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세계’와 ‘생활세계’의 간극, ‘도구적 집단주의’에 빠진 노동자

[주례토론회] IMF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노조운동과 노동계급의 변화

[편집자주-토론문] 흔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동운동의 퇴조를 IMF사태 이후 노동부문의 각종 구조개혁 프로그램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당시 파견법과 정리해고를 수용한 실책이 비정규직의 폭증, 고용불안정과 임금불평등의 심화를 일으킨 원인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에 대한 공격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과오만을 원인으로 삼는다면, 흔들리지 않는 비타협적 지도부 건설과 투쟁의 외연을 넓히는 연대만으로 해결책이 협소해지기 때문이다. 모두 노동계급 자체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대리물과 보충물에 의존하는 도구적 시각이다. 한쪽은 지도부와 활동가들의 선도적인 투쟁과 헌신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은 공장 밖 연대투쟁과 지지엄호를 강조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바로 투쟁의 주체인 노동자 계급 자신이다. 단결투쟁과 연대투쟁은 노래 말 가사와 기자회견문에만 존재하고, 노동자 스스로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는 모두 하나다’라는 구호는 매우 선명하면서도 동시에 무기력하다. 이 구호는 노동자 각자에게 존재하는 차이들을 뒤로 하고,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전체이익을 쟁취하자는 상당히 보편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하나라고 한다면 이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계급이 무엇이고 계급의식은 과연 어떻게 형성되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만약 계급이 객관적 경제적 구조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라면, 계급의식은 그 구조를 학습하고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이미 그 계급의 담지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계급형성이라는 것은 다층적인 층위에서 발생한다. 우발적인 상황, 예를 들어 파업투쟁의 심대한 패배는 파업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후퇴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계급형성이 경제적 구조와 지위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의 과정 속에서 여러 층위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관점을 택하고자 한다.(계급형성의 다층성과 우발성, 발제문 참조)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이들의 생활세계, 작업장, 조직구조, 운동이념 등등으로 분석의 바탕을 넓혀야 한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한때 한국노동운동을 대표하고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로 활발히 성장했던 울산지역 대기업 노동자 운동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계급형성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왜 이들 대공장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은 약해졌나? 그리고 연대약화의 구조적 조건은 무엇인가? ‘연대의 사회적 기반’은 현재 존재하는가? 또한 과거에도 존재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한다.

IMF 이전 울산 지역노동운동의 전개와 특성

87년 이후 울산지역엔 지역노동운동이 부재했다. 이건 마산이나 창원과는 다른 측면인데, 전노협에 가입한 노조가 울산지역에서는 없었다. 대신 현총련(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이 90년에 만들어져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역연대조직이 아닌 현대그룹기업이라는 일차적 경계설정은 이후 기업별 노조운동으로 고착화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96년에 민주노총 울산시협의회가 출범했지만 소규모 기업들로서 제한된 영역만을 포괄할 뿐, 여전히 울산 지역의 노동운동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라는 양축과 그 하청계열사로 짜여진 운동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연대양상은 산업 및 노동시장의 분절구조 내에서의 연대였고, 이에 조응하는 형태로 지역노동운동의 패턴이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중심세력인 대기업 노조의 전략적 선택이 매우 중요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적인 운동 과제로 제기하는가, 아니면 보다 넓은 장기적 시야 속에서 계급연대의 구현을 위한 일부로 놓는가에 따라 노조운동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정책과 계급상황의 분절화

노조의 임금정책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할 이론적 배경은 노조의 임금정책에 관한 ‘트릴레마’다. 이것은 임금극대화, 임금평준화, 완전고용(고용창출) 세 개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나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기업이 고임금의 평준화된 임금을 전국적 수준의 완전고용까지 책임지면서 지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임금비용 상승에 대응해서 신규고용을 조정하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부 사업장을 외주화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만약 세 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면 국가가 관리하는 완전고용정책과 노동자 자주관리가 결합되어야 하고 도태되는 산업을 재빠르게 구조조정하여 고수익 부문으로 자원이 결집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셋 중에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지난 <주례토론회 3회>에서 살펴본 스웨덴의 ‘연대임금전략’은 임금극대화를 포기하고 대신 고용안정을 국가 관리에 의해 보장받는 것이었다.


87년 이후 한국 노동조합의 정책은 ‘임금극대화+임금평준화’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책이 전국단위 노총이나 산업별 노조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파편적이고 분권화된 임금교섭 구조와 결합하였다는 점이다. 급격하게 성장한 노조는 ‘생계비 임금론’에 입각하여 공세적인 임금인상투쟁을 벌였으며, 기업내부에서 직군간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직능급 대신 연공급을 고수했다. 여기서 임금평준화는 기업별 임금교섭 구조 때문에 기업 내부에만 국한된 부분적 임금평준화였다. 이는 노조간 임금조율의 부재와 임금경쟁을 유발했는데, 가령 울산지역에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간의 임금경쟁이 그러했다.

이러한 기업별로 파편화된 ‘임금극대화+임금평준화’ 전략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수출중심에 편향된 산업육성책을 펴온 한국에서 대기업들은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노동비용 상승을 외부(중소하청업체)로 전가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대기업 노조에서는 이 전략이 지속되었지만 중소기업 노조들(전노협)은 90년대 초중반부터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에서는 지불능력에 한계가 발생했기 때문에 임금극대화전략이 중소기업 노조들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지 못한 것이다. 이 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어 기업의 투자 감소-> 고용문제 발생-> 산업구조조정-> 노조 조직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임금극대화 정책은 오로지 대기업 노조에서만 가능한 전략으로 축소, 왜곡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노조의 정책 변화: 고용안정과 성과배분 중심으로

그런데 해마다 지속적인 임금인상이 이뤄지자 ‘생계비이론’에 근거한 기본급 인상의 효용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노조의 임금극대화 전략도 점차 수정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 사태를 거치면서 2000년대 ‘성과배분’ 중심의 임금극대화 전략이 전면화 되었다. 이것은 기업의 경영실적과 지불능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90년대 자본이 주장했던 임금인상 기준을 노조가 암묵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01년부터 성과배분이 제도화 되어 임금교섭에서 기본급 인상보다 성과배분액이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사측은 연간 생산목표 달성을 위한 금전적 유인책의 일환(장시간 근로에 대한 포괄적 보상의 한 수단)으로 접근했다. 성과배분 중심의 임금극대화 정책은 ①변동임금 비중의 상승으로 인한 노동자 임금안정성의 약화 ②노조의 조직력 약화와 담합적 노사관계의 강화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것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노동자와 그 외 집단(중소기업, 비정규직, 공공부문)의 저항빈도와 규모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된다. 대기업노조는 파업빈도는 높아졌으나 파업지속일수는 극히 낮아졌다.(발제문 그림7) 이것은 파업이 임금교섭 테이블에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매우 계산된 압력 행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면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한 주변부 노동자들은 아직 노사관계가 제도화되지 못한 상태여서 임금인상 및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집합행동이 대거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 형태도 87년 직후 대기업 노조의 그것과 유사하게 매우 급진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부적 임금평준화 정책의 딜레마이다. IMF 사태 이후 심화된 고용불안정은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내하청에 대해 ‘고용 완충장치’라는 인식을 심어줬는데, 이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기존의 임금평준화 정책과 상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잠정적 해결책으로 정규직 노조의 문호를 잠그고 대리 교섭을 취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되었다. 이것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의 효과를 가져왔으나 자신들의 노조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자주성, 민주성)을 훼손시켰다.

이러한 딜레마는 앞서 살펴본 노조 정책의 ‘트릴레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세 개중에 고용창출(고용안정)을 포기한 결과이다. 이 결과로 외주, 하청은 물론 간접고용, 기간제 등 ‘노동 유연화’가 확산되었다. 산업확장기에는 자본가들이 투자와 함께 고용자체를 늘리려고 애쓰지만 산업정체기에 들어서면 신규고용 축소와 인력조정으로 대응하게 된다. 여기에 기업별 노조체제 하에서는 ‘임금극대화’ 전략은 애초부터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계급 내부의 임금격차 확대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IMF 사태 이후 연대의식이 약화되어 온 노조운동의 역사적 과정은 이미 87년 민주노조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기업별 임금정책의 치명적 약점에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대기업 노동자의 생활세계의 변형 : 소득의 중산층화와 장시간 노동에 찌든 작업장 문화

임금정책과 함께 중요하게 살펴볼 지점은 노동자 생활세계의 증산층화이다. 단체교섭 노조의 요구사항 중에서 임금인상 말고도 내 집 마련이 중요한 요구사항이었다. 88년 현대차노조는 노조 집행부에 주거복지부를 만들어 사측과 단체교섭을 해 사원분양아파트를 얻어냈다.(현대차 노동자들의 자가보유율 20%-> 95년 80%, 현대중공업 노동자 92년 기혼자 자가 보유율 80%) 그러나 이런 기업복지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만 집중된 것으로서 87년 이후 노동계급 형성의 ‘성공적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내부노동시장-기업별교섭-기업복지’가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었고, ‘외부자’와의 이질화가 심화되면서 계급연대의 사회적 기반은 침식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내 집 마련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꿈꾸던 것으로서, 노동자 생활수준 중산층화를 의미한다. 노동자들의 설문조사결과에서 보듯, 자기 집 마련이 생애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혀 있다. 일단 자기 집에 마련되면 내구재가 모두 바뀌면서 소비 패턴의 중산층화가 시작된다. 울산 금속연맹의 생활실태 조사를 보면 2000년 이후 자가보유, 자동차 보유, 주식투자, 재산세 납부액 등등의 생활상에서 뚜렷한 변화와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런데 소득의 중산층화와는 상관없이 작업장 문화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이 지배하는 ‘테일러주의’에 기반해 있다. 흔히 생각하는 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절 교외의 한적한 곳에서 오붓한 핵가족을 이루는 서구 노동자들의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작업장에서의 ‘노고’가 ‘고임금’과 교환되지만 그것이 생활세계에서 자신의 ‘안락’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장시간 노동은 여가시간의 절대적 부족으로 이어지고, 심야노동의 일상화는 사회적으로 주변화 되고 가족관계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을 낳는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가족 간의 친밀함이 부족하다. 직장동료 노동자들끼리 어울리고 가족으로 부터 소외되어 있다. 돈은 많이 버나 생활은 언제나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짜증나는 공장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경제적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유지하고, 삶의 자부심을 느끼는 최종 근거가 된다. (“지겨운 노동, 자식들만은 잘 살았으면”)

여기에 한국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육체노동자’로서의 신분적 정체성은 ‘하층신분’이라는 부정적 자아정체감을 일으킨다. 이것은 저항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로부터 탈출하고픈 신분상승의 욕망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신분의식의 두 가지 성향은 전투적 집합행동이 중산층적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게 하는 ‘도구적 집단주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격렬하게 투쟁을 하지만 목적은 개별적 소득과 경제적 지위 상승에만 있는 ‘경제적 실리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작업장내에서의 계급의식’과 ‘작업장 바깥에서의 증산층 지향성’이라는 ‘노동계급 의식의 이중성’이 바로 그 원인인 것이다. 이것은 지도부의 배반이나 노동자들의 계급적 의식의 타락, 이런 것만으로 치환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생활양식으로부터 드러나는 독특한 문화적 조건이다. (‘공장의 세계’와 ‘생활세계’ 사이의 간극)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조건은 근래 십 여년 동안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60-70년대 한국경제의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누구에게나 있었던 계급의식의 이중성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할 점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급격하게 분출했던 작업장에서의 계급의식이 왜 보편적인 노동계급 의식과 연대적 행위로 확대되지 못한 채, 90년대를 지나면서 사회적 ‘폐쇄’ 전략에 경도된 ‘도구적 집단주의’에 머무르게 되었는가이다.

여기에 현대중공업 현장활동가의 몇 가지 인터뷰 내용이 참고할 만하다. 87년 이후 대기업 노조운동이 급격히 상승하던 시기, 수 만 명이 일하는 대규모 작업장에서 노조소식지가 매우 중요한 소통의 창구였는데 여기에 향우회, 동문회 모임 등을 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네크워크들이 조직 동원의 미시세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거기에 가서 노조원들을 집회에 동원하였고, 노동자들의 여러 모임(학습, 풍물패, 동아리)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회사 관리자들이 개입하면서 노동자들의 네크워크들은 이들에 포섭 관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현장조직들이 기층 노동자들의 생활세계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작업장 세계’와 ‘생활세계’의 매개물을 자본이 정책적으로 적극 개입하면서 역으로 노동자와 노조를 관리했던 것이다.

이런 자본의 노동자 관리 측면에서 볼 때, 정몽구 회장이 노동자들의 공동체문화를 제거를 위해 90년에 주택재개발 사업을 이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장 바로 밖에 있는 기존의 사원아파트가 저항의 공간으로 (89-90년, 128일 파업투쟁) 활용되는 것을 본 회사는 이후 의식적인 노동자들의 학습 공간이었던 독신자 숙소 폐쇄했고, 신규고층아파트를 멀리 떨어뜨려 지어 거주지에서 존재했던 저항의 문화의 싹을 잘랐다. 백화점, 고층 아파트, 레저 스포츠센터 등이 울산 동구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고 마이카 붐에 차를 타고 통근하는 도시중산층의 생활환경이 만들어 졌다.

이렇게 ‘작업장 세계’와 ‘생활세계’의 이질화는 타의에 의해 강요된 육체노동에 대한 부정적 정체성 뿐 만 아니라, 자본이 저항문화의 싹을 자르기 위한 노동자들의 인적네트워크에 대한 관리와 침식, 거주지 변형 전략으로도 이뤄진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계급의식이 노동자의 삶의 보편적인 정치의식으로 확대되는 걸 막고 이를 소극적 의식으로 유폐시킨 것이다. 이렇게 정치의 공간이 빼앗기고 왜곡된 상황에서는 노동정치, 계급정치라는 말이 노조활동가들의 담론으로만 머무를 뿐, 노동자 집단 전체로 뿌리내리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생활세계’(재생산의 정치)와 결합되지 못한 공장의 정치(생산의 정치)는 자본의 공격에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조직노동은 계급상황의 이질화와 조직/교섭의 분산화라는 이중적 조건하에서 계급의 해체적 변형 단계로 진입했다. 더욱이 기업별 노조체제라는 제도적 유산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이것은 서구와 달리 전국적 수준의 조직의 집중화와 내부 조율의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전세계적 수준에서 펼쳐진 계급 파편화의 원심력에 노출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분산성과 이질성의 악순환’에 처한 형국이 되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뒤늦게 산별 전환을 통한 조직의 집중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계급상황의 이질성이 매우 커진 조건에서 매우 힘겨운 난관에 봉착해 있다. 가령 산별로 전환한 금속노조가 그동안 전조직을 아우르는 중앙교섭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1) 먼저 계급연대 및 초기업적 단체교섭의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는 시도가 절실하다. 일단 시장 위치에 따른 노동자들 내부의 이해관계의 분열/갈등/대립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분절 속의 연대’를 통해 분절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데, 기업별로 파편화된 교섭체계로부터 벗어나는 실험들이 필요하다.(패턴교섭, 지역별 교섭, 업종별 교섭)

스웨덴은 과거 연대임금 도입 당시 LO(생산직 노총) 내에서 고임금 사업장의 건설노조가 이탈하려고 했다. 이를 LO가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이것을 제어했다. 왜냐하면 임금극대화가 지속 되었을 때 자본가들이 노동비용을 고용규모 축소로 대응하면서 실업의 급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임금극대화를 포기하고 임금평준화 고용안정으로 이동했던 이유이다. 물론 이것이 하향평준화 되었기 때문에 고수익 부문의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불만을 제기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고용안정을 위해 양보교섭이 일상화되면서 기존의 임금극대화 전략마저도 성과급제로 전락했고, 본질적 의미의 임금극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효용가치가 떨어진 임금극대화 전략을 수정하고 대안적 임금연대 전략을 수립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임금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임금교섭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법에 의해서 동일산업 확대적용 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처럼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의 고리가 되는 제도적 장치들을 요구하는 대정부 투쟁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최저임금제도’가 열악한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는 불안정노동자들로 하여금 연대임금투쟁을 추동했던 매개물이었다. 모두 이 제도로부터 이해관계를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임금격차의 원인으로 비정규직의 문제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에 의한 원인이 더 큰 이유라는 연구결과에서도 보듯, 이제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서 전체노동자들 평균임금 전략을 짤 수 없다. 기업별 노조체제인 일본에서 조차도 ‘춘투’의 본래 목적은 철강, 자동차 부문에서 기업간 임금조율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춘투와 같은 그런 형태마저도 해본 경험이 없다. 임금극대화 전략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모두 양보했고, 임금극대화 전략이 먹힐 수 있는 대기업 사업장을 제외하곤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재 노동분배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동시에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도 심화하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확대된 산업의 독과점 심화와 구조조정이 기업간 격차를 임금격차로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 다음으로 노동자 연대의 사회적 기반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장에서는 집단주의를 견지하지만, 공장 바깥에서는 개별적 소비자로 전락하는 의식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노조운동의 활동 경계를 확장하고 조합원을 ‘노동자-시민’으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기획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전투적 노동자’와 ‘온건한 시민’ 사이의 대립을 해결한다는 식으로 오도되어선 곤란하다. 사회적으로 비춰지는 노조의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의 공장울타리에 의해 유폐된 계급의식을 삶의 보편적 의식으로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공장에서도 만나고 식당에서도 만나고 정치연설장에서도 만나고 노동자의 정체성을 삶의 여러 곳에서 확인받는 공간, 장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파업과 작업장 이외에는 없다. 가령 노동조합의 대외협력실을 찾기 힘든 공장안에만 두지 말고, 공장 밖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이나 대형마트 안에 두는 것도 작게나마 시도할 만한 방법이다. 조합원, 비조합원, 시민이 별개가 아니라 모두 같은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서로 인식하는 것이 새로운 주체 형성의 출발일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운동의 내부 구조 개혁과 리더십 혁신이 필요하다. 매번 회자되는 이야기이지만 총연맹이 무엇을 하는 조직이여야 하는지, 산별노조는 무엇을 하는 조직이여야 하는지, 단위노조는 무엇을 하는 조직이어야 하는지 서로 역할과 위치를 큰 그림 하에서 배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잦은 위원장 선거와 정파적 이해관계는 중장기적 혁신의 과제를 지체시키고 현상유지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덧붙여 이러한 조직운동의 보수화와 지리멸렬한 상황에 대한 반편향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노동운동의 의미를 몰두하는 분위기는 잘못된 판단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계급정치를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조직률은 10% 수준이다. 기존 조직노동의 ‘타락’을 얘기하기에는 시기상조이며, 오히려 ‘고립’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조직노동이 전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운동적 고리를 발견하고 그에 기반하여 헤게모니적 계급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더 유의미한 방안일 것이다. [토론문 끝]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노조운동과 노동계급의 변화*


1. 서론

1) 문제제기


ㅇ 한국의 조직노동은 지금 어떠한 상태에 처해있는가?
ㅇ 조직노동의 중심세력인 수출부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은 왜 그리고 어떻게 약화되었는가?
ㅇ 과연 오늘날 ‘노동자 연대의 사회적 기반’은 존재하는가?

- 한국의 최대 산업도시 울산의 중공업부문 대기업, 특히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산업노동자 집단을 연구대상으로 선정
- 노동계급의 연대 약화의 이유와 그 과정을 ‘계급형성론’의 시각에서 규명하려 함

2) 주요 주장의 요약

ㅇ 한국의 대기업 노동자들은 매우 빠르게 계급의 형성으로부터 계급의 해체적 변형 과정으로 진입하였다.
ㅇ 계급의 변형은 1987년 이후 대기업 노조운동의 성공이 낳은 역설적 결과이다. 그 성공의 역설은 외환위기를 전후로 하여 계급형성에 이바지한 기제가 계급의 해체적 변형의 기제로 ‘전환’된 결과이다.
ㅇ 계급의 해체적 변형 단계에서 한국의 대기업 노동자들의 주요한 행위양식은 ‘도구적 집단주의’(instrumental collectivism)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연대적 집단주의’(solidaristic collectivism)는 쇠퇴하였다.

3) 이론적 자원과 분석대상

ㅇ 라이트(E. O. Wright)의 구조주의적 계급론과 톰슨(E. P. Thompson)의 문화주의적 계급론의 한계: ‘이익’ 개념의 객관성과 규범성, ‘경험’ 개념의 분석적 능력의 결핍
ㅇ 계급형성의 다층성과 우발성을 강조 : 계급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의 맥락 속에서 계급을 구성하는 여러 층위들 간의 우발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이론적 관점(W. Kocka, I. Katznelson).


4) 자료

ㅇ 설문조사: 울산지역 민주노총 및 한국노총 소속 정규직 조합원 514명의 표본조사
ㅇ 울산지역 노동자 저항사건 데이터세트 : 1987-2010년 동안 울산지역 일간지(경상일보)에 게재된 노동자 저항사건 기사를 사전 설계된 코딩 도식에 따라 양화하여 ‘저항사건분석’을 수행함. 총 3,028개의 저항사건을 코딩하여 집합행동 패턴 분석에 활용
ㅇ 면접조사: 총 34명(26건). 2007년 1월부터 2011년 7월까지.
ㅇ 울산지역 노동운동가 구출채록 자료: 울산대 지역사연구팀이 수집한 자료 활용
ㅇ 1차문헌: 노동조합 및 회사 자료


2. IMF 이전 울산 지역노동운동의 전개와 특성

ㅇ 89-90년의 결정적 국면에서의 지역연대조직의 부재 상황,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자동차노조의 연대행동의 좌초, 지역 전반을 운동의 지평으로 삼는 노동운동 리더십의 취약성 등은 이후 소수의 대기업 노조 중심의 지역노동운동의 경로를 만들었음.

ㅇ 노동자대투쟁 이후 10년이 지난 96년에 민주노총 울산시협의회가 결성되었지만, 그러한 경로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음. 90년대 후반은 초창기 전투적 동원을 주도했던 현대중공업노조의 동원력 쇠퇴, 분산적인 기업별 단체교섭의 제도화,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노조와 현장조직 활동의 ‘기업 내부화’가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역진의 가능성은 크지 않았음.


ㅇ 1987년부터 약 10년간의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조직적 연대행동의 특징과 그것의 조직적 유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 1987-90년의 전투적 동원의 시기에는 울산지역 노동자의 행위 지향 중에서 ‘연대적 집단주의’의 잠재력이 상당히 컸던 시기라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연대적 집단주의’ 성향은 일시적으로 표출되었을 뿐. 그것은 노동에 대한 국가의 물리적 탄압을 계기로 단속적으로 형성되었고 계기가 소멸한 이후에는 조직적 연대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음.
- 울산지역 노동자 연대의 양상은 산업 및 노동시장의 분절구조 내에서의 연대였고, 그것을 뛰어넘는 연대행동이나 연대조직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거나 실패하였음. 지역노동시장의 분절구조가 그대로 노동운동의 분절로 이어진 것은 이후에도 울산 지역노동운동의 특징으로 남게 됨.
- 노동자 연대가 기업 단위, 넓어질 경우는 현총련의 그룹계열사 단위에 그쳤다는 것은 노동계급 형성의 관점에서 조직적 경계가 협소하다는 것을 의미함. 현총련은 동일한 자본에 속한다는 사실로부터 일차적인 경계설정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경계 내의 노동자들의 집단 정체성은 일차적으로 소속 기업의 종업원 신분에 의해 규정되었음.
- 마지막으로 울산에서 노동시장 분절구조에 조응하는 형태로 지역노동운동의 패턴이 형성된 것은 그 중심세력인 대기업 노조의 전략적 선택이 매우 중요해졌음을 의미함. 대기업 노조가 자신의 특수적 이해관계(particularistic interests)의 실현을 최우선적인 운동 과제로 제기하는가,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특수적 이해관계를 보다 폭넓은 장기적 시야 속에서 계급적 연대의 구현을 위한 일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노조운동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임.


3. 대기업 노조의 임금정책 변화

1)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 노조의 임금정책


ㅇ 노동조합 임금정책은 임금 극대화, 임금 평준화, 완전고용의 세 가지 목표로 구분가능함
- 87년 이후 한국 노동조합의 임금정책은 ‘임금극대화+임금평준화’의 조합에 해당함.
- ‘임금극대화+임금평준화’ 정책은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파편적이고 분권화된 임금교섭 구조와 결합하였음
ㅇ 임금 극대화 : 생계비 임금론에 입각한 공세적인 임금교섭
ㅇ 내부적 임금 평준화 : 기업내부노동시장 안에서 임금배분의 제도와 규칙을 ‘평등주의’를 준거로 설계하고 운영(직군간 임금격차 축소, 하후상박의 원칙, 직능급도입의 저지 및 연공급의 고수 등)
ㅇ 임금조율의 부재와 노조간 임금경쟁 : 현대차노조와 현중노조 간의 임금인상 경쟁

2)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노조 임금정책의 변화

ㅇ 성과배분 중심의 임금극대화
- 지속적인 고율의 임금인상으로 ‘생계비이론’에 근거한 기본급 인상의 효용이 줄어듦
- 2000년대 들어와 기본급 인상률은 노동소득분배기준(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함
- 대신 ‘성과배분’ 중심의 임금극대화가 전면화됨. 이것은 기업의 경영실적과 지불능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90년대 자본의 임금인상 기준을 노조가 암묵적으로 수용한 것임
- 현대차의 경우, 2001년부터 성과배분이 제도화됨. 이후 임금교섭에서 기본급 인상보다 성과배분액이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됨.
- 노조는 성과배분제를 단기적인 임금극대화를 위한 주요한 의제로 삼았고, 사측은 연간 생산목표 달성을 위한 금전적 유인책의 일환(장시간 근로에 대한 포괄적 보상의 한 수단)으로 접근함.


- 성과배분 중심의 임금극대화 정책은 ① 변동임금 비중의 상승으로 인한 노동자 임금안정성의 약화, ② 노조의 조직력 약화와 담합적 노사관계의 강화 등의 효과를 가져옴.

ㅇ 내부적 임금평준화의 딜레마

- 두 가지 도전: ① 기업간 임금연대의 규범적 압력(산별노조 전환), ② 기업내 임금평준화의 경계 확장 압력(사내하청의 차별 해소 요구)
- 노조의 선택은 사내하청에 대한 조직적 배제를 전제로 한 제한적 임금평준화 정책
- 2003년 사내하청의 독자 조직화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요구
-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사내하청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완충장치’ 인식 간의 긴장이 발생함
- 이에 대한 잠정적 해결책으로 정규직 노조 문호의 폐쇄와 대리 교섭 관행
- 이러한 해결책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의 효과를 가져왔으나 대기업 노조운동의 정당성 위기는 지속시킴

3) 대기업 노조 임금정책의 사회적 기능

ㅇ 애초 기업별 노조체제 하에서 ‘임금극대화와 (내부적) 임금평준화의 결합’이라는 임금정책은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 확대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것.

ㅇ 87년 이후 전체 노동자의 생활보장과 저임금 해소를 위해 임금인상을 선도함으로써 ‘임금수준의 상향 평준화’를 달성하는 사회적 기능은 더 이상 수행되지 않고 있음. 오히려 재벌 대기업 노조의 임금정책은 기업규모간 임금격차 확대를 방치함으로써 분절 노동시장 체제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고 있음.

ㅇ 다분히 수탈적인 산업 생태계 속에서 독점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내부자’ 사이에 공유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지대추구 행위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노동계급의 연대와 단결의 기반을 침식하는 일


4. 대기업 노동자의 생활세계의 변형

1) 노동자 생활세계의 중산층화


ㅇ 90년대 이후 대기업 노동자 생활세계의 변형: 소비생활의 고도화, 가족임금의 달성,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의 보편화


2) 공장생활과 생활세계의 분리

ㅇ 공장세계: 육체노동자로서의 현실이 지배
- 장시간 노동체제, 일상화된 심야노동, 승진기회의 제한, 테일러주의의 만연
- 생활세계의 중산층화와 뚜렷이 구분되는 작업장 문화

ㅇ 남성 노동자의 사회적 연결망 또한 공장 생활을 중심으로 짜여짐
- 가족보다는 동료 노동자와의 사회적 교류관계가 중심
-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서는 ‘중산층화’는 이루어지지 않음 : 직업별 유유상종 경향 강함
- 핵가족 중심의 개인화된(privatized) 생활양식과는 거리가 있음
- 50-60년대 서구의 ‘풍요로운 노동자’(affluent workers)와의 차이


3) 도구적 집단주의 성향의 지배 : 공장세계와 생활세계의 접합

ㅇ 노동계급 행위양식의 유형


- 외환위기 이전 ‘연대적 집단주의’가 간헐적으로 표출되기도 하였지만, 외환위기 이후 ‘도구적 집단주의’의 우세가 확실해 짐
- 도구적 집단주의는 87년 이후 대기업 노동자의 지배적 행위양식으로서, 서로 상이한 문화가 지배하는 공장세계와 생활세계가 특수하게 결합된 결과로 나타난 대기업노동자들의 집단정체성임.
- 대기업 노조의 경제적 실리주의는 이러한 도구적 집단주의 성향에 기반함.


5. 대기업 노조운동의 사회적 폐쇄와 집합행동의 변화

1)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폐쇄



2) 사외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폐쇄

ㅇ 기업규모 및 원하청 지위에 따른 계급상황의 이질성 심화
ㅇ 산별 전환 이후 조직형태 및 교섭구조의 분리 및 자율성 유지를 더 선호
- 기업별 교섭의 관행 유지, 임금연대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의 부재
-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정규직 양보론 제기, 사회공헌활동으로의 이미지 메이킹
ㅇ 수평적 연대보다 분파주의에 대한 강한 선호구조

3) 노동자 집합행동의 패턴 변화






ㅇ 종합
- 전체적으로 규모의 감소와 빈도의 증가 :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노동자의 저항빈도의 감소, 그 외 집단(중소기업, 비정규직, 공공부문)의 저항의 상대적 증가를 반영
- 저항행동의 온건화 추세 : 대기업 노동자 저항형태의 온건화는 확연하지만, 중소규모 노조의 저항은 급진적 형태를 자주 나타냄
- 새로운 집합행위자의 등장: 외환위기 이후 그 이전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던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한 주변부 노동자들의 집합행동이 대거 등장하였고, 그 형태도 87년 직후 대기업 노조의 그것과 유사하게 매우 급진적인 양상을 보임. 이것은 비정규직의 경우 노사관계의 제도화 이전 단계임을 보여줌.
- 현대차 파업패턴 변화: 울산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한 현대차노조의 파업 형태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하여 파업빈도의 증가, 지속일수의 감소의 특징을 보임. 이것은 파업이 임금교섭 테이블에서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매우 계산된 압력 행사가 되었음을 의미함.


6. 결론

1) 노동계급 형성 및 변형에 대한 이념형적 비교: 유럽과 한국



2) 한국 노동계급 형성과 변형의 특징

ㅇ 87년 이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 특히 수출부문 대기업 노조운동은 사업장 단위의 '임금인상의 정치'와 전투적 동원 전략을 통해 초보적인 계급형성을 이룸
- 외환위기 이전까지 분산적 조직 하에서도 '연대의 문화'와 '계급상황의 동질성'이라는 두 가지 여건을 바탕으로 '연대적 집단주의'가 일부 나타남

ㅇ 그러나, 90년대 후반 경제위기와 세계화의 압력은 90년대 이후 점진적으로 진행된 계급상황의 이질화와 결합하여 '연대적 집단주의'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기반을 허물어 버림
-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조직노동은 계급상황의 이질화와 조직/교섭의 분산화라는 이중적 제약 하에서 계급의 해체적 변형 단계로 진입함
- 더욱이 한국은 기업별 노조체제라는 제도적 유산이 장기간 지속되었음. 이것은 한국의 조직노동이 (유럽과는 달리) 조직의 집중화와 내부 조율의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전세계적 수준에서 펼쳐진 계급 파편화의 원심력에 노출되었음을 의미함

ㅇ 외환위기 이후에는 계급상황의 이질화가 노동자들의 집합행동에도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조직노동의 위기'가 본격화됨
- 유리한 시장지위와 강력한 교섭력을 유지한 대기업 노조운동은 '연대' 전략보다는 (사회적) '폐쇄' 전략을 추구.
- 이 과정에서 일반 노동자들의 지배적 행위성향인 '도구적 집단주의'가 득세하게 되었고, 연대적 행위 잠재성은 빠른 속도로 쇠퇴함

ㅇ 결국 21세기에 들어와 한국의 조직노동은 '분산성과 이질성의 악순환'에 처한 형국임. 이 악순환이 지속되면 계급 파편화(class fragmentation)로 귀결될 것임.
- 한국의 노조운동 리더십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산별 전환을 통한 조직의 집중화 시도를 벌이고 있는 중. 그러나 이 기획은 20세기 초의 서구와는 달리 계급상황의 이질성이 매우 커진 조건에서 뒤늦게 도모하는 것이기에 매우 지난한 과제임이 분명함.

3) 실천적 과제

ㅇ 계급연대 및 초기업적 단체교섭의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기
- 노동시장의 분절구조 하에서 계급연대는 매우 어려운 과제임
- 시장 위치에 따른 노동자들 내부의 이해관계의 분열/갈등/대립의 가능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음.
- ‘분절 속의 연대’의 과제 : 분절 속에 분할된 노동자들 간의 이해관계의 충돌을 제어하여 그들을 공동의 이해관계로 조율해 내면서 그 분절구조 자체를 개혁해 가는 것
- 기업별로 파편화된 교섭체제로부터 벗어나는 다양한 실험들(패턴교섭, 지역별 교섭, 업종별 교섭/협의, 사회적 협의)을 통해 ‘분절 속의 연대’를 점진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함
- 특히 기존의 노동조합 임금정책 또는 임금교섭 전략의 한계를 인식하고 임금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중장기적 로드맵과 그에 따른 단기적 실행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함
- 기존의 연공급 임금체계의 고수는 대기업 노조운동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킴 : 객관적으로 정부와 자본의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 시도와 더불어 주체적으로 기존 임금체계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연대’를 강화할 대안적 임금체계 전략이 요청됨

ㅇ 노동자 연대의 사회적 기반을 새롭게 구축하기
- 계급문화와 관련해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한 가지 특징은 노동자 연대를 활성화시킬 문화적 토양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임
- 한국의 조직노동자들은 공장에서는 집단주의를 견지하며 계급적 대립의식을 잃지 않았으나, 공장 바깥의 생활에서는 개별적 ‘소비자’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음. 이러한 간극과 분리는 노동계급의 해체적 변형에 이바지하는 주요한 문화적 조건이면서 동시에 노조운동을 공장 내에서의 임금인상과 고용보장 위주의 직업적 결사체로 국한시켜 시민사회로부터의 ‘고립’으로 이끄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
- 노조운동의 활동 경계를 확장하고 조합원을 ‘노동자-시민’(worker-citizen)으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기획을 장기적으로 시작해야 함
- 대기업 노조와 지역사회의 교류, 일상적 연대활동, 상호지원, 의제의 공유 등이 활성화되고, 진보적 시민단체, 협동조합, 노동정당의 지역위원회 등과의 사회적 연대에 더 많은 인적·재정적 자원을 투입해야 함.

ㅇ 노동조합운동의 내부 구조의 개혁과 리더십 혁신의 과제
- 87년 직후 ‘연대적 집단주의’는 총연맹-산별연맹-단위노조에서 리더십의 통일과 이에 대한 평조합원의 충성에 의해 가능했음 (전노협 투쟁, 96-97 총파업 등)
- 그러나 이러한 노조운동 내부적 조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임. 이러한 조건은 독립적 노조운동의 초창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노조운동의 제도화/합법화 이후 쇠퇴할 수밖에 없음. 전노협 시기에 대한 ‘낭만화’로는 문제를 풀기 어려움.
- 현재 한국노조운동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총연맹-산별-단위노조 간에 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는 것임. 총연맹(national center) 고유의 역할은 무엇이고, 산별노조 고유의 역할은 무엇이며, 단위노조의 그것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음.
- 이러한 큰 그림을 그리고 내부 성원들 간에 공유하기 위해서는 리더십 차원의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통상 2-3년 주기의 리더십 선출구조 하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함. 특히 단위노조의 경우 2년의 선거주기는 임투 1회, 임단투 1회만으로 집행부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노조운동의 중장기적 혁신의 과제는 계속 방기될 수밖에 없고 기껏해야 현상유지를 할 수 있을 뿐임. 짧은 선거주기는 운동 초기 국면의 노조 민주주의와 어용노조 분쇄를 위한 효과적인 방편이었지만, 현재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으로 보임.

ㅇ 대기업 노조‘운동’은 이제 끝났는가?
- 대기업 노조운동의 보수화를 보고 많은 논자들은 새로운 계급형성의 잠재세력으로 비정규 노동자 집단을 내세우고 있음
-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또 하나의 편향일 뿐이고, 비정규 노동자 집단의 상황과 행동양식에 대한 과도한 주관적 해석의 산물임.
- 네그리·하트 등의 ‘다중’론이나 21세기의 새로운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론 등은 서구 선진자본주의에서 포드주의 산업사회의 조직노동에 대한 실망과 그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공통점이 있음.
- 한국 사회는 아직 본격적인 계급정치를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기존 조직노동의 ‘타락’을 얘기하기에는 시기상조임. 문제는 ‘타락’보다는 ‘고립’으로 보임. 따라서 조직노동이 전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운동적 고리를 발견하고 그에 기반하여 헤게모니적 계급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힘을 모으는 일이 중요함.
덧붙이는 말

* 이 발표문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변형: 울산지역 대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1987-2010」(2012년)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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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 노동운동 , 노동자계급 , 계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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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독자

    순하게 생기셨네요!ㅎㅎㅎ

  • 울노협(준)

    우연히 기사를 읽었는데
    1989-1990년에 걸쳐 울산노동조합협의회(준)가 만들어져 전노협 준비에 중요 주체로서 논의에 참여했고 결성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함.
    울노협(준)은 현대자동차노조, 현대중공업노조, 현대중장비노조 등 7개 노조 약 6만명의 조합원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전노협 창립시 18만명의 조합원중 6만명을 채워준 전국의 최대의 조직이었음.
    그후 현대중공업, 현대중장비, 현대자동차 노조 등 정권의 집중적 탄압으로 유명무실해져 1991년에 와해되고 다시 현총련으로 탈바꿈하여 나타나게 됨.
    당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울노협을 만든다고 고생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논문이 문제가 있는 듯 하니,논문을 쓸 때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써야 할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