. 1924년 창설된 이 당은 다양한 차원의 국가 억압에 의해 탄압을 받는다. 1970년 이래로 공산당과 다른 좌파 조직들 및 좌파 인사들 내에서 보다 전투적인 분파들은 감금과 고문 그리고 망명생활을 겪는다. 그러나 시리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레바논 내에서 더 전투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에 대한 당 지도부의 타협적 태도, 그리고 소련의 중동 정책에 대한 맹종적인 지원 때문에 온전한 노동자 계급정당이라기보다는 인텔리겐차의 분파 정당으로 변모해 갔다. 아마도 (만약 당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후에 시리아의 신식민적 상태를 반영한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제국주의와 시오니즘에 맞서 더 확장된 투쟁의 일부분이 되자고 호소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정치적 진공상태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범아랍민족주의자 조직을 옹호한 바스당(the Baath party)을 포함하여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에 의해 채워졌다. 이와 유사한 과정이 알제리에서도 일어났는데, '프랑스가 사회주의가 되면 알제리가 해방될 것'이라고 선언한 프랑스 공산당의 입장을 맑스주의자들이 처음에 지지한 일이 알제리에서 발생했다.

최근 과정에서, 시리아에서 모든 좌파 세력은 튀니지와 이집트 봉기에 따른 초기의 저항행진을 지지했다. 요르단 국경 인근 도시 다라에서 시작한 행진에 대해 무슬림 형제단도 지지하고 나섰다. 저항 행진은 부패, 실업 그리고 민주적 권리와 관련된 주제들의 요구를 내걸었다. 큰 규모의 행진이 여러 도시들을 가로질러 개최됐지만, 어떤 행진도 시리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가장 큰 도시인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 심장했다.

또한 나토가 리비아 저항 운동에 개입하고 군사화 하면 할수록 시리아에서의 평화로운 대중 저항은 줄어들었다는 것도 눈에 띠는 지점이다. 가두시위는 수십만에서 수만으로 그리고 수천, 그 이하로 줄어들었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정권의 만행이었지만 그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주요 이유가 시리아에서 민주적인 반정부주의자 대부분이 확고한 반제국주의자인 상황에서 시리아에 대한 나토와 이스라엘의 계획에 자연스런 공포를 가졌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리비아에서의 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까이에 있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세력과 테러리스트 깡패들의 살육과 파괴는 고조되는 갈등의 결과에 대해 시리아 내의 민주적인 비종교 반대파들의 우려를 낳게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이라크가 불타는 동안 시리아가 이라크 난민 100만여 명의 피난처가 됐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반면, 이스탄불, 파리, 런던에 기초한 무슬림 형제단과 반대파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모든 아랍 국가가 운영하는 언론들 특히 카타르 소유의 알자지라를 즐기도록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수년에 걸친 계획 속에 시리아 반대파 일부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무장시켰다는 사실들이 드러났다.

벤 알리와 무바라크가 빠르게 축출되자 미국, 사우디, 카타르 그리고 터키는 시리아로 주위를 돌렸다. 미 해군 제5함대 본부가 있는 바레인에서 대중적인 봉기가 일어났을 때, 그들은 민중봉기에 대한 위험과 공포를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사우디와 다른 걸프만의 토호국들은 반란을 무너뜨리는 하마드 왕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이런 일들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지역들은 시리아 반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무기가 시리아에 반입됐고 미국이 창설한 이라크 민병대 알 사흐와는 무장한 ‘반군’을 지원했으며, 리비아 군인들도 전투지역에 밀입됐다. 이라크에서 작전 중인 테러리스트들은 또한 시리아 정권에 맞선 ‘지하드’에 합류했다.

반면, 수년 동안 계속된 억압은 시리아의 민주적 반대파들이 이 땅에서 투쟁을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취약하도록 만들었다. 반혁명 세력이 조직됐을 때, 민주적 반대파들은 반혁명의 거대한 자원에 대적하지 못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평화로운 시위를 지속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리비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반혁명 세력들은 다른 계획을 가졌다.

좌파는 여기서 이 정권이 영향력 있는 중산층 계급 대부분의, 특히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 지지를 받는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한다. 수많은 인종적 그리고 종교적 소수자들 그리고 여성 인구의 다수는 무슬림 형제단의 반사회적 특성과 그들이 시리아에서 형성할 수 있는 정권의 형태를 두려워한다. 주민들은 아사드 정권의 전복을 위해 알카에드 지도자 알자와히리가 무장 지하드를 호소해 종파 분쟁으로 확산될까 두려워 하고 있다.

그로브: 이는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좌파 활동가들로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기 결정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지지한다. 제국의 중심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민중의 권리를 부정하는 정부(영국정부)의 행위에 반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지지하지만, 제국주의 경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시리아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가 이 둘을 다 할 수 없다는 암시를 준다. 시리아의 민주주의 투쟁을 지지하고 외부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는 이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치인가?

라마다니: 매우 중요한 질문인데, 핵심을 분명하게 해보자. 대중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와 (독재)정권들 둘 다에 항상 반대하는 것은 좌파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는 결코 포기돼서는 안 되는 원칙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한 불가분의 목적들을 포기한 운동은 심각하고 때때로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

이라크 공산당(ICP)은 이런 맥락에서 좋은 사례이다. 이라크 공산당은 1958년과 59년 이라크 민중 다수의 지지를 받아 왔지만, 30년 사이에 엄청난 노동자계급정당에서 한심한 그룹으로 전락했다. 아마도 1991년 걸프전을 주도한 미국 편에 선 것에 대한 답례로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자금을 받았고, 1978년과 79년 이후 마수드 바르자니(Masoud Barzani)의 쿠르드민주당으로부터 물가보호를 받은 것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2003년 미국 주도의 점령 당국에 봉사함으로써, 제국주의와 국내 반동세력에 저항하라는 위대한 투쟁 강령을 배반해 부끄러운 강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들은 1959년에 제국주의 반대라는 미명아래 국내 사회주의 투쟁을 포기했고, 1991년 이래 민주주의 투쟁이라는 미명아래 제국주의 반대투쟁을 포기했다.

투쟁의 주요 초점이 되는 이 두 가지 목표는 어느 것이든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 그러나 가속화된 제국주의 공격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맥락속에서, 전세계 민중에 대한 제국주의적 착취를 폭로하는 것은 좌파의 핵심적 과제다. 제국주의는 국내외 대중들을 착취하는 독점 자본주의의 발현이다. “제국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좌파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자기 결정권을 요구하는 억압된 민중의 투쟁의 편에 서는 것, 이러한 직무를 확고하게 유지하는 의무를 국제주의자의 임무로 부여해왔다. 그러나 억압된 대중의 편에 서는 것은 또한 그들이 국내 압제자들에 맞서 일어날 때 민중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과 투쟁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시민의 권리와 사회적 해방을 위한 민중들의 투쟁이 분명하게 국내 반동/억압 세력과 제국주의 둘 다에 맞서 향할 때 복잡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 어제는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그리고 오늘은 시리아에서, 제국주의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갈취하고 진보적인 반대세력을 감추는 데 성공했다. 좌파는 이 사실들을 직시해야 하고 불편한 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시리아는 오늘 나토가 지원하는 무장한 조직과 사우디/카타르가 이끄는 반동들과 마주하고 있다. 시리아에 괴뢰정권을 세우거나, 이 목적이 실패할 경우, 종파적 혈전으로 이 땅을 몰고 가려는 미 제국주의의 주요 표적이다. 좌파의 의무는 “시리아로부터 손을 떼라”, “시리아를 이라크화 하지 말라”, “이란을 이라크화 하지 말라”, “시리아 민중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라”는 깃발을 올리고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로브: 알자지라는 시리아에서 주류 언론 보다 더 세련되고 신중하게 중동을 보도한다는 이유로 좌파의 평판을 받아 왔다(일부에서는 알자리자 뉴스가 일반적이라고 말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당신은 시리아와 리비아와 관련해서 그들의 역할이 매우 교활했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시리아에 대한 영국 언론의 보도에 대한 당신의 인상을 덧붙일 수 있는가?

라마다니: 매우 현저한 예외가 있지만, 알자지라는 실제로 여기 주류 언론 보다 중동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믿을 만한 보도를 공급하지 않는다. 중요한 예외도 있지만, 여기 언론들은 어떤 특별한 사건 또는 국가에 대해 (영국)외무부에 의해 채택된 기조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상업적 요인들을 복잡하게 배열하는 방식으로 중동과 국제문제에 대한 보도를 행하고 있다. “영국의 국익”은 언론 소유주와 편집자에 의해 외무부가 표현한 대로 받아들여지며, 그것으로 “국익”의 중립적 보관소나 척도로 보여진다. 영국 민중의 진정한 이해와 무기산업, 석유회사 사이에서 어떠한 구별도 형성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책,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 Mussadaq의 이란(1953), 나사르의 이집트(1952-1970), 알카림 카심의 이라크(1958-1963), 이라크에 대한 살인적인 제재 조치, 이라크 전쟁, 리비아에 대한 나토의 폭격 그리고 최근 시리아에 대한 나토의 개입은 주류 언론들이 어떻게 정부 주장에 따르는 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마찬가지로, 사우디 정권의 무자비하고 사회 억압적인 특성은 미화된다. 사우디 봉건 지배자들이 중요한 동맹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알자지라는 여기 중동에서 역사적으로 연결되었다! 이 위성방송은 BBC 아랍어 서비스방송이 갑자기 주저앉은 후 1996년에 착수됐고 사우디 왕자가 합작했다. 사우디가 모든 방송 요소들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BBC가 손을 떼도록 강요하자 (BBC 아랍어 방송이) 주저앉게 되었다. 카타르 지배자들은 이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BBC 아랍어 서비스 직원들을 획득해 소유주이자 정치적 관리인으로 카타르 지배층과 함께 알자지라를 시작했다.

아랍세계 독재자들은 모든 아랍 TV 방송국을 다양한 수준에서 국가의 거짓말, 반쪽짜리 진실 그리고 기껏해야 안전한 보도에 관한 확성기로 만들었다. 위성 방송과 인터넷의 출현으로 알자지라는 국가 검열에 대한 해결책을 갖게 되었다.

카타르 지배자들은 사우디 지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들보다 더 세계적이고 약점이 더 적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알자지라를 보았다. 그들은 카타르 국영 TV 방송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알 자지라에 대해서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를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물론 카타르 독재자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나, 현재 카타르 통치자가 어떻게 미국의 축복 속에 부친을 퇴위시켰는지에 대한 조사가 허용되지는 않았다. 카타르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포함하여 중동 전역에서 미국 군사작전의 본부가 되었다.

알자지라가 중동에서 카타르의 투자와 세력을 방해하는, 사우디 왕실과 사우디 왕자의 광범위한 금융 및 자산 이익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되지 못했다. 카타르와 사우디 왕실 사이의 마찰은 중동에서 카타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훨씬 더 심화됐다. 때때로, 그러나 현지의 알자지라의 용맹한 기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 군사 계획자들을 화나게 했다.

알자지라에 대응해, 사우디 왕가는 알아라비야 및 다른 위성방송국에 재정지원을 했다.

그러나 아랍 세계의 봉기, 특히 이웃하고 있는 바레인의 봉기는 걸프 지역의 모든 지배 집단들을 위협했다. 리비아에서 나토 개입을 지원하고 시리아 야당에 자금을 지원하고 시리아의 갈등을 군사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동안, 카타르와 사우디의 통치자들은 바레인과 예멘의 봉기를 억압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펴나가도록 고무되었다.

그들은 갈등을 군사화시키는 것이 나토의 개입을 은밀하고도 공공연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급진적인 사회 경제적 변화를 위한 대중투쟁을 이끄는 진보적 반제국주의 세력들에 대한 방해공작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자지라 영어방송은 다른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란과 러시아 위성방송과 같은 다른 방송사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아랍TV방송국들과 알자지라 아랍어와 영어방송은, 페르시아인과 시아파의 영향력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적이고 종파적인 음성으로 부정적인 보도의 포화를 이란을 향해 쏟아 붓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의 이런 측면은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공격 가능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아랍 봉기에서 알자지라의 역할에 대해서 작년에 쓴 기사를 인용해 본다:

“알자지라가 아랍세계에서 반혁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도구가 되었지만, 리비아에서의 역할과 바레인 봉기에 대한 종파적 보도의 영향은 덜 치명적이게 되었다. 튀니지와 이집트 봉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알자지라가 얻었던 대중적 신뢰와 권위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는 특히 리비아, 바레인, 시리아, 예멘, 이라크와 관련하여 사건과 인식에 영향을 주는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알자지라는 항상 사설 수준에서 종파적인 중저음의 톤을 유지했지만, 바레인에 도달한 혁명의 물결로 인해 카타르 지배자들과 사우디 왕가와의 오래된 갈등을 묻어버렸을 때 명백한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제5함대 사령부가 있는 바레인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라는 침묵의 채널은 매우 영향력 있는 이집트 성직자이자 카타르 지배층의 손님이기도 한 샤이크 카라드와이와의 라이브 인터뷰로 뒷받침 됐다.”

시리아 민주세력이 심각한 손상을 입는 동안, 알자지라는 갈등을 군사화 시키려는 카타르와 사우디 왕가의 나발을 불고 있었다. 알자지라는 시리아 민중의 다수를 대표하지도 않고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시리아 국민회의(SNC)와 자유시리아군(Free Syrian Army)이 주장하는 나토의 무력개입을 찬성하는데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시리아에서 무력개입에 반대하는 민주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그들의 방식이며, 이는 매우 파괴적이다.

그로브: 이런 갈등이 어떻게 끝날 것이라 보는가? 우리가 이란과의 전쟁에 다가가게 되면 반동세력이 승리할 거라 보는가? 시리아에서 여전히 혁명적 변화의 잠재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마다니: 그렇다. 미국에 의해 지원되는 사우디와 카타르 지배계급들의 승리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 등 모든 지역에서 민중의 주요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시리아와 다른 모든 지역을 종파적인 대학살로 몰아넣는 것이며, 이란 공격 계획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미래를 보여주는 놀라운 움직임이 있는데, 미국 주도의 군사 훈련이 요르단에서 개최됐다. 20개 나토 구성원과 아랍 국가들로 구성된 1만2천명의 다국적군은 이 지역에서 첫 번째 훈련인 2012 Operation Eager Lion 작전에 참여했다. 미군 소식통에 따르면, 육해군 합동 상륙 모의실험과 전쟁 군사훈련을 시리아와 이란이 “알아차리도록” 의도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시리아는 역사적 역할과 전략적 위치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있는 이란의 유일한 동맹인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마스쿠스에 친미 정권을 세우거나 가혹한 제재로 시리아를 손상시키면 이란에 보다 심한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란이 핵무기를 생산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CIA 스스로 인정한 것을 보면 이란의 핵에너지프로그램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정책에 완강히 반대하는 매우 강력한 지역 권력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생산자 중 하나다. 이란은 미국의 계획에 대적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미국에 대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 정책에 대해 문제를 만들어왔다.


봉기 이후, 사우디와 카타르 지배자들은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잃어버린 그들의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해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카타르는 헤즈볼라 격퇴를 (그리고 그의 기독교인과 좌파와 전국적 동맹)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본다. 그들은 헤즈볼라가 다른 레바논의 내전으로 움직이도록 하려 한다. 알자지라와 아랍 국가의 언론들은 시리아와 헤즈볼라를 주적으로 묘사하고 이란의 꼭두각시로 그들을 비난하면서 지연되고 심화된 인종적 종파적 운동을 감행했다.

반혁명적 맹공이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아 민중은 리야드(사우디 수도)와 도하(카타르 수도)의 독재에 의한 정치 사회적인 변화에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사우디 여성과 비교하여 보다 많은 사회적 권리를 누리는 시리아 여성들, 인종적 그리고 종교적 소수자들 그리고 시리아의 민주적 좌파는 사우디-카타르에 기초한 세력에 맞서고 있는 중요한 힘이며 나토 개입을 반대한다. 사우디-카타르에 기초한 세력은 갈등을 군사화하고 테러리스트를 공격하려 하지만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리아 반제국주의 좌파와 민주주의 세력은, 이라크에서처럼 한편에선 부패한 정권의 폭력성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나토와 사우디-카타르 지배자의 개입이라는 어렵고 매우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좌파와 민주주의 세력은 수세기 동안 식민적, 제국주의적 독재에 의해 조직적으로 약해졌다. 단기간으로 본다면 사우디-카타르의 지원과 더불어 무슬림형제단의 지도부와 살라피(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저항의 결실을 수확할 것이다. 이들 세력은 대중의 가장 가난한 층 사이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지만, 보다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근본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이중적 역할을 해왔다. 이집트, 이라크 그리고 오늘 시리아에서처럼 위기의 시기에, 그들은 반동적 역할을 했고 제국주의 권력에 의해 수용됐다.

그러나 중동에서의 봉기는 미래의 길조가 되는 거대한 민중의 에너지를 해방시켰다.

시리아에서의 급진적인 민주적 전환은 짧은 시간 내에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약한 좌파 조직들 그리고 반동적 세력이 놓은 발판 때문에 투쟁의 현 단계에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아랍세계를 가로지른 이 반란들은 좌파가 전투를 조직하고 준비하도록 새로운 기초를 세울 것이다. 대중은 전례 없던 방식으로 몸의 근육을 풀고 있다. 그들의 승리와 고난은 새로운 세대가 투쟁을 진전시키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수단과 조직을 발전시킬 대중의 학교라고 생각한다.


[원제] Between Imperialism and Repression
[출처] http://www.newleftproject.org/index.php/site/article_comments/between_imperialism_and_repression
[저자] Sami Ramadani, Samuel Grove
[게재일] 2012. 6. 12
[번역] 정은희 참세상 기자

태그

시리아 , 봉기 , 아랍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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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뎡야핑

    어휴 다 읽기도 힘든 이 글을 번역해서 실어주신 참세상 정은희 기자님 감사합니다! 아아 머리가 복잡하다...ㅜㅜ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카타르의 행보에 예의주시하고 있기도 하구.. 근데 글 읽으니 더 갑갑해지네요

  • 정론직필

    정은희 기자분 시리아를 독재라고 하면서 분열을 기도하는 것이 이스라엘과 제국주의자의 수법인데 자칭좌파란 사람들이 흑과백을 구분도 못하면서 적들을 돕는 이런글을 적는것은 기자의 양심에 어긋나는것입니다
    잘봐야합니다 제국주의는 자신들이 실은 자본에 의한 영구독재를 하면서 자신들의 적들을 독재라부르면서 분열과 전쟁 학살을 하고 있는것이 세계적인 현실인것입니다 마치 국제적 시각이 있는것처럼 이사람저사람 제국주의의 프락치 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글을 옮기는것도 일하는 노동자의 합리적 태도와 거리가 먼 부르주아적 행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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