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호소, 영국 새 좌파정당 건설된다...“레프트 유니티”

신자유주의 보수당, 항복한 사민당, 분열된 좌파 뛰어 넘어 새 좌파정치 모색

수십 년에 걸친 보수화와 분열로 유실된 영국 좌파정치가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좌파 영화 감독 켄 로치의 호소에 수많은 이들이 화답하며 결성된 “레프트 유니티(Left Unity)”가 영국 좌파 정치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영국 좌파들이 긴축과 분파주의를 넘을 대안으로 “레프트 유니티”를 결성하고 새로운 좌파 정치 운동에 나섰다. 운영위원회와 함께 전국 90개 지역에 조직이 건설됐고 부문 위원들의 첫 번째 전국 회의가 11일 진행된다. 운영위원 절반이 여성으로 선출됐다. 내년 초 새로운 정당 결성을 위한 발의가 이뤄질 계획이며 ‘맑시즘 스타일’의 정치 페스티벌도 열린다.

[출처: http://leftunity.org/]

이들은 유럽 긴축 상황에 대해 “경제위기는 민중이 점점 더 빈곤, 기아에 시달리고 심지어 죽음을 대면하게 하는 사회적, 정치적 위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 이제 유럽 민중들이 반격하고 있다”며 “현재 중요한 것은 11월 14일 수백만 명의 거리 시위와 남유럽 총파업 등의 새로운 운동에 적합한 정치적 표현을 부여하는 것”이라 밝혔다. 또한 “그리스, 프랑스, 독일 등에서 좌파 세력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민주의의 항복에 반발하며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프트 유니티”에 참여하는 이들은 “여기 영국에선, 노동당 우측에의 성공적인 대응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며 “우리는 여전히 긴축과 전쟁에 반대하고, 우리 사회와 제도의 보다 큰 민주화를 옹호하며, 일상을 조직하는 새로운 정치적 형태를 필요로 한다”고 새로운 좌파 정치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레프트 유니티”는 경제위기와 긴축 아래 우향우로 내달리는 영국 정치를 겨냥한다. 최근 지역 선거에서 지배 양당(보수당과 자유당)이 영국독립당(UKIP)에 처절하게 패했다. 독립당은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며 反이주민 당으로서 모든 주요 정당을 오른쪽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켄 로치 호소로 촉발

  영국 맨체스터 레프트 유니티에 참여하는 이들이 회의를 갖고 모습을 전했다. [출처: The 14th November Movement - for left unity 페이스북]

<인터내셔널 뷰포인트>에 기고한 앨런 토넷(Alan Thornett)에 따르면 “레프트 유니티”는 지난 3월 중순 영화감독 켄 로치가 자신의 [더 스피릿 오브 ‘45(The Spirit of '45)] 개봉과 함께 새로운 좌파 정치를 호소하며 촉발됐다.

[더 스피릿 오브 ‘45]는 의료, 주택, 교육과 사회보장 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한 전후 세대의 성취를 조명한 영화이며 켄 로치는 이를 통해 긴축의 시대, 분열된 좌파를 배경으로 넓은 좌파 정당을 위한 호소에 나섰다.

켄 로치의 호소 후 한 영화관에서 질의 응답이 진행됐고 3월 중순 [더 스피릿 오브 ‘45]의 50개관 동시 개봉과 함께 토론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특히 현재 “레프트 유니티” 토론 공간으로 자리 잡은 인터넷 페이지에서는 개설 후 며칠 만에 6,000여 명이 켄 로치의 호소에 화답하는 글을 남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레프트 유니티에 참여하는 이들은 현재 보수연정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 고통을 전가하고 평범한 이들의 생활 조건을 침식시키며 복지국가를 해체했다는 견해다.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해야 하는 노동당 또한 이제 긴축에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지 않으며 그 대신 포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레프트 유니티는 복지국가를 방어하고 긴축에 대한 경제적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좌파의 새로운 정당을 결성하고자 한다.

“레프트 유니티”, 다양하게 확장된 노동 좌파이자 반 긴축 정당

“레프트 유니티”는 사유화와 긴축을 밀어붙인 보수당, 이를 방기하거나 동조한 노동당뿐 아니라 분열된 좌파 정치의 극복을 주요 과제로 본다.

영국 사회주의 세력은 91년 영국 공산당 해산 후 2000년 사회주의 동맹(SA)을 결성하며 새로운 사회주의 연합운동에 나서지만 영국 좌파 최대 조직인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사회당(SP)의 분파주의 등의 이유로 침체된다.

앨런 토넷에 따르면 특히 2010년 처음 보수연정의 긴축으로 인해 촉발된 긴축반대 투쟁도 역사 속 극좌 세력의 분열이라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되풀이됐다. 긴축반대 운동은 SP의 “전국현장활동가네트워크(NSSNT)”, SWP의 “저항단결(UR)”, 그리고 좀 더 개방적인 “저항연합(CoR)”으로 쪼개져 진행됐다.

이 때문에 “레프트 유니티”는 새로운 조직이 넓고 다양한, 노동 좌파·반 긴축 정당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며 조직 간 연맹이 아닌 개인 구성원에 기초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켄 로치의 “넓은 좌파 정당 건설”을 위한 호소뿐 아니라 영국 좌파 지형에 일어난 논쟁과 사건들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긴축에 맞선 투쟁과 좌파의 분열 한편에서 나타났던 유럽 긴축반대 투쟁, 그리스 의회 내외에서의 좌파연합 시리자의 투쟁, 전유럽 민중의 연대 운동이 터져 나왔던 11월 14일 유럽총파업 등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 해 4월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좌파 조직을 제안한 반자본주의 좌파(ACL) 결성, 그리고 이와 연관해 분파적인 과거에 대한 단절을 함께 제기한 루크 쿠퍼(Luke Cooper)와 시몬 하디(Simon Hardy)의 <자본주의를 넘어서, 급진 정치학의 미래> 출판 후 잇따른 논쟁도 분파주의를 넘어 좌파단결운동 형성에 주요했다는 평가다.

또한 지난 1월 초 SWP 내 성폭력 사건과 제기 그룹에 대한 출당 조치, 그리고 200여 명 탈퇴 과정에서 드러난 SWP의 반민주주의와 쇠퇴도 주요한 계기로 기록된다.

SWP도 SP도 “레프트 유니티”에 참여하지 않는다. 켄 로치는 참여하지만 지도자는 아니며 어떤 카리스마 있는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앨런 토넷은 “선거 시 이는 단점일 수 있지만 최근 악취가 나는 몇몇 인물로 인한 대혼란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면”이라며 “이는 정당 스스로가 활동으로 자신의 평판을 만들어야 할 것임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선거 전술은 아직 토론되지 않았지만 명성으로 의원직을 얻거나 선거 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배제 전술은 쓰지 않을 전망이다. 우경화된 노동당 한편에 선 노동조합과 학생 등 대중운동과의 결합 가능성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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