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본관 앞, 사상 첫 집회...유령집회 제동 걸리나

삼성전자 백혈병사망 故황민웅 씨 7주기 추모...길 건너 집회반대 시위

서초동 소재의 삼성 본관 사옥에 처음으로 ‘합법적인’ 삼성 규탄의 목소리가 울렸다. 삼성이 2008년 태평로에서 서초동으로 본관 사옥을 옮긴 후 처음으로 열린 합법 집회다.

23일 오후 5시, 서초동 삼성 본관 사옥 앞에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민웅 씨의 7주기 추모 집회가 열렸다. 삼성은 그동안 사옥 주변에 집회신고를 미리 선점하는 형태로 사옥 앞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른바 알박기식 유령집회을 열고 삼성일반노조 집회나 삼성에 반대하는 집회를 원천봉쇄 해 왔다.

삼성일반노조는 서초경찰서가 6월 25일 "삼성전자직장협의회의 신고를 비롯해 집회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다"는 이유로 집회금지를 통고하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23일 오전 서울행정법원은 추모집회를 금지한 서초경찰서의 처분을 집행정지해달라는 삼성일반노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행정법원은 “집회가 금지됨으로 삼성일반노조에 발생할 수 있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막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인정된다. 집회가 허용된다고 해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도 없다”며 삼성일반노조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 본관 사옥 앞에서 처음으로 열린 합법적 집회에는 故 황민웅 씨의 아내인 정애정 씨를 비롯해서 삼성일반노조, 용산 참사 유가족, 전철연, 추모연대, 대학생 나눔문화 등이 자리했다. 반면 사옥 앞에서 열리는 집회현장 건너편에서는 “집회 소음이 업무를 방해한다”는 삼성 직원들의 반대 피켓시위가 벌어졌다.

  삼성 직원협의회 소속 직원들의 집회반대 피켓시위

집회에선 삼성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故 황민웅 씨의 아내인 정애정 씨는 “이 자리는 남편(황민웅 씨)의 추모를 위한 자리지만 그 뒤에는 150명이 넘는 더 많은 삼성 산업재해 피해자들이 있다”면서 “삼성 자본과 그 총수 이건희가 젊은 노동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길 건너에서 벌어지는 삼성 직원들의 피케팅을 지칭하며 “진짜 삼성 직원인지 삼성이 산 용역인지 모르지만 저런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더 힘이 난다”면서 “저들이 더 열심히 싸우라고 나를 채찍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故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오전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삼성화재 해고노동자 한용기 씨도 집회에 참석했다. 한 씨는 집회에서도 삼성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삼성이 생각하는 초헌법적 원칙 두 가지가 무노조 경영 원칙과 산재 불인정 원칙”이라고 전했다. 그는 “휴가를 신청할 때 일반적인 연차를 신청하면 부장 선에서 결제가 이뤄지지만 질병에 의한 휴가를 신청하면 상무, 전무 등 임원진의결제가 있어야 한다. 산재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라며 삼성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만약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노조가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도 삼성의 비인도적 경영을 규탄했다. 그는 “산업재해는 돈이 없어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는 영세공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돈을 수조원씩 벌어들이면서 노동자들을 계속 죽이는 기업이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잔인하고 양심이 없는 존재”라 비판했다. 그는 “삼성집단이 양심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들을 때려잡아서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투쟁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신당의 안효상 공동대표는 “이 죽음의 책임이 비단 삼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 독점자본의 문제”라며 “거대 독점 자본에게서 산업재해 노동조합 등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22일자 조선일보에 소개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런던올림픽 관련 출국 사진을 제시하며 “노동자들이 죽어가는데 이건희는 웃으면서 올림픽을 보러간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삼성의 갤럭시가 세계에서 수 천만대 팔렸다는 기사는 끊임없이 실어주는 언론들이 죽어가는 삼성의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싣지 않는다”며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보도하지 않는 일부 언론들도 싸잡아 비난했다.

집회를 주관하고 사회를 맡았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도 “86년 사망한 故 김영란 씨 이래 벌써 5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150명이 넘는 산업재해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우리가 하는 요구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일회용 종이컵이 아니라는 것과 더이상 죽이지 말라는 것”이라며 삼성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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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이번이 처음인가요? 예전에 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