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사회주의와 가난한 자들의 자본주의를 넘어서”

[알림] 참세상 주례토론회 매주 화요일, 연말까지 개최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참세상에서 매주 주례토론회를 열고 독자여러분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가고자 합니다.

이번 주례토론회는 2013년 말까지 계속되며 “부자들의 사회주의와 가난한 자들의 자본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노동계급운동, 경제위기, 자본주의 위기 분석 및 이와 관련된 대안담론, 국제정치 지형에 대한 분석과 토론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서울 충정로 참세상 건물 5층에서 진행합니다.

주례토론회의 주요 주제

- 창조경제의 기원
- 신자유주의와 한국사회 계급구조의 변화
- 스웨덴 복지정치와 신자유주의
- 사회적 경제 비판
- IMF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노조운동과 노동계급의 변화
- 생산의 정치와 재생산의 정치
- 신자유주의와 부채전쟁
- 디폴트의 정치경제학
- 경제위기 이후의 자본주의의 변화
- 글로벌 케인스주의와 임금주도성장론의 문제
- 사회재생산과 페미니스트 경제학
- 후기자본주의와 로맨스
- 미국금융위기와 금융자본
- 마르크스 신용론의 재구성과 신자유주의
- 스웨덴 사민주의의 전망
- 유로통합과 유럽정치의 변화
-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와 중남미 좌파정권
- 시진핑 체제와 중국 경제의 전망
- 급진민주주의
- 적/녹/보 연대와 글로컬 행동
- 조직된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
- 21세기 사회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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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사회주의와 가난한 자들의 자본주의”를 넘어
- 참세상 주례토론회에 부쳐

위기의 시대, 자본의 최후의 보루 ‘끝판왕’이 등장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영역에서 예전과 다른 큰 변화는 국가라는 ‘끝판왕’의 등장이다. 게임시스템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얼굴을 드러내놓지 않았던 그 ‘끝판왕’. 그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강림했다.

우리는 5년 전 난데없이 날아든 미국 발 금융위기라는 공포 앞에서 이제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놀라움에 빠졌었다. 그러나 금융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서 국가는 여기에 신속하게 개입했다. 부실금융기업을 국유화시키는 일도 벌어졌으며, 부도에 몰린 자동차기업을 되살리기 위해 세금감면은 물론이거니와 재정투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과 대부분 나라들은 대대적인 금융구제와 함께 G20이라 불리는 글로벌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하여 전 세계적으로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쏟아 부었다. 혹자의 표현대로 “글로벌 케인스주의적 뉴딜”이라 칭할 만 했다.

누군가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비꼬았듯이, 그들이 신봉하던 신자유주의시대의 모든 철칙들은 한순간 휴지조각이 되었으며 ‘소셜캐피탈리즘(사회적 자본주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이에 힘입어 경제공황과 극심한 금융 불안은 진정되었다.

그런데 이 ‘끝판왕’은 모두를 구원하지 않는다. 가령 유럽 채무위기의 해법은 언제나 금융시장의 근간인 중심국들의 국채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것이었다. 대신 이를 위해서 나머지 99%가 임금삭감, 실업, 긴축으로 희생당했다. 그리고 위기를 주변부로 이전시켰다. 그리스 채무탕감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 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유럽 변방의 키프로스 은행들을 파산하게 만든 것이다. 유럽만이 아니다. 경기부양에 적극적인 미국에서도 중앙정부는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일반시민들과 밀접한 지방정부는 긴축재정으로 수년째 허리를 졸라매고 있다. 그리고 끼니를 거르는 아동빈곤율이 20%에 이르는 상황이다. 반면 위기의 주범이었던 ‘월가’에서는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며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렇게 위기는 국제적으로든 국내적으로든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흐르고 있다. 이것이 ‘끝판왕’의 해결방식이다. ‘1%의 안정을 위한 99%의 희생’.

증대되는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소유의 모순, 그리고 위기심화

그런데 이런 ‘끝판왕’ 국가는 잠자고 있다가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위기를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항상 증대되어 왔다. 그리고 이제는 한 나라만으론 위기를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그 협력의 수준은 국제적으로 확장되었다. 왜냐하면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자본은 세계 곳곳으로 자신의 세포망을 넓혔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제적 수준의 노동 분업구조 속에서 글로벌 자본들은 생산을 국제적으로 더욱 사회화시킬 수 있는 통제전략을 짰다. 가령 아시아를 제조공장으로 삼아 세계적인 상품 유통망이 만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아이폰처럼 세계 여러 지역에 만든 부품들을 모아 최적의 생산비용을 산출해내는 방식은 특별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국제적 수준의 회계와 통제 그리고 노동신축화가 불러온 결과이다. 그리고 여기엔 항상 국가적 수준의 제도와 협약, 경제규율이 존재했다.

자본에 의한 회계와 통제는 생산, 유통, 소비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을 통해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한 자본의 공멸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 일종의 反공황 대책이다. 신자유주의가 확립했던 각종 구조조정의 핵심은 무제한적 경쟁과 도태에 있지 않다. 공황적 상황으로 진전되는 걸 막고 시스템의 공멸을 사전에 흡수하는 것이 목적이다. 만약 그 충격을 흡수하기 힘들다고 판단하면 구제조치를 통해 지체 없이 ‘손실의 사회화’를 과감하게 단행한다. 대마불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국가재정은 물론이거니와 중앙은행까지도 과감한 조치에 뛰어든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허울’은 충격을 흡수할 만한 만만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소리였다.

이처럼 국제적 수준으로 생산의 사회화를 진척시키는 자본과 생산의 무정부성이 불러오는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국가는 서로 공명하고 있다. G2(미국과 중국)를 필두로 하는 G20 글로벌 공조체제가 바로 그 증거이다. 이들은 목표를 공유하고 갈등을 조절하며 위기를 관리한다. 재정규율, 통화량, 금리, 환율, 자본통제를 위한 과세 등등... 이처럼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과 개입을 자동적으로 동반시킨다.

그러나 생산의 사회화가 진척될수록 위기관리 역할을 해야 할 국가는 더욱 위기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자본에 의한 사적소유가 더욱 심화되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위기극복을 위한 국가의 개입으로 99%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더욱 줄어들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공동체의 주권을 대표하는 국가는 위기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좌우파를 막론하고 현 집권세력이 위기에 빠지는 일이 늘 반복되는 것이다. 모든 경제지표들이 안정화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위기를 입에서 떼지 않고 있지 않은가? “위기, 위기, 위기...” 이러한 반복되는 정치적 사회적 위기는 일국적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양적완화로 인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은 신흥국들과 기축통화로 뭉친 선진국들 간의 환율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더 이상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수익률 놀음’에만 빠져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은 사회화된 여러 생산요소들을 개개별로 수익률을 따져 순위를 매기는 일이 눈속임에 불과했음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러나 일국적 수준의 ‘신성장동력’ 찾기는 매번 구호만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내용은 매한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창조경제론’은 그 최신 버전에 불과하다. 이러한 곤란함의 원인은 사적소유가 심화되면서 글로벌화 된 자본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G20 회의에서는 자본에 대한 통제가 매번 회자되지만 그 내용은 태생적인 금융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허나 그것마저도 지지부진한 논의를 반복하는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위기관리의 곤란함은 모순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위기가 쉽게 해소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예전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통화양적완화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위기탈출을 위한 예외적 조치가 아니라 위기관리를 위한 일상적 조치가 된 셈이다. 심지어 출구전략이 모색된다는 뉴스소식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형국이다. TV뉴스에선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 조치를 거두기만 하면 곧장 세계경제가 추락할 것이라 호들갑이다. 그러면서도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몰고 오는 금융시장의 거품과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걱정한다. 한편에선 정부가 재정안정을 위한 구조개혁을 지체하면 나중에 더 큰 화를 입을 것이라 겁박을 준다. 그러면서도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선제적 대응을 주문한다. 마치 분열증에 걸린 환자마냥 맥락이 뒤섞인 주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미래를 계산 가능하도록 해주었던 계산기는 이미 고장났다는 점이다.

대안을 찾기 위한 몸부림

고장난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모색의 흐름들이 여기저기 감지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제위기를 관리하는 주체들이나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려는 대안주체들이나 모두 국가의 역할과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몇몇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수정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경제 질서 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4.0’, ‘근혜노믹스’, ‘창조경제론’으로 상징되는 자본의 새로운 전락이 대선을 거치면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여기에 대항하는 정치세력들은 ‘경제민주화’와 ‘균형성장론’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에 따른 표현과 강조점에 따른 차이를 제외하고, 커다란 틀에서 볼 때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진정성’의 문제만 부각되면서 “내가 하면 잘할 수 있다”라는 의지적인 선동만이 논쟁의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을 정점으로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창조경제론은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혁신적인 창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정책이다" - 박근혜 대통령

“협력, 연대, 상생하는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협력적 성장이고 그것이 곧 사회적 경제이다. 그 근간인 협동조합 육성을 위해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즉각 설치할 것이다” - 문재인 대선후보 유세

“'혁신경제'의 기본적인 흐름은 중견·중소기업 성장 -> 역동적인 혁신경제 -> 영세 사업자, 소상공인, 사회적 경제 살리기 -> 포용하는 혁신경제 -> 녹색혁신 -> 지속가능한 혁신경제이다” - 안철수 대선캠프 비전 선포식


그리고 현재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지금, ‘창조경제론’의 실체를 두고 그것이 뭔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제2의 싸이’와 같은 한류문화상품들을 인터넷 정보통신 기술과 접목시킨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스라엘처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창업을 독려해 몇 개의 대기업이 아닌 수십만 개의 중소혁신기업이 득실거리는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쪽에서는 이런 ‘창조경제론’을 두고 MB정부의 자영업 양산 정책을 반복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경제 생태계의 변화를 위해서는 경제 기본 단위로서 ‘협동조합’이 뿌리내려야 하고, 이를 통한 사회적 경제의 구축이 바로 대안 경제라 강조한다.

또 다른 이들은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소득의 불평등이 모든 경제위기의 원인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복지를 통해 가계지출을 줄여 새로운 수요창출의 여력을 만들어야만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스웨덴 모델’과 같이 사회민주주의적인 노동전략을 지금에 맞게 새롭게 수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위기는 단순한 정책실패가 아닌 체제의 위기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체제의 구조적 단절과 근본적인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그 단절과 질적 변화의 계기는 현재 어디서 찾을 수 있고 또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 구체적 비전으로 확장되고 있지는 못하다.

“부자들의 사회주의와 가난한 자들의 자본주의”를 넘어서

상품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짐 로저스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확산되자 미국 정부당국이 모기지 업체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보고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국가 개입을 통한 손실의 사회화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이제 필수적인 상황이 되었지만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또 한편에서는 앞서 본대로 서구 유럽식 복지국가 자본주의야말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빈곤에서 탈출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본주의” 실현이라는 주장까지 넘쳐나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자 하는 백가쟁명식의 논쟁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새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가 정책추진의 탄력을 조기에 잃는다면, 더욱 이런 논쟁은 격화될 것이라 보인다. 이런 국면에서 참세상은 <주례토론회>를 통해 각각의 쟁점들을 분석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논쟁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부자들의 사회주의와 가난한 자들의 자본주의”를 넘어서 그 논쟁의 장에 많은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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