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 부당한 회사에 굴복하면 인생 살 의미없어”

[인터뷰] 24년 일한 공장에서 부당해고 당한 발레오만도지회 정연규씨

쿵 쿵 쿵 쿵

밤이 되니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물과 전기가 끊긴 어두운 공장이라 소리에 더 예민하다. 여름밤의 더위와 날아드는 모기들에 잠을 이루지 못하니,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쿵 쿵 쿵 쿵-발레오만도지회 농성장에서 울리는 소리는 육중하게 울리는 소리는 어딘가 기묘했다. 잠자기를 단념하고 나니 문득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궁금했다. 어디서 나는 소린지 짐작해 볼 요량으로 이리저리 벽에 귀를 옮겨 대 봤다.

“그 소리 시끄럽죠? 사무실 바로 뒤 승용공장 천 톤(1000t) 프레스 소리입니다”라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회색 군모를 깊게 눌러 쓴 한 해고자가 있었다. 발레오전장 해고자 정연규씨였다. 그 역시 어두운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 듯했다. “그게 제네레이터에 들어가는 로타폴(제네레이터 부속품)을 찍어 내는 소리입니다. 처음 들으면 꽤 시끄러워요”

휴대용 발전기로 돌아가는 어두운 백열등 아래, 잠을 놓친 김에 정연규씨와 소주 한 잔 기울이게 됐다. “해고 뒤로 소주 한 잔 안 하면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요”라는 그는, 1987년도부터 2010년 해고될 때까지 24년 동안 천 톤짜리 프레스로 로타폴을 찍어 냈다고 한다. 그는 24년을 2교대제(주야 맞교대)로 한 공장에서 일했다.

  이기면 소 몇 마리 잡아서 ‘큰 잔치’를 열고 싶다는 정연규씨

“공장에서 멀어지니 세상이 너무 조용했어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씩 멀리서 천 톤 소리를 들을 때면 그래도 누군가는 일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러다가 내가 일하던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거기서 프레스를 돌리고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도 들어요”

말을 맺는 입매가 소주처럼 쓰다. 수십 년의 노동에 몸이 익은 정연규씨, 또 소음성 난청으로 잘 듣지 못하고 평소 말소리도 커진 다른 해고자들. 그들에게 해고는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문제를 넘어섰다.

24년 일 한 회사에서 해고
‘부당 해고’, ‘자유로운 노조사무실 이용과 노조사무실 원상복구’ 판결 났지만...


“회사가 2월 금속노조 조합원 600명에 대해 직장폐쇄를 했는데, 라인이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갔어요. 핵심적 현장 반장들은 이미 포섭됐고, 대체인력도 써서 생산을 계속한 거예요. 며칠 뒤부터는 노조색이 덜한 조합원 위주로 한 사람씩 선별해서 복귀시켰습니다. 마지막 58명은 대기발령 됐죠. 남은 사람들은 금속노조 전·현직 간부들이거나 복귀하라는데도 안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회사는 손해배상을 24억 고시해놓고 58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사표 쓰니까 해고하기에는 회사 이미지 상 부담스러웠죠. 사표 쓰면 손해배상금을 물리겠다며 무급휴직을 강요했어요”


회사는 2010년 7월 징계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참석하지 않은 15명을 해고했다. 이후 2011년 9월 정직됐던 조합원들 13명도 결국 해고됐다. 3개월 뒤 또 한 명을 해고해 해고자는 총 29명. 이후 징계위원회 구성인원에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징계위원이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에서 조직전환 해 설립한 발레오전장노조(기업별 노조)였는데, 서울고등법원은 노조 전환 과정상 문제로 발레오전장노조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해고를 결정한 징계위원회의 징계도 무효로 판정된 것. 하지만 회사는 해고자를 복직시키지 않았을뿐더러 ‘자유로운 노조사무실 출입 보장, 노조사무실 원상복구’하라는 대구지법 경주지원의 판결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해고 무효판결이 난 마당에 원직복직이 아니라 자유로운 노조사무실 출입을 요구하고 있으니, 우리라고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번 판결 없었으면 회사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경찰들이 바로 연행했을 텐데 지금은 법원 판결이 있기 때문에 손을 못 댈 뿐이에요. 법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건데, 이걸 지키라고 요구하고 투쟁하고 있으니... 얼마나 당해왔다는 말이겠습니까. 남들이 보면 욕할 겁니다. 아주 당연한 거라고. 우리도 욕심이야 당연히 복직을 요구하고 싶지만 그러면 최종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무단점거나 업무방해라며 연행할 겁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회사가 발레오 프랑스 본사에서도 욕먹어가며 금속노조 간부 위주로 해고 한 핵심은 노동조합입니다. 금속 깨고 어용 만들어 놨는데 지금 와서 판결대로 다시 금속을 인정할 수 없는 노릇이죠. 누가 봐도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걸 이행하지 않는데다가, 여타 탄압들도 심해서 속이 터집니다. 미칠 지경입니다. 식수, 전기 차단. 조합원에 농약살포. 이게 어디 인간으로서 할 짓입니까?”



  지난 9-10일 노조 사무실 출입을 막는 경찰과 사측 직원

현재 발레오만도지회 노조사무실은 해고자들과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확대간부들까지 모두 80여명이 농성 중이다. 처음 사무실로 진입했을 때 회사가 격한 제지와 단전, 단수를 감행하는 등 투쟁의 전망은 불분명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의 향방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

“공장에 다시 들어와 보니 감회가 많이 새롭습니다. 옛날 동료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 못했어요. 막상 들어와 여기서 버티고 하니 어떻게 든 몇 년간 못 보던 사람들 보게 됩니다. 마주쳐도 눈길은 제대로 안 주지만... 관리자가 옆에 있어도 눈길을 못 줘 나중에 전화가 와요. ‘이해해주자. 판결도 났는데 조만간 같이 할 날 안 있겠나’라며. 그러면 힘을 얻습니다. 처음에 관리자들, 사무직 직원들, 복수노조로 설립된 어용노조가 격하게 방해했는데, 이제는 하는 둥 마는 둥 마지못해서 저희를 제지하는 척합니다. 회사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노조사무실 출입하고 노조활동 시작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게 되면 “인생 자체를 잘못 살게 되는 것”
퇴직 이후가 되더라도 반드시 이길 것


여전히 대법원의 기약 없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가 걸리더라도 해고자들이 투쟁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직장이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투쟁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눈을 흐린다. 하지만 목소리는 뚜렷하다.

  승용공장 시설을 소개해주는 정연규씨. 시설에 대한 애착이 묻어 난다

“지금은 노조에서 임원을 맡지 않고 있습니다. 이전 10년 임원 생활했는데, 나름대로 노조관을 가지고 활동했고, 그게 직장생활 속에서 가장 보람되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회사에 굴복하면 살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 자체를 잘못 산 게 되는 겁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10년이 걸려도 퇴직 이후가 되더라도, 잘못은 것 정리해야 합니다”

“노조 역사가 23년이었어요. 그 과정에 수많은 간부가 있었는데 다 회사에 굴복하고 남은 게 29명입니다. 저도 같이 노조활동을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서글픈 현실입니까. 우리 노동계가 정부나 노동탄압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본에 굴복하는 데에 있습니다. 간부들이 어려운 시기가 되면 돌파할 생각 안 하고 굴복하는데 일반 조합원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잘나갈 때 투사니 열사니 하지만 대부분 조합 간부들이 그걸 극복 못 하고 굴복하는 현실입니다. 금속이든 민주노총이든, 간부들이 그 모양인데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까. 우리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이기면 소 몇 마리 잡아서 ‘큰 잔치’를 열고 싶다는 정연규씨. “만약에 대법원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회사는 또 징계할 거”라며, 설령 해고되더라도 그는 노조 조합원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기사제휴=뉴스민)

쿵 쿵 쿵 쿵- 울리는 소리에 흐려진 목소리도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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