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평화 대행진 참가자...남녀노소 직업불문

“올 여름휴가는 강정마을로 왔습니다”

29일 밤, 평화대행진 참가를 위해 모인 대행진단의 숙소엔 시종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그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부분 통성명과 자기소개. 그들은 강정에서 처음 만난 ‘개인 참가자’들이다. 30일 행진대열 안에는 유독 어린아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가족단위로 참가한 참가자들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모처럼의 여름휴가를 120Km의 행진 참여에 할애했다.


행진단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두루 섞여있다. 마을에서 50년이 넘도록 살아온 주민들과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4살 꼬마, 친구들과 함께 찾은 대학생들과 월차 쓰고 참가했다는 직장인들, 여느 투쟁 현장에나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왕성한 활동가들까지. 행진단의 인적 구성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했다.

올 여름휴가는 강정마을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행진하던 남성 참가자는 “아내 손에 이끌려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실은 아내가 강정에서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참여를 독려했지만 나도, 아이도 모두 강정의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도 “행진이 힘들지 않다”며 기꺼이 참여를 기꺼워했다.

부천에서 휴가를 받아 왔다는 참가자는 부부동반 휴가지로 강정마을을 선택했다. 그는 “많이 신경 쓰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늘 돌아가는 정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한 번쯤은 직접 강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멀리 미국에서 온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의 극구 만류에도 행진에 참가한 그는 “성수기라 비행기 값도 평소보다 비쌌다”고 했다. 주변의 만류와 경제적 부담에도 굳이 참가한 까닭을 묻자 그는 “그래도 옳은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역만리의 그에게 강정소식을 전해준 것은 SNS이었다. 그는 “페이스 북에서 우연히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알게 됐고 그 이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며 SNS의 위력을 절감케 했다.


지역주민들 의견도 반반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와 최근 발생한 흉흉한 사건의 영향인지 거리에는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씩 나타나는 사람들은 행진단을 향해 박수를 치고 구호를 따라 외치는 등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행진단을 만난 중학생 무리는 한참이나 행진을 따라오며 구호를 함께 외쳤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바다에 군대가 들어오는 것은 싫다”고 답했다.

반면 행진단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행진단이 지나간 자리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한 상인은 행진단을 가리키며 “떼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상인은 “이미 나라가 정해서 시작까지 한 공사에 저렇게 떼를 쓴다고 달라질게 뭐가 있냐”며 “괜히 동네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일찍 와줬으면 우리가 수이 이겼을텐데”

행진 도중에 지쳐 지원 차량에 탑승한 주민은 “투쟁 시작하고 처음에는 잘 걸었는데 이제는 늙어서 걷지도 못하겠다”며 시간의 경과를 한탄했다. “스무 살에 강정마을에 시집와서 54년을 살았다”는 이 주민은 “싸움이 시작한 당시에 이렇게 뭍사람들이 관심 갖고 도와줬으면 우리가 수월히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는 공사도 시작했고 이기기에는 늦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싸우는 것” 이라며 계속 “사람들이 조금만 더 일찍 찾아줬다면”이란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강정마을에서 낳아 장성시킨 아들도 “마을에 군 기지가 들어서면 이제 마을을 찾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이 싸움이 시작되고 마을이 갈라선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서로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묻던 사이였는데 (해군기지 건설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나눠진 지금은 서로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대행진이 이렇게 떠들썩하게 출발하는데 얼굴 한 번 내밀 법 하건만 전부 다 바닷가에 물질하러 갔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마을 사람들 추슬러 보려고 마을회장이 고생도 많이 하고 감옥에도 갔다 왔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쓰럽다”고 말했다.


한편 하루에도 수 없이 나타나는 사복경찰들과 용역직원들과의 마찰에 몸살을 빚는 강정마을 이지만 대행진이 출발하는 30일 오전에는 경찰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주민들은 “외지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니까 새삼스레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진단과 경찰은 협조 하에 마찰과 무리 없이 차량 통제와 행진을 진행했다. 특히 행진단은 참가자 중에서 자발적인 진행요원을 모집해 안전 확보와 질서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첫 날 행진이었지만 별다른 부상자와 낙오자 없이 일정은 마무리 됐다. 현재 강정마을회관에 차려진 상황실에는 5박 6일간의 일정 전체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늦게 제주도를 찾는 참가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행진 현장을 바로 찾아 그 자리에서 행진에 참여하는 참가자들도 적지 않다. 모든 일정을 마친 4일 저녁 문화제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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