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시작되는 여성의 노동

다큐멘터리 '레드마리아', 노동을 통해 여성을 담다

  '레드마리아' 포스터 [출처: 비마이너(www.beminor.com)]
다큐멘터리 '레드마리아'에는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성노동자, 홈리스, 전업주부, 결혼이주여성, 돌봄노동자, 복직 투쟁을 벌이는 비정규 노동자 등 다양한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를 하나로 떠받드는 것은 바로 '노동'이라는 화두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는 육아노동에서부터 청소하고 세탁하고 요리하는 가사노동에 이르기까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매일매일 행해지는 여성의 '노동'은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평가받지 못해 왔다.

또한, 성노동자, 홈리스,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동'에 대해 이 사회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레드마리아'는 이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노동을 거부하는 저항의 삶

"숫자를 못 읽거나, 글자를 못 읽거나, 계산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이 없죠. 장애가 있어도 일이 없는데다 정신적인 장애가 있어도 일이 없어요. 사회의 사상에 부합되지 않으면 일하기 어렵다든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힘을 휘두른다든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힘을 가진다든지, 그런 파워 게임이랄까? 일이라는 게, 음… 서로 죽이는 폭력으로 느껴져요."

도쿄의 하라주쿠 요요기공원에서 푸른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이치무라. 그녀는 소일거리로 면 생리대 만드는 일을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음식 나누기 모임'을 열어 거리에서 음식을 만들고 노숙인들과 나눠 먹는다. 그녀는 노동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자본으로 구축된 안락함을 거부한 채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녀가 택한 삶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의 반대편에 있으며, 그녀가 구축한 삶의 형태는 이 사회에 대한 염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먹고 자고 일하는 방식 그 자체가 일종의 자유로운 저항처럼 느껴진다.

또 한 명의 여자가 있다. 클롯은 거리와 클럽에서 성매매하는 성노동자로, 필리핀의 성매매 쉼터 '부클로드'에서 아이를 기르며 엄마로 살아간다. '부클로드'는 반성매매를 지향하는 단체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성노동자들은 성매매를 통해 낳은 아이들을 기르면서 성노동을 지속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클롯과 그녀의 동료는 '부클로드' 워크숍에 참여하며 공부하고, 자신의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16세 때 아이를 낳은 그녀의 배에는 출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녀지만 그 삶의 흔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카메라 앞에 내밀어 보인다.

  '레드마리아'의 한 장면 [출처: 비마이너(www.beminor.com)]

권리를 위해 투쟁하다.

'레드마리아'에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거대 기업에 맞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철의 노동자'를 흥얼거리는 53세 일본여성 '사토'. 그녀는 18년간 파견직으로 일하며 회사가 원하는 만큼 자격증을 취득하며 일했다. 아무리 생활비를 아껴봤자 주택대출금과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받은 교육대출금을 갚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녀는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파나소닉으로부터 파견직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녀의 삶이 중단될 리 없다. 사토는 파나소닉을 상대로 자신의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사카 파나소닉 본사 앞 거리에 홀로 선 그녀,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18년간 마츠시다 쇼룸에서 일했지만 지난 10월 갑자기 파견직이 없어졌다는 말 한마디로 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파견직이든 임원이든 정규직이든 인생의 무게도 책임도 같습니다. 여러분의 인생과 저의 인생, 일자리를 잃은 많은 파견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생,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사토는 파나소닉이라는 거대 기업을 상대로 복직을 위해, 홀로 싸움을 벌여나가면서 또 다른 삶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지켜내기 위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변화였다. 그리고 그녀는 재판에 승소해 복직하게 된다.

또 하나의 투쟁이 있다. 1,895일의 장기 농성 끝에 복직하게 된 기륭전자 조합원의 이야기다. 2006년 기륭전자가 파견노동자 200명을 해고하자 조합원들은 컨테이너에서 농성을 벌인다. 그녀들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택했고 투쟁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싸움을 지속해 나간다. 6번의 추석을 집과 고향이 아닌 투쟁 현장에서 보내야 했던 조합원들이지만, 그들은 "세상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며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서 싸운다. 그리고 마침내 1,895일간의 긴 투쟁 끝에 잃어버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게 된다.

'레드마리아'는 많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쫓느라 저마다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내는데 한계를 보이지만, 경순 감독은 이들 여성의 '배'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관통해내려 한다. 감독은 여성의 노동은 바로 '배'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 여성의 '배'에 남아 있는 주름과 상처들을 통해 그들 '삶'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기사제휴=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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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 레드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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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