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비정규직이 된 체조 영웅의 쓸쓸한 죽음

국가대표 이후 체육교사 스포츠강사 전전하며 생활고

국가대표에서 체조코치로 다시 스포츠강사
10개월 일하다 계약해지되는 학교비정규직


지난 29일 오후 6시 40분께 울산 울주군 서생면 방파제 입구에서 전직 체조선수 임모 씨(46)가 자신의 승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차량 안에는 번개탄이 피워져 있었고 함께 발견된 유서의 말미에는 “울산 체조가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임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체조를 시작해 지금까지 35년 동안 체조계에서 일해왔다. 임씨는 국가대표 체조선수까지 지낸 유망주였다. 지금은 울산 모 고등학교의 스포츠강사다. 임씨는 91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여홍철 선수가 한국 체조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같은 날 한국 선수들의 불모지였던 도마 종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체조의 유망주이자 울산의 체조 역사를 다시 쓴 그는 어린 선수들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임씨가 돌아온 곳은 그의 고향 울산. 여중생 체육 꿈나무들을 가르치며 체육 코치라는 이름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 체조를 세계에 알린 명성에도 불구하고 학교 체육코치의 현실은 열악했다. 체육코치 역시 학교에선 비정규직이었다. 매번 계약을 반복하는 파리 목숨이었지만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다. 임금도 열악했다. 그러나 임씨는 10년 가까이 묵묵히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임씨는 울산의 한 고등학교 체육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고등학교 재직 시절에는 2010년 아시아주니어체조선수권대회에 학생을 출전시켜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받게 했다.

평범한 코치생활을 하던 임씨는 올 초 스포츠강사로 전향한다. 체육코치나 스포츠강사 둘 다 비정규직이지만 임씨가 택한 스포츠강사는 더 열악했다. 어떤 사연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씨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울산에만 체육코치가 모두 171명이 있다. 이들은 모두 10개월만 일하고, 2개월 쉬고 다시 계약하는 단기 기간제 비정규직이다. 특히 체육코치는 영양사나 조리사처럼 근무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차단된 매우 열악한 처지다.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고 정년보장은 전혀 되지 않는다. 젊은 체육코치가 많은 반면 나이 많은 코치를 주변에서 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스포츠강사는 더욱 심각하다. 10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고 이마저도 2개월은 무직생활을 해야 한다. 퇴직금을 주지 않고 정규직 고용의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다. 임금 수준도 더 낮다. 하지만 교육청은 여전히 예산부족이라는 핑계로 비정규직 계약자를 더욱 확대하는 추세다.

울산의 사립학교 교원은 정원이 늘어났지만, 이를 계약직 교사로 메우기 바쁘다. 올해 기간제교사 8명, 시간강사 32명 등 40명의 비정규직 교사만 더욱 늘어났다.

상주로 빈소를 지키던 남동생(42)은 “몸이 아픈 어머니가 쓰러지실까 두려워 형의 죽음을 알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빈소엔 유족과 친구들이 함께 했다.(기사제휴=울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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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계약 , 기간제교사 , 계약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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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은정

    이런게 우리나라 교육의 실체이군요. 명복을 빕니다.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코치해주신 것 대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