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싸워온 투쟁 결실 맺을 것"

[인터뷰] 수배중인 박현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박현제 지회장의 얼굴은 예상외로 밝았다. 그는 지난달 20일 열렸던 희망버스 집회 때문에 체포영장이 발부돼 도망다니는 상태다. <울산저널>이 9일 그를 만났다. 생각보다 얼굴이 밝다며 말을 건네자 그는 “우리 조합원들이 당당한데 제가 위축될 이유가 없지요”라고 답했다.

[출처: 울산저널]
희망버스가 다녀간 뒤 5일만인 7월 25일 비정규직노조 박현제 지회장과 강성용 수석부지회장, 김응효 조직부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강성용 수석부지회장은 4일만인 29일 언양터미널에서 체포됐고 박 지회장과 김 조직부장은 아직 도피 중이다. 지회장 등은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조합원을 만날 수도 없다.

지난 8일에는 296일 동안 계속 되던 고공 농성도 접었다. 혹시 조합원들이 실망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기자에게 “고공농성 끝나던 날 조합원들이 많이 오지 않았더냐”고 되물었다.

지난 8일 오후 1시 천의봉, 최병승 씨가 296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오던 시각, 철탑 아래서는 파업하고 공장에서 나온 많은 조합원들이 두 사람을 기다렸다. 울산지역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섭씨 40도를 기록한 날이었다. 조합원들의 얼굴은 더위와 울분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3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고공농성을 했는데도 회사는 신규채용만 고수하고, 희망버스는 폭력버스로 매도당하고 있다. 대부분 30~40대 남성인 조합원들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

박 지회장에게 도망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희망버스가 끝난 후 조합원들에게 ‘어떠한 경우라도 조합원들을 배신하지 않고 10년 투쟁의 결실을 맺겠다’고 약속했다”며 “조합원들과 약속을 지킨 뒤 당당히 조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그가 숨어 다니는 동안 그의 동료 둘이 296일간의 고공농성을 접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에게 지회장을 하라고 권했던 최병승 씨와 그와 함께 노조 사무장으로 일하던 천의봉 씨다. 수배 중이라 갈 수 없어 두 사람의 그을린 얼굴은 사진으로만 봤다. “직접 가서 손을 맞잡고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300일 가까운 시간을 버텨왔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고 내려온 건 아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몇 달 전부터 천 사무장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박 지회장이 철탑 위에 올라가 내려오라고 권했지만 두 사람은 거부했다. 날이 더워지면서 천씨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천씨만 내려오고 대신 다른 사람이 올라갈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작한 농성 함께 끝내고 싶다고 해 결국 두 사람이 함께 내려왔다.

10년을 싸웠고 1년 가까이 고공농성했다. 조합원들에게 다시 한 번 힘내보자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투쟁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 재판 결과는 나오겠죠. 자동차를 직접 조립하는 의장 공정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의장 공정이 아닌 경우는 어떡하죠? 설령 재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도 최병승 사례에서 보듯이 회사는 어떻게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겁니다. 그게 우리가 싸우는 이유에요”

이들이 10년을 싸워온 이유는 현대차 때문이다. 현대차의 10년 배짱 뒤엔 검찰, 법원, 고용노동부가 있다. 노동부는 현대차 공장 안의 하청업체들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도 업체 폐쇄는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수사를 질질 끌며 현대차에 대한 처벌을 미루고 있다. 현대차는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이 최병승 ‘개인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작업하는 완성차 공장의 특성상 최씨만 혼자 불법파견일 순 없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 중이다. 목숨을 건 300일의 고공농성에도 회사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현대차 윤갑한 사장은 9일 담화문에서 “농성해제가 이뤄진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2016년까지 3500명 신규 채용’ 입장을 고수했다. 윤 사장은 “더 이상의 불법행위는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을 불법의 벼랑으로 민 건 현대차다. 지난달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지회 박정식 사무장은 한 달이 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법파견 특별교섭은 지난 6월 이후 중단됐다. 정규직노조(지부)는 임단협 때문에 정신이 없다. 임단협이 끝나도 금속노조와 정규직지부, 비정규직지회 모두 임원선거를 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9월 말 선거를 치른다. 임단협 때문에 정규직노조 선거는 늦춰질 수 있다. 불법파견 교섭은 임단협과 선거, 인수인계로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지회도 선거가 늦어질 수 있다. 박현제 지회장이 언제 잡혀갈지 몰라 선거 전에 노사 합의가 안 되면 새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

박 지회장은 수배 중이라 직접 조합원을 만날 순 없지만 지회 대의원들과 현장위원들을 통해 조합원들의 힘을 모으고 있다.

노조 바깥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고공농성은 끝났지만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계속된다”며 “오는 31일 다시 울산을 찾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현대차불법파견대책위원회도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10년 불법을 자행한 현대차가 법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며 “현대차는 특별교섭을 재개하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지회는 조합원들에게 14일 저녁 서울서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와 24일 범국민대회, 31일 울산을 다시 찾는 2차 희망버스 참가를 독려하고 있다. 중간 중간 파업도 벌일 계획이다.

지회 내부엔 회사가 계속 신규채용을 고수하기 때문에 교섭을 중단하고 투쟁에 올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박 지회장은 “교섭을 중단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 반드시 10년 투쟁의 결실을 맺겠다”고 말했다. (기사제휴=울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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