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편집자, 디자이너, 작가, 번역가 등 출판노동 영역의 외주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중간착취, 체불, 불합리한 고용계약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겉으로는 그럴 듯 해 보이는 직업군이지만, 사실상 특수고용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건강권의 위협과 출판사의 불공정 계약, 비정규, 불안정 노동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특히 외주출판노동자들은 높은 이직률과 조직화의 어려움 때문에 그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왔다.
정부에서 조사한 자료들 역시, ‘문화사업’이라는 포괄적 범주에서, 비정규직과 외주화 등의 노동조건을 배제하는 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작년 5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출판노동자협의회, 외주출판인회의 등 4개 단체는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 사업단’을 꾸리고,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 사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지난 2010년 11~12월, 18명의 노동자들 상대로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하고, 올 4월, 43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이후에는 조사 분석 및 제도개선안을 검토하고, 6월 ‘외주출판노동자 노동실태연구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외주출판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한 첫 연구 사례다.
중간착취,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출판 ‘프리랜서’들
외주출판노동자는 출판노동의 영역에서, 고용되지 않은 형태로 출판사 외부에서 생산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대체로 편집자, 디자이너, 글작가, 그림작가, 대필작가, 번역가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의 연령은 25세~39세까지가 76.8%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년 미만~10년까지의 경력은 86.1%로 집계돼 대체로 노동수명이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학력의 경우, 4년제 대학이 59.1%, 2년제 대학이 17.4%, 대학원 졸업이 15.8%로 대다수가 고학력 노동자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필가 A씨
“(단가가) 똑같아요. 변화가 없어요. 오히려 더 낮아진 것 같아요. 그 때에는 무조건 대필이면 장 당 만 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매수로 안하고 뭉뚱그려서 얼마에 하면서 장당 만 원 안되게 하기도 하고.”
번역가 B씨
“말로는 없다고 하고 몇 십만원을 못 주고 미루는 경우가 많아요. 백만 원을 3개월에 나눠서 준다거나. 그래도 따로 대응할 수 없어요. 그냥 늦지 말고 약속하신 날짜에 달라고 하죠. 근데 대부분은 늦어요.”
번역가 C씨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죠. 다음 책이 올까 안 올까 불안한... 그래서 (단가나 여러 측면에서) 거절을 해야 되는 작업인데도 거절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외주출판노동자들의 월 소득은 150만원 미만이 45.9%, 100만원 미만이 24.1%로, 대다수가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다. 단가를 출판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 속에서, 출판사들은 수익구조 하락 및 종이값 인상 등을 핑계로 지난 10년간 단가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업 단가 체불과 미지급이 관행처럼 되어 있어, 노동자들은 생활고를 겪기도 한다. 설문에 따르면, 외주출판노동자 88.8%가 작업비 지연을 경험했으며, 작업비 지급 지연기간이 5개월을 넘긴 경우가 22.8%에 달했다. 작업비가 지연 될 경우, 47.6%는 독촉하거나 항의하지만, 22.5%는 그냥 기다리거나, 9.4%는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가 출판사 혹은 중간업체와 외주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를 항상 작성하는 이들은 21.3%에 불과했다. 출판사와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노동자로서는, 출판계의 관행에 따라 회사가 계약서 작성을 원치 않으면 이를 요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맥을 통해 일거리를 얻는 것이 관행인 만큼, 부당한 대우도 쉽게 항의할 수 없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39.9%가 친분관계나 이전에 일한 곳 등의 사적인 관계망으로 일거리를 얻는다. 때문에 안정적으로 일감을 받는 거래처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40.2%에 달한다. 인맥을 통한 일감 확보는 불안정한 노동, 과잉경쟁, 높은 진입장벽, 싸고 저렴한 일자리와 열악한 노동조건 양산 등의 문제를 드러낸다. 출판계에 존재하는 중간업체의 과도한 수수료와 저작권 양도계약 문제 등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출판사와의 종속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역시 심각하다. 출판사는 계약기간과 계약금액, 지급일 뿐 아니라 사실상 작업일정, 업무량, 업무 강도 역시 결정한다. 특히 출판사와 노동자 사이에 기획사가 끼어드는, 기형적인 신종계약 유형도 확산되고 있다. 건설, 화물업종에서 나타나는 중간착취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저작권 양도계약 시, 출판사의 요구로 노동자가 2차적 저작물 작성권까지 양도한다는 내용의 특약을 어쩔 수 없이 체결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를 체결할 경우, 노동자의 저작물을 출판사가 다른 용도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편집자 D씨
“자기네들 금요일 날 퇴근하면서 주말 안에 일을 끝내 달라고 하는 경우 자주 있어요. 전체를 보름 만에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한테 12일을 줘야 하는데 3일 만에 끝내달라고 그런 경우.”
외주출판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이상~14시간미만이 53.8%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 달 노동기간 중 25일 이상 노동한다는 응답도 26.3%로 가장 많았다. 특히 마감때가 되면,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하는 경우가 81.1%에 달했다.
장기간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손과 팔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관련 통증이나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열악한 노동조건이 스트레스성 질환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업단은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81.7%가 산재보험 적용을 원하고 있다”며 “대개 업무에서 비롯된 질병임에도 사회적으로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비롯한 건강보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수고용노동자보다 못한 근로조건...“사회적 안전망 확충돼야”
외주출판노동자들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단가문제(30.7%)와 작업비 결제의 불안정성(25.4%), 불안정한 일감(20.3%) 등을 꼽았다.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요구 공간의 절실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동자들 중 96.7%에 달하는 수치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가 있으면 지지하거나 가입하겠다고 답변했다.
때문에 사업단은 임금체불, 불공정 계약, 사회보장제도록부터의 소외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책으로 △불평등한 계약관행을 바꿀 수 있도록 표준화된 계약서 사용 △중간업체를 통한 직업소개 및 하도급화 근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등을 제시했다.
이들은 우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여있는 외주출판노동자가 출판사와 계약 체결 시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불리한 내용의 관행을 바꿔낼 수 있는 내용을 계약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업무수행기간 결정, 단가 산정방식, 정확한 결재일 및 지연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부담, 산정된 업무시간보다 초과된 업무부담 혹은 애초에 계약내용에 없었던 다른 업무 추가에 관한 보수, 추가경비 발생시 부담주체 등 계약서에 반드시 명시해야 할 사항들을 정해 표준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불법적인 중간착취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가운데, 출판업에서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할 수 있는 정책입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역시 확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들은 “외주출판노동자는 4대보험을 통한 기본적인 안전망은커녕 직무와 관련된 교육을 한 번 받기 위해 수십만 원의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 처지에 있다”며 “정부는 외주출판노동자의 4대보험을 부담하는 등 사회복지 안전망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본적인 지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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