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 부산행 희망버스 1년만에 재시동

버스 37대 채워 전국서 2천여 명 참가

'희망버스'가 1년 3개월 만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비없세)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상시국회의는 5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대한문 앞과 전국 각지에서 울산과 부산으로 출발했다.

[출처: 울산저널]

이날 출발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 참가자 700여명이 버스 14대에 나눠 탔고, 경북, 충남, 강원 등 전국에서 18대의 버스가 출발하는 등 34대의 버스를 준비했다. 그러나 울산에 도착하면서 버스는 다시 3대 더 늘어나 모두 37대의 버스가 이동했다.

버스를 신청하지 않고 승합차나 기차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어 울산에 1,500여명이 집결한 이후 부산에선 2천여명에 달했다. 지난 2011년 희망버스 실무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딱 1주일 밖에 홍보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신청이 쇄도해, 참가자들이 2차 희망버스 때와 비슷한 열기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초 5대 안팎의 버스를 예상하고 행사를 준비했으나, 결국엔 40대 가까운 버스를 채울만큼 열기가 뜨거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혹한과 주말까지 겹쳐 당초 예상보다 다소 늦은 이날 오후 4시께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라가 농성중인 송전탑을 방문해 1,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다시 희망 만들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결의대회엔 강성신 민주노총 울산본부장과 박현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 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이 발언했다. 송전탑 농성자 천의봉 사무장은 자신의 농성일기 3일치를 읽으며 "계사년 뱀의 해를 맞아 뱀이 허물을 벗듯이 우리도 비정규직의 허물을 벗고 정규직이 되자"고 결의를 밝혔다.

이날 대회엔 60년대부터 인천 산업선교회를 시작으로 노동운동을 지원해왔던 조화순 목사(80)가 나서 "노동자들에게 참혹한 탄압이 자행되던 박정희 시절도 견딘 만큼 모두가 하나돼 이 난국을 극복해가자"고 말했다. 조 목사는 산업선교회 활동으로 1974, 1978년 2차 옥살이 끝에 다시 1980년에도 노동자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연행되기도 했다. 마지막 상징의식으로 참가자들은 버스 안에서 작성한 희망편지를 미리 준비한 우체통에 넣었다. 대회는 오후 5시20분께 백석근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와 대표로 희망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출처: 울산저널]

참가자들은 다시 2시간 가까이 버스로 이동해 지난달 21일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고 최강서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저녁 8시10분께부터 '다시 희망만들기' 행사를 열었다.

부산 집회는 각계 대표들의 공동선언문 낭독으로 시작해 밤 10시30분까지 게속됐다.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과 백석근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참가 대학생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민주당에선 정동영 전 의원과 은수미 의원이, 진보통합당에선 민병렬 최고위원이, 진보정의당에선 노회찬 조준호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편 울산 송전탑과 부산 한진중공업이 소속된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과 현대차정규직노조 문용문 지부장은 두 곳의 집회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1km 가량 떨어진 영도구민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최강서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희망버스는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 희망버스는 2011년 6월부터 10월까지 모두 5차례 4만여 명이 참가했다. (기사제휴=울산저널)

[출처: 울산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