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부터 ‘박근혜’까지...재능교육 투쟁 5년 맞아

“세상이 바뀐다 해도, 우리는 5년간 걸어왔던 길을 걸어갈 것”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인 2007년 12월 21일,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는 거리농성 투쟁을 시작했다. 농성 투쟁 중에 진행된 회사의 통장 가압류, 부동산 경매,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은 차가운 겨울바람만큼 매서웠다. 회사와의 관계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문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5년 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소식이 전해졌지만 재능 학습지 교사들은 여전히 같은 거리에 서 있다. 꼬박 5년이란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고, 또 기약 없는 시간이 흘러가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눈이 내리던 21일 오전,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는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지부, 연대단위들이 모여들었다. 재능지부 투쟁 5년을 맞아, 그간 함께 투쟁해 왔던 사람들과 또 한 번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다. 지난 5년의 힘든 시간이 떠올라서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겁다.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은 “‘야 이 자식들아, 세상이 바뀌었어’라는 회사의 말을 들으며 농성을 시작한지 딱 5년이 지났다”며 “5년 동안 정권은 한 번 바뀌었지만 우리들의 투쟁은 처음과 같다”며 입을 뗐다.

실제로 지난 5년간, 회사와 여러 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매번 교섭은 불발됐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직원의 폭력과 농성장 철거, 가압류는 반복됐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투쟁도 이어졌지만, 25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5년간 힘든 싸움을 이어왔지만, 정권은 박근혜 새누리당 세력에게 그대로 넘겨졌다.

그렇다고 노동계의 여러 세력을 흡수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당선이 됐다면 달랐을까. 오수영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은 “재능교육의 단협해지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무현 정권 때 이뤄졌고,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는 단 한 번도 국회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며 “민주통합당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아왔고, 우리는 그냥 5년을 걸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기약 없는 거리 위의 삶은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오 사무국장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투쟁이 마무리돼 있겠지, 생각하며 투쟁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고 아이는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됐다”며 “앞으로 5년 후면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아이와 많이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간 쌓아왔던 투쟁의 성과조차 후퇴될까 두려운 마음도 크다. 앞서 11월 1일, 서울행정법원은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노조 활동을 이유로 위탁계약을 해지한 재능교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와 재능교육지부 모두 항소를 한 상태라, 법원의 정치적 판단의 따라 현재의 1심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유명자 지부장은 “박근혜 정권 하에서 법원이 대단히 정치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어렵게 얻는 노조법상의 ‘노동자’ 인정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수고용노동와 관련한 노조법과 산재보험법 개정 문제 역시 풀기 어려운 문제다. 여소야대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조차도 상정된 특수고용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현재 박근혜 새누리당 당선자는 대선 공약으로 ‘특수고용직 근로자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가입 확대’만을 제시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는 아예 배제돼 있는 셈이다.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의 상징이 된 재능교육지부는 다시 한 번 투쟁의 끈을 조일 수밖에 없다. 재능교육 본사 앞에 모인 연대단위들 역시, 박근혜 정권의 출범이 전혀 새로운 상황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투쟁 결의문을 통해 “우리는 입법 청원운동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자적인 방식으로 대자본, 대정부 투쟁을 진행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완전한 노동3권이 쟁취될 수 있도록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학습지 노동자들이 여전히 해고돼 있고,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 돼 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던 투쟁을 멈출 수 없다”며 “또한 재능자본이 진정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해고자가 복직하기 전에 당장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