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고공농성 100일, “‘끝까지 함께’라는 구호만 봐도 눈물이”

[인터뷰] 성당 종탑 고공농성 100일 맞은 오수영, 여민희 조합원

추운 겨울이 지나고 곧바로 여름 같은 날씨가 찾아왔다. 고공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계절의 변화는 보다 직접적이다. 칼바람에 벌벌 떨며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오른 지 100일. 기대했던 봄날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 종탑 위에서 뜨거운 햇볕을 견디고 있다. 한 평 텐트 안은 한 낮의 뜨거운 공기로 후덥지근하다.

5월 15일이면 재능교육지부 여성 조합원 2명이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혜화동 종탑에 오른 지 100일을 맞는다. 학생들과 함께 보내야 할 ‘스승의 날’에,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고공농성 100일 투쟁을 벌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고공농성이 언제 끝이 날지 기약할 수도 없다. 전국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사업장들처럼, ‘장기전’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고공농성 100일을 맞아, 종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오수영, 여민희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을 찾아갔다. ‘잘 지내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린다. 고공에 발이 묶여, 몸과 마음에 난 상처가 곪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최장기 투쟁 사업장’으로 기록된 시간만큼, 몸과 마음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이 쌓여간다.


한파가 몰아칠 때 시작한 고공농성, 100일간의 시간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 건강은 어떤가

오수영 조합원(이하 오수영) 잘 지내고 있다. 원래 위는 좋지 않았고, 여기 있으면 움직일 일이 없어 음식을 많이 먹지는 못한다. 한참 추울 때는 추위 때문에 혈압이 많이 올라갔다. 밑에서는 100~110정도였던 혈압이 135~140까지 나오더라. 의사 선생님이 날이 너무 춥고, 몸이 따뜻해질 기회가 없어 혈액순환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혈관이 펌프질 하는 게 느껴져, 어쩔 때는 등에 심장이 생겼나보다 했다. 민희는 최근 감기몸살로 고생을 좀 했다.

여민희 조합원(이하 여민희) 입맛도 없고 위도 안 좋았다. 그러다 며칠 전 감기 몸살에 걸렸다. 이제는 꽤 나았지만, 매일 아침마다 하는 100배도 못할 정도였다. 끙끙 앓다 나았다. 잠을 잘 자지 못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여러 고민과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내부 문제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어 상처 되는 글이 올라오거나 하면 며칠 잠을 못 잔다.

100일간 종탑 위에서 하루하루 어떤 일과를 보냈나

오수영 아침 8시 30분부터 100배 투쟁을 시작한다. 100배 투쟁은 하루를 시작하고,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서 웹자보나 선전 작업을 한다. 조합원들 수가 적고, 항상 밖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문서 작업이나 선전 작업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올라와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어깨가 결리는 게 사무직 노동자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올라왔을 때는 일을 안 시켰는데 갈수록 업무 분담이 늘어난다. 심지어 사람들 조직하기 위한 전화까지 돌린다. (웃음)

저녁에는 매일 집회랑 문화제가 있으니 발언 준비도 해야 한다. 매일매일 뭔가 말하려다 보니 이제는 노래도 부르고 자작시를 써서 읽기도 한다. 원래 시를 잘 보지도 않는데 여기 와서 시도 써봤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바빠 우리 밥도 안 챙겨 줄 때도 있다.

100일이라는 힘든 기간 동안, 기쁜 일은 없었나

오수영 우리가 처음 올라왔을 때 주황색 텐트였는데, 지금은 텐트가 바뀌지 않았나. 시민 분이 가지고 오신 거다. 전에 있던 텐트에서 생활할 때는 민희가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훨씬 편해졌다. 그러고 보니 민희는 엉뚱한 것 때문에 자주 운다. 저번에는 밥 먹다 손이 시렵다고 운적도 있다.(웃음)

여민희 처음에 가지고 올라왔던 텐트는 너무 좁고 높이도 낮았다. 그래서 한 명이 구부려 앉으면 한 명은 누워있어야 했다. 매일 구부리고 있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오수영 밑에 텐트가 필요하다고 말은 했는데, 사람들도 텐트 전문가들이 아니고 이것저것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1박 2일 투쟁할 때 어떤 시민 분이 이 텐트를 가지고 오셨 길래, 유득규 언니가 이런 텐트는 얼마나 하냐고 물어봤다. 그리고나서 시민 분이 이 텐트를 빌려주셨다. 텐트가 편해지니 민희나 나나 좀 살 것 같더라.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오수영 초반에는 엄마나 시어머니 모두 ‘빨리 잘 해결돼서 내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노조 내부 갈등이 전해지면서 엄마는 ‘더 이상 쟤네는 안 되겠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어머니도 저에게 ‘네가 속고 있는 것 같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며 내려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엄마나 어머니 모두 잔소리를 많이 하시지는 않는다. 엄마는 자주 찾아오신다. 처음에는 기가 막히고 설움이 복받쳐 올라 별말 안하셨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오셨을 때, ‘지난번 왔을 때 손 한번 못 잡아 준 게 너무 생각나, 한 번 안아주고 가겠다’고 하시더라.

아들은 1박 2일 농성촌에 아빠와 자주 온다. 얼마 전에는 런닝맨 게임을 했는데,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유득규 언니가 계속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더라. 아들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애가 아닌데, 계속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들었는데, 민희팀VS수영팀으로 나눠져서 게임을 했다고 하더라.(눈물)

여민희 민희VS수영팀으로 나눠서 게임을 하는데, 아이는 엄마 팀이 이기면 엄마가 종탑에서 내려오는 줄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안 부르던 노래도 하고 악착같이 게임을 했다고 한다. 유득규 언니는 아이가 이기게 해 주려고 또 악착같이 게임을 하고.

나 같은 경우는, 남동생이 매주 수원에서 여기까지 찾아온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는 지 ‘딴생각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다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생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요새는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자주 묻는다. 매주 와서 빨래를 가져가고, 올케가 빨래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올려 보내고 있으니 힘든 것 같다. 올케도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있고, 둘 다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미안하다.

“쌍용차 동지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륭전자 동지들 고맙습니다”

얼마 전, 같이 고공농성을 해왔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송전탑에서 내려왔다. 바라보는 심경이 어땠나

여민희 원래 복기성 동지가 페이스북에 글도 많이 올리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올라오지 않더라. 내려오기 전날, 의사들의 검진 결과를 들어보니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우울했다.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는 대자본과의 투쟁이지만, 쌍용차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내려와서 다른 방안을 찾았으면 했다.

사실 우리같이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들은 잘 지낸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매일 울어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 할 때는 정말 아플 때다. 쌍차 고공농성 노동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을 생각하며, 아프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마음이 쓰인다. 내려가기로 했을 때 좌절감도 컸을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괜찮다고 해도, 그 두 분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는 척도 못하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야 연락을 했다.

오수영 고공농성 노동자들끼리 공동 카톡방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데, 갈수록 말이 없어졌다. 지금은 거의 휴면 상태다. 복기성 동지도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페이스북도 거의 안했다. 소통이 없었다. 검진 결과를 들어보니, 말도 많이 없어지고, 우울증도 생기고, 혈압약을 먹는데도 혈압이 높다고 해서 너무 무서웠다.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많았다. 무사히 내려와서 정말 다행이다.

‘최장기 비정규 투쟁사업장’이라는 타이틀을 기륭전자로부터 이어받았다. 얼마 전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복직을 했는데 기분이 어땠나

오수영 처음에 복직 보도가 나왔을 때 오보인 줄 알았다. 사측이 조합원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재능 사측도 우리한테 ‘그래도 기륭은 복직도 수용하지 않는데, 우리는 너희를 받아준다고 했다. 우리가 기륭보다 낫지 않나’는 이야기를 자꾸 했다. 그리고 나서 기륭 조합원들이 정말 복직을 했는데, 너무 장하고 고마웠다. 또다시 회사와의 싸움을 시작하는 건데, 조합원들 모두 결심하고 들어가줘서 정말 고맙다.

여민희 부러운 마음보다 고맙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힘들게 싸워온 동지들이 복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많이 고마웠다.


노동자들이 100일, 200일 동안 고공농성을 해도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시대다. 재능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역시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나

오수영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 각오도 하고 있다. 회사와는 14일까지 2박 3일 집중교섭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회사는 단체협약은 복귀 후 논의하자는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그동안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고 이지현 조합원의 복직에 대해서는 검토해 본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에 올라올 때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관철될 때 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도 유효하다.

장기화에 대한 각오는 하고 있지만, 걱정도 된다. 만약 200일까지 내다본다면, 6, 7, 8월 여름을 다 여기서 보내게 되는 거다. 5월인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그 때까지 체력이 버틸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종탑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곳이 돌풍이 심한 곳이라고 한다. 장마나 태풍이 오면 웬만한 것은 다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금은 장마나 태풍이 올까 무섭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존재하는 한, ‘끝까지 웃으며 함께 투쟁’”

어려운 질문을 드리겠다. 재능교육지부 내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해결 기미는 없나

오수영 장기투쟁사업장이다 보니, 내부 조합원들의 감정이 좋을 수만은 없다. 애정과 증오심 같은 게 서로 얽혀 있다. 과거에 극한 대립을 거치게 되면 더욱 풀기 어렵다. 서로 관계가 어렵더라도, 같이 투쟁을 하기로 했다면 그 문제를 풀고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같이 싸우자고 말은 했지만, 감정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폭발했고 많이 싸웠다. 애들처럼 싸웠기 때문에, 애들처럼 풀었어야 하는 간단한 문제였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라 그러지 못했고, 너무 어려웠다. 그러면서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졌다. 상대방의 상처를 받아들여야만 치료가 가능한 문제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이 조차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흐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여민희 오래 전부터 감정의 골이 깊어져 온 문제여서 해결하기 힘들었다. 나와 유득규, 유명자 동지는 많이 친한 사이였다. 10년 넘게 노조 활동을 같이 해 왔다. 지금 회사가 노조를 이렇게까지 만들어놨는데, 우리마저도 이런 상태가 돼 버리니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밑에서 지켜보는 조합원들과 연대단위 동지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오수영 일 좀 그만 시켰으면 좋겠다.(웃음) 이건 장난이고, 사실 민희는 여기 올라와서 언니들과의 관계가 많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줄곧 생각하는 것 같다. 밤새 그렇게 혼자 울어서, 아침이면 민희가 휴지를 거의 다 써버린다. 나 같은 경우는, 운동의 원칙이나 사람사이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것들은 운동하는 선배들이 강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친소관계가 자기 정치조직의 입장, 이합집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종탑 고공농성이 100일을 맞았는데도 입장 한 번 내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서 절망감을 느낀다. 아무리 대립이 극심하고,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역사 속에서 쌓아 왔던 운동의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종탑 고공농성 100일을 맞이해도 풀리지 않는 내부 문제를 보며 그래도 걱정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100일을 여기서 살아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느껴가는 것 같다. 고립 상태가 길어져도 생존 방법을 터득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안하셨으면 좋겠다. 많은 지지와 응원, 그리고 잘못 했을 때는 과감한 질책도 부탁드린다.

여민희 막상 올라와 보니 농성이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간에 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재능투쟁이 승리하지 못한 채 내려가게 되면 너무 많이 억울할 것 같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감정적 호소가 아닌 ‘재능투쟁이 승리해야 한다’는 공감이다. ‘내부 문제가 시끄러워서 연대를 못하겠어’ 혹은 ‘거기 가면 종탑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여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가 된다.

‘무엇 때문에 못 하겠다’라는 말 보다, 먼저 같이 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파 때문에 싫다는 사람도 있고, 이도 싫고 저도 싫어 숨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핑계 대는 연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투쟁을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끝까지 웃으며 함께 투쟁’이라는 말이 마음에 박히더라. 그 글을 보고 한 시간은 울었다. 어떤 문제든 상관없이 항상 와주시는 분들 때문에 버티고 있다.
태그

고공농성 , 재능교육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