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장실 갈 자유도 없어요”

여성노동자들의 아픈 노동 현실을 듣다

화장실, 고객, 관리자... 여성노동자에게 이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3월5일 오후 4시 민주노총은 105주년 3.8 여성대회 주간을 맞아 보육교사, 콜센터 노동자, 백화점 판매 노동자, 요양보호자, 청소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듣는 ‘여성노동자 키워드 토크 <여성 노동이 아프다>’를 진행했다. 일상적인 단어에 담긴 의미를 풀어놓는 여성노동자들의 얘기 속에 이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애환이 그대로 묻어났다.

‘가깝고도 먼 당신’, ‘20만원을 포기해야 하는 곳’. 여성노동자들이 떠올린 화장실의 의미다. 보육교사인 김호연 조합원은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화장실에 가는 것일 만큼 일하면서 화장실 가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교사 한 명이 23명의 아이들을, 돌도 안된 아이들은 교사 한 명이 5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교사가 자리를 비우면 그 순간이 사고가 나는 순간이예요. 화장실도 아이들에게 맞춰진 공간이다 보니 어른인 교사들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죠.”

"집에 가면 화장실부터 가요"

다산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심명숙 조합원은 “화장실은 20만원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전화를 받아야 하니까 화장실에 가면 전화기를 휴식으로 돌려놓고 가요.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팀장에게 화장실 가도 되는지 물어봐야 해요. 그러면 팀장이 지금 몇 명 갔으니 누구 오면 화장실 가라고 시간을 짜줘요. 화장실 가서 5분이 넘으면 팀장이 가서 얼른 나와라, 왜 오래 있느냐고 재촉하죠.”

심명숙 조합원은 “화장실 몇 번 갔는지 다 체크되니까 알아서 물도 안마시고 참으면서 전화를 받는다”며 “휴식이 길면 개인 평가에 반영되고 곧바로 임금으로 타격이 오니까 상담원들이 돈과 평가 때문에 알아서 자제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인다.

  3월5일 민주노총은 105주년 3.8 여성대회 주간을 맞아 보육교사, 콜센터 노동자, 백화점 판매 노동자, 요양보호자, 청소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듣는 ‘여성노동자 키워드 토크 <여성 노동이 아프다>’를 진행했다. [출처: 신동준]

화장실 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이들의 현실은 ‘노동시간’의 의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은 종합병원이예요. 12시간 내내 거의 서서 일하고, 넓은 백화점에 고객 휴게공간은 있어도 직원 휴게 공간은 거의 없어서 운이 좋아야 의자에 앉을 수 있어요.” 하지정맥류, 불임, 성대결절 등 각종 병을 달고 산다는 것이 이미숙 노동자의 설명이다.

여성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고된 노동의 삶을 살고 있다. 휴식시간은 이들에게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24시간 노동을 해요. 아무리 24시간이어도 잠은 자야하는데 쉴 곳이 없으니 복도나 아무곳에서나 쪽잠을 자요. 회사는 10시간 휴식시간 준다고 하지만 내 마음대로 어디를 갈수도, 쉴수도 없는게 무슨 휴식시간이예요.” 오세영 요양보호사의 얘기다. “청소, 빨래, 환자 돌보는 것 까지 모든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또 일해야 하는데 정말 고되다”는 토로가 이어진다.

휴식시간 없이 일하니 ‘종합병원’ 신세

보육교사도 마찬가지다. ‘휴식없는 감정노동의 연속’, 이들은 점심시간에도 쉴 수 없다. 아이들 밥을 먹이다보면 정작 교사는 5분만에 밥을 먹어치워야 하는 상황. 정당한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요구하면 시설장은 나가서 밥 먹고 오라고 한단다. 하지만 대체교사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두고 한 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71만원 임금 받으면서 청소하러 갔는데 제초제 뿌리고 가랑잎 쓸고 눈 치우고. 10년을 이렇게 일하고 있어요. 너무 혹사시키는데 반장한테 힘들다고 얘기하면 무조건 안된다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박경순 청소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은, 힘든 것은 물론 인권까지 포기해야 하는 시간이다.

‘고객’을 주로 상대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뒤따른다. 이미숙 조합원은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정여사처럼 무조건 바꿔달라고, 말도 안되는 요구는 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서비스노동자라고 하면 무조건 ‘너희는 우리가 시키는대로 해’라면서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조합원은 “결국 고객은 왕이라는 백화점의 시스템이 만든 문제”라고 설명했다.

  3월5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여성노동자 키워드 토크 <여성 노동이 아프다>에 참여한 서울시 다산콜센터의 한 노동자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처: 신동준]

콜센터 상담원들은 악성민원에 시달린다. 욕을 하거나 밤 늦게 술에 취해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시 방침이 서울시에 대해서 욕을 하는 것은 끊지 말고 계속 들으라는 거예요. 부당한 전화도 무조건 받아야 하고, 욕을 하더라도 끊지 못하고 상담원들이 욕을 다 들어야 하죠.”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고객은 학생이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도 옆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고 갈때면 마치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는 서글픔을 토로했다.

“무조건 시키는대로 해”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인격적 대우는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시키는 대로 일하라고 강요하는 관리자들은 ‘감시자, 절대권력자, 필요없는 존재’로 꼽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콜센터에서 일하다 3월4일 부로 해고된 여성노동자는 관리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노동자는 “욕을 하는 고객의 전화를 도저히 받을 수 없어서 끊었더니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네 번 징계하고 결국 해고됐다. 부당하게 욕을 들은 내가 피해자인데도 파견업체와 유통공사는 서로 책임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아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서비스 노동자인 이미숙 조합원은 “나에게 아이는 옆집 아이”라는 것으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장시간 노동을 하다보니 집에 가면 잠자는 아이 모습만 봐요. 옆집 아이 가끔 보면 쑥쑥 크는 느낌이잖아요. 우리 애를 보는데 딱 그런 느낌이예요.” 심명숙 조합원도 “콜센터 상담원들은 아이가 아파도 회사 와서 콜(상담 전화) 받고 가라는 관리자 때문에 아이 혼자 두고 회사에 나와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임산부의 경우도 병원 진료를 가려면 무급으로 시간을 빼서 가야한다”고 설명했다.

김호연 보육교사는 “저에게 아이란 철인종목 경기 중 하나”라며 “여성이 해야 할 종목이 너무 많은데,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자신을 위한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여성노동자의 고충을 토로했다.

여성노동자들이 ‘화장실, 노동시간, 고객, 관리자, 아이’ 등의 키워드를 통해 현장의 노동조건과 고충을 얘기할 때마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공감하는 어려움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상상보다 심각한 상황에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다. 아픈 여성 노동의 현실, <키워드 토크>에 참여한 이들 모두 우리 투쟁으로, 우리 힘으로 현실을 바꿔내고 정말 여성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하며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제휴=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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