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는 ‘손배가압류’, 숨은 가해자는 정부와 법원

손배가압류에 가담, 지원해온 국가...손배가압류는 급증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손배가압류’의 가해자는 ‘자본’이다. 회사는 투쟁사업장에 금전적 족쇄를 채우기 위해 수백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지금까지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액은 약 729억 6천만 원이며, 가압류 청구액은 약 20억 7천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명백한 가해자로 지목되는 ‘자본’의 뒤에는, 또 다른 막강한 가해자가 존재한다. 2003년 배달호 열사 이후 10년간,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지원하고 심지어 이에 가담해온 집단은 바로 ‘국가’와 ‘법원’ 이었다.


노조 ‘손배가압류’에 가담해 온 정부
쌍용차, 유성, 철도노조 등에 손배가압류 제기


국가는 줄곧 자본이 노조에 제기하는 손배가압류에 가담해 왔다. 회사의 허구적인 손배가압류 금액에 가려져 있을 뿐, 본질적인 문제는 같다.

한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쌍용차동차’ 문제는 국가가 ‘손배가압류’의 가해자로 나선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은 쌍용자동차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42억 원의 손해배상과 8억 9천만 원의 가압류를 청구했다.

김형석 금속노조 기획부장은 2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점 및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산업은행 앞에서 시위 중이던 조합원들과 충돌한 경찰 120명이 치료비, 장비손상 운영 및 수리비 등의 명목으로 조합원 등 104명에게 위자료 2억 원을 포함한 손배 42억, 가압류 8억 9천만 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으로 알려진 유성기업 투쟁에서도 국가의 손배가압류는 여지 없었다. 경찰은 홍종인 유성기업아산지회장 및 조합원 3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1억 1천 4백만 원과 가압류 1천 1백 40만 원을 제기했다. 압류금액은 해고자의 경우 퇴직금 정산에서, 비해고자는 월급에서 공제해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공공운수연맹 철도노조가 2006년 4일간 총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69억 9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조는 2011년 최종 패소했으며, 20억 이상의 법정이자가 붙어 100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금을 부과했다. 김형석 기획부장은 “하지만 회사는 2009년 파업에 대해서도 다시 90억여 원에 이르는 손배를 청구해 현재 재판 중”이라고 설명했다.

손배가압류 문제 의지없는 정부와 법원...손배가압류 규모 급증

국가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손배가압류’에 가담하고 있다면, 법원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손배가압류 소송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쟁의행위’의 정당성 문제다. 법원은 쟁의행위 정당성 문제를 ‘경제논리’로 제한하면서 기업과 정부에 손배가압류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일례로 대법원은 2003년 7월, 시그네틱스 부당해고와 관련한 선고에서 “경영권과 노동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법원은 정리해고 문제에 있어 집단적 노사자치에 의한 해결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며 “이는 법률적 판단이 아닌 정치경제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배달호 열사의 사망으로 ‘손배가압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자, 정부와 법원, 노동부는 각종 제도개선과 입법론 등을 제출했다. 그 해 3월, 정부는 노동관계장관회의에서 “불법파업이라도 비폭력일 때는 사용자가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묻기 위해 근로자에게 하는 손해배상, 가압류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부 역시 12월, ‘손배가압류 관련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선안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고, 노사정 합의는 민주노총이 배제된 채 상징적으로만 체결됐다.

사법부는 심문제도의 적극적 활용과 진술서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김태욱 변호사는 “심문제도의 적극 활용 지침은 담당 판사에 따라 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일례로 쌍용차 파업에 대한 가압류의 경우 매우 큰 액수임에도 아무런 심문절차 없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규모는 지난 10년간 10배 가량 급증했다. 2002년, 213억 8500만 원 가량이던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손해배상 청구액은, 2013년 현재 1천억 원을 돌파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소속 사업장 손해배상 액수는 1천 306억 원, 가압류 액수는 7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