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복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

[봉당풍경](5) 박근혜의 복지, 히틀러의 그것과 다를까?

지난 8월 20일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던 날, 독일의 유명 일간지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송출했다. <슈피겔>과 <쥐트 도이치 차이퉁>은 ‘독재자의 딸 대통령 후보로 선출(Diktatoren-Tochter zur Präsidentschaftskandidatin gekürt)’, 'N24'는 ‘남한 독재자의 딸 여자대통령이 되려고 한다(Tochter von Südkoreas Diktator will Präsidentin werden)’ 등 독일 매체는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소개했다. (이 글에선 박근혜의 대명사를 ‘그’로 칭함, 왜냐하면 박근혜의 여성성 부각이 오히려 사실에 접근하는 것을 왜곡하기 때문임) 반면, 한국사회 주요 일간지에서는 박근혜 앞에 그 어떤 수식어도 달지 않았다. 우리 내부의 시각과 외부 시각의 차이, 때론 밖에서 보는 것이 명료할 때가 있다. 그날 이후 박근혜의 언행 덕에 그에 대한 비판의 지점이 명확해졌고, 이에 그 생각과 동시에 현재의 역사가 뒤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책임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한다.

“그는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노동자에게 더 좋은 집을 지어주고, 산업을 현대화하고, 복지제도를 세우고, 과거의 반동적인 특권을 없애는데 특히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여기까지 서술을 보면 그로 지칭되는 정치인에게 호감을 느낄 법하다. 다음으로 오는 서술에서 그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가 아무리 유대인을 악마로 몰아세우고 세계를 휘어잡기 위해 승산 없는 무모한 싸움에 뛰어들었을지라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정치인이었다.”

이 글은 독일의 문제적 역사학자인 라이너 찌텔만(Rainer Zitelmann)이 했던 히틀러에 대한 평가의 일부분이다. 찌텔만은 나치 역사에 대한 분석 전반에서 나치의 홀로코스트 행위나 국가폭력에 대해서는 적당히 주변화시키면서, 히틀러가 독일을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노력했는지만 부각한다. 이에 히틀러 나치 정권시기 고용률, 노동자 가정의 복지, 산업의 현대화 등을 내세워 옹호하고, 그를 정상적인 지도자로 재평가받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찌텔만은 고용률이 전쟁을 기반에 둔 군수산업 확장이라는 어두운 측면, 공포정치를 위해 적극 활용됐던 인종정책과 반젠더적 지향을 뒀던 복지제도, 강한 독일을 위해 희생됐던 수많은 유럽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매튜 휴즈(Matthew Hughes)는 ‘히틀러가 바꾼 세계’라는 책에서 “유대인이나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나치의 눈 밖에 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낸다면 히틀러가 지배하는 독일에서의 삶은 견딜만했다. 사실 나치 통치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평가한다. 휴즈의 평가를 뒤집어 본다면 유대인으로 태어나거나, 공산주의자와 같이 나치 정권에 대항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될 경우, 이 정권하에서는 생을 보장받기 어렵다. 반대로 정권이 원하는 인종으로 태어나서 지도자에 반대하는 그 어떤 생각을 품거나 행위를 하지 않고, 열심히 국가의 부강을 위해 일한다면 제공되는 임금과 복지로 삶은 견딜만하게 된다. 즉 지도자 이외엔 생각하기를 멈추고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주어지는 대로 조용히 밥 먹고 살라는 소리다.

  “Gesünde Eltern-Gesüde Kinder! 건강한 부모-건강한 아이들”, 1936년도 나치 정권 선동포스터: 히틀러는 독일의 팽창주의를 뒷받침할 의무병제도가 필요했지만, 당시 인구감소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인구증가를 위한 적극적인 국가정책으로서 가족복지가 중요했고, 여성의 역할은 다산과 좋은 엄마 되기였다. 나치 국가복지의 특징은 노동자 통제, 게르만 민족공동체에 근거한 차별적인 인종정책, 그리고 반젠더적 성격을 띤다.
나치는 전쟁과 폭력을 바탕으로 독일 경제를 발전시켰고, 그것을 수용한 국민에게 임금과 복지를 제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와 복지 발전의 평가를 역사적 맥락을 생략한 채 분석한다면, 파시즘과 쇼비니즘은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국민국가의 전략이 된다. 그렇게 되면 민족국가의 전쟁도발이나 자본의 이윤증식을 위한 그 어떤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

최근 박근혜는 뭐든 문제가 되면 ‘역사에 판단 맡기기’ 놀이를 하고 있다. 5.16은 박정희가 국가를 살려내기 위해 피눈물을 삼키며 감행했던 구국의 결단이 됐고,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판결이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됐다. 그는 그를 비호하는 세력에 기대어 그의 욕망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드러난 욕망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일어나면 과거는 역사에 맡기고 미래를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어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여기서 ‘내 꿈’은 국민의 것이 아니라 박근혜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의 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히틀러를 비호하는 찌텔만, 휴즈 그리고 박근혜에게 발견되는 공통되는 역사관이 있다. 이들은 역사의 중심에 지도자를 두고 지도자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나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지라도 결과가 경제발전과 부국강병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선택으로 충분히 양해할 수 있는 것쯤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도자의 역사이지 실제 경제발전을 위해 매일 쉼 없이 일했던 사람들의 역사도, 국가에 희생됐던 사람들의 역사도 되지 못한다.

인혁당 사건을 사례로 보자. 박근혜의 주장대로라면 2007년 8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8부에서 ‘인혁당재건위 사건 희생자 8명의 유족 46명에게 국가가 총 245억 원을 배상하고, 사형 집행일인 1975년 4월 9일부터 현재까지 연 이자 5%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내린 판결은 인혁당 사건에 대한 두 가지 판결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역사적 판단으로 믿고 싶어 했던 인혁당 사건의 첫 번째 판결은 어떠했나? 1975년 4월 8일, 피고인 8인은 인혁당을 재건하여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판결이 난 지 18시간만인 이튿날 9일 새벽 4시부터 8명에 대한 교수형이 집행됐다. 사형을 당한 희생자들은 죽기 전 그들 가족의 마지막 얼굴조차도 못 봤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확고하게 유지시켜야한다는 목적하에 본보기로 유신에 반대하는 진보인사를 국가공권력인 사법부를 통해 살해했다.

이후 이 역사를 되잡는데 32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최초로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중앙정보부 조작 사건이라고 발표했고,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에서도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발표 20일 뒤 재판부는 인혁당 사건 재심을 받아들여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32년에 걸쳐 바로잡힌 역사에 대해 그들을 죽여야만 했던 과거 독재자의 딸이 그저 존재했던 두 가지 판결 중 하나쯤으로 치부한 것이다.

그가 문제 되는 것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점이 아니다. 그는 독재자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비호하기 시작했고,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된 독재정권의 폭력과 야만에 대해 마치 이민 온 사람인 냥 모르는 척하면서 독재정권을 비호했던 이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 인간은 현재를 진단해야 하고 현재는 과거로부터 오기 때문에, 역사의 과거와 미래는 단절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미래를 위해 더는 과거를 이야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어렵게 바로잡힌 역사를 비틀고 있다.

우리는 그와 그를 내세운 세력이 바꾸려고 하는 역사와 권력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어려워진 노동자 서민의 경제를 빌미로 경제발전을 이야기하고, 박정희 정권시기 달성된 경제발전의 이미지를 신화로써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를 이야기하며 균형 있는 발전을 할 것처럼 대중을 현혹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전태일 열사와 같은 수많은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 없고,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노동자 서민의 삶을 보살핀 적 없다. 이들의 피땀으로 일군 압축 성장이 박정희의 지도력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독재를 비호했던 세력들은 선전해왔다. 그들이 원하는 경제발전은 노동자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한 국가를 위함이고, 여기서 국가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가가 아닌 국민을 지배하는 국가가 된다. 죽은 줄 알았던 이 세력들이 다시 힘을 합해서 국민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 지배력을 얻기 위해 복지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나치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국가의 복지가 민주주의의 원칙과 인권에 입각하지 않을 경우, 철저하게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국가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그 어떤 존재가 있어서도 안 되고, 경제발전을 위해 양보되어야 할 그 어떤 인간의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두 가지 원칙을 무시하게 된다면, 어떤 이의 복리를 위해 다른 어떤 이는 충분히 국가에 의해 죽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박정희는 이미 이런 수준에서 복지를 활용했다. 1963년 산업재해보험법과 의료보험법을 제정했지만, 법적 수준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이 제도는 기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는 박정희를 복지국가의 선구자나 되는 것처럼 역사를 호도하고 있고 자신이 적임자라는 근거를 여기서부터 찾고 있다. 그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이렇게 무지한데, 그와 그의 비호 세력이 설계한 복지국가는 진정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좌표로 설계됐다고 볼 수 있을까?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을 학살했던 당시, 그 사실을 모르고 열심히 일만 했다는 독일인들은 그들이 짊어진 역사적 책임에 대해 다소 억울해한다. 그런데 모르고 협조한다는 것, 그리고 옳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동시대 다른 어떤 이들과 후세대에게 무지와 무저항에 대한 값을 치르게 한다. 내가 모르거나 저항하지 않는 이유로 나는 편안하게 일정 기간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위험하게 할 수도, 내 후손의 가슴에 죄인이란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면, 당신은 그 삶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모르는 것도, 저항하지 않는 것도 모두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가의 복지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또한 민족국가 단위의 사고에서 머물러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에 둔 복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독재정권이 저지른 과오를 경제위기와 맞바꿔 먹고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식의 암묵적 지시 혹은 동조를 경계해야 한다. 70년대 이후 우리가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부모세대가 열심히 일한 결과이지,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때문이 아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성장한 것은 이건희 패밀리 덕이 아니라 노조도 인정받지 못한 채 그저 일만 해 온 노동자들의 노동 때문이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대조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현재, 문제의 본질은 그 세력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세력의 한 축을 이루는 박근혜, 그의 복지로 난 행복한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입 닥치고, 복종한 대가로 받게 될 복지에 대해서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박근혜와 그의 추종세력의 꿈이 좌절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도모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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