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이후 이집트 노동자

무르시 해임에 대한 이집트 노동운동의 입장과 평가

[편집자 주] 2011년 1월 25일 혁명 후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집트 독립노조운동이 활성화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6월 30일 이후 군부 주도의 이집트 정국에 대한 이들의 입장과 운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동연구정보프로젝트(MRP)에 스탠포드대학 중동사 교수 조엘 베이닌(Joel Beinin)가 “6월 30일 이후 이집트 노동자”라는 주제로 관련 상황을 전해 주목된다. 베이닌은 무바라크, 군정, 무르시 그리고 현재 이집트 노동자 운동의 현황과 혁명 과정에 대한 이들의 입장을 개략적으로 소개하며, 기업 편향적인 무르시 정부와 현 임시정부의 성격, 여기에 참여한 독립노총 일부 지도부와 독립 노조주의를 우선으로 하는 조합원과의 갈등을 그린다. 중동연구정보프로젝트(MRP)는 중동 연구를 목적으로 1971년 설립돼 최근 ‘타흐리르로의 여행’, ‘아랍반란’ 등을 출간한 바 있으며 베이닌의 글은 국제노동운동뉴스를 전하는 ‘레이버스타트(labourstart.org)’에도 소개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축출 후 태동한 이집트 독립노동운동은 타마로드(반란) 운동을 열광적으로 지원했다. 타마로드 운동은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 불신임에 대한 대중적인 의사를 확고히 하는 6월 30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했다. 이집트에서 가장 능숙하며 노동 친화적 NGO인 ‘노동조합및노동자서비스센터(CTUWS)’는 6개 지역사무소에서 20만 명의 서명을 모았다고 한다. 이집트 독립노조연맹(EFITU), 이집트 민주노동회의(EDLC)와 알렉산드리아노동자상임회의(PCAW) 등 3개 독립적인 노동단체도 서명을 모으고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를 관찰했다.

이들 독립연맹과 수백 개 지역 조직은 무바라크 제거 후 설립됐다. 1957년 창설된 이집트노총(ETUF)이 항상 국가 편에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출처: http://menasolidaritynetwork.com/]

타마로드 운동은 조기 대선을 요구했지만, 이집트 군은, 7월 3일 무르시를 물러나게 하려고 자신의 쿠데타가 민중의 의지였다는 대의명분을 주장하며, 모여든 대중을 활용했다. 군은 무슬림형제단 축출 후, 1,000여 명의 무르시 지지 시위대 살해를 포함해, 모든 조치에 대해 국민의 위임을 들먹였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8월 14일 2개 농성장에 대한 군의 폭력적인 해산 과정에서 사망했다.

6월 30일 무르시 반대 시위대의 수는 최소 200만 명이었다. 일부는 훨씬 더 많게 본다. 수많은 노동자도 참여했을 것이다. 군부가 7월 1일, 무르시 대통령에 위기를 48시간 내 해결하라며 최후통첩한 후, EFITU와 EDLC는 다음 날 전국 총파업을 계획했다. 파업은 실현되지 않았다. 독립노조운동은 주로 지역적이며 전국적인 영향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EFITU와 EDLC의 제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 반 동안, 노동자들은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저항 운동을 발전시켜 왔다. 무바라크 축출 전 10년 간, 200만 명의 노동자가 약 3,400건의 파업과 단체행동에 참여했다. 2011년 노동자 단체행동의 전체 규모는 1,400건에 달한다. 2012년에는 1,969건이었다. ‘사회적 정의를 위한 이집트센터(ECESR)’에 따르면, 2013년 1/4분기에 일어난 사회경제 관련 시위는 2,400건이나 됐다. 이 중 최소 절반 이상이 노동자 그리고 의사, 기술자와 교사와 같은 공공분야의 전문인들이 조직한 것이다.

이 전례 없는 사회 운동은 지속적으로 무르시와 무바라크 양 정권 모두를 물러나게 했다. 무르시의 무슬림형제단은 역사적으로 산업 및 서비스 노동자 사이에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더욱이, 형제단은 무바라크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국제금융기구가 촉진한 시장자유주의에만 전념했다.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를 계속했을 때, 무르시 정부는 무바라크 전 정권처럼, 경제적 요구를 종종 들어주긴 했지만 정치적 요구는 묵살했고 조직의 자율권을 약화시켰다. 이 억압적인 조치는 때로 무바라크 후기 시절 보다 훨씬 심했다.

노동자들은 무르시 해임 후 보다 나은 대우를 희망했다. 특히 베테랑 노동조합 활동가, 카말 아부 에이타는 임시 정부 내각의 자리를 받아들였다. 1달 후, 이들의 희망은 내동댕이쳐졌다. 아부 에이타는, 동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무바라크가 사임하도록 강제한 혁명세력의 선봉에 있었던 운하 지역 수에즈 철강회사에서 보안부대가 격렬한 파업을 짓밟을 동안 보고만 있었다.

“생산의 챔피언”

카이로 법학대학 노동법 전문가이자 독립노조주의 지지자인 아흐마드 하산 알부리(Ahmad Hasan al-Buri)는 무바라크 축출 후 9개월 동안 인력이주부처 장관으로 일했다. 독립노동조합들과 친노조주의 NGO의 제안으로 그의 부처는 독립노조를 완전히 합법화하는 노동조합자유법 초안을 작성했다. 알부리는 ETUF의 노조 독점에 관한 기존 법안을 무시하고 ILO 협정을 포함해 이집트가 인준한 국제 조약을 근거로 부처에 그러한 노조를 등록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2012년 1월부터 6월까지 군부와 무슬림형제단 우위의 의회 그리고 무르시 정부 모두는 이 법안 제정을 거부했다.

7월 3일 무르시 해임 후 임명된 하짐 바블라위 총리는 알부리를 사회연대부처 장관으로 지명했다. 알부리는 노조자유법 제정을 최우선 사항으로 밝혔다. 그의 부처는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약속은 독립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임시정부의 올리브 나뭇가지(화해의 몸짓)였다.

EFITU 창립의장 아부 에이타는 군부의 포섭을 받아들였다. 그는 무르시에 대한 군부의 7월 1일 최후통첩을 열심히 환영했다. 무르시 제거 후 아부 에이타는 “전 정권에서 파업의 챔피언이었던 노동자들은 이제 생산의 챔피언이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EFITU는 후에 파업 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아부 에이타는 오랫동안 국가 정치와 관련돼 있었고 무바라크 축출 후 거의 변화된 것이 없다는 일반적인 사실 때문에 비난받았다. 그는 (무바라크 정권이 인정하지 않은) 나세르주의카라마(존엄)당[Nasserist Karama (Dignity) Party]의 창립멤버였다. 카라마는 2011년에서 2012년 사이 무슬림형제단과 자유정의당[무르시의 여당]이 주도한 민주주의 동맹의 일부로 의회 선거에 참여했다. 아부 에이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자로서 의회에 자리를 얻었다.

바블라위 총리는 아부 에이타를 인력이주부처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 자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는 EFITU 의장직을 사임했다. 그는 이제 노동조합자유법의 미래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무바라크 시대 인물 일부를 포함한 친기업적 내각 다수도, 권력의 근본 원천인 군부도 알부리가 만든 법안을 지지할 것 같지는 않다.

쿠데타인가 아니면 끌려듦인가

수에즈 철강노동자들의 파업 전에도, 장관직과 군의 과도적 ‘로드맵’에 대한 아부 에이타의 찬성 입장에 대해 거센 토론이 일어났다. 일부는 내각에서 그의 존재는 노동자 운동의 승리를 나타내며 아무 에이타는 노동자의 주요 요구가 성취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EFITU 지도부 다수의 입장이었다. EFITU의 집행위원회는 ‘로드맵’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군부가 아부 에이타를 내각에 앉힌 것은 운동을 끌어들이려는 조치였다고 우려했다.

두 주장 모두 진실의 요소를 가진다. 아부 에이타는 대중 사회 운동이 아니었다면 결코 지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군부도 노동자 운동의 힘인, 아래로부터의 분권화된 직접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EFITU 집행위원회 성원 파트마 라마단(Fatma Ramadan)은 아부 에이타 임명을 끌어들임으로 본다. 라마단에 따르면 에이타는 노동자들에게 파업 무기를 포기하자고 제안하기 전 다른 독립노조 지도자과 상의하지 않았다. 7월 10일 라마단은 “연맹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파업권을 포함해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노동자에게 도저히 국가 경제를 개선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의 권리를 몰수하며 기업의 이해를 보호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라마단은 “군대와 구정권 부역자가 (6월 30일 운동을) 납치했다”고 생각한다.

EFITU나 EDLC와는 별도의 조직인 지역 독립노조연맹 알렉산드리아노동자상임회의도 파업운동 중단을 요구하는 아부 에이타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라마단, PCAW와 ECESR은 6월 30일 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개적으로 아들리 만수르 임시대통령의 7월 8일 헌법 선언과 군부의 ‘로드맵’을 반대했다. 알렉산드리아노동자상임회의 활동가들은 하짐 바블라위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표현했다. 그가 포스트무바라크 과도 정부 기간 군사최고위원회가 지명한 장관이자 신자유주의자 신봉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경제와 사회적 권리를 위한 이집트센터는 웹사이트에 “혁명의 원칙에 반하는 입헌적 쿠데타”라는 제호로 구체적인 비판을 실었다. 이들은 만수르 대통령이 그가 발표한 헌장에 대해 6월 30일 시위 선봉에 선 정치 세력과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았다고 항의한다. 더욱이, 이들은 대통령이 “주택, 건강, 의료적 치료, 음식, 물, 의복, 보험, 연금, 사회적 안전과 최소 및 최대 임금에 관한 권리 등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권리를 무시했다”며 “그것은 가격에 임금을 연동시키거나 기업이사회와 이윤 배분에 있어서 노동자 대표의 권리를 연계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서비스를 위한 센터도 6월 30일 시위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은 군사 정권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나 비판을 삼가면서 무슬림형제단의 반노동자 정책을 기록하는 조사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CTUWS는 역사적으로 국가 정책에 대한 참여를 넘어 광범위한 노동자 운동 건설을 우선해 왔다. 이러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CTUWS와 제휴한 노동조합들이 2011년 여름 EFITU로부터 철수했기 때문이다. 풀뿌리에서의 조직 일 년 반 후, 2013년 4월 24일, 그들은 186개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EDLC를 설립했다.

EDLC 의장으로는 파업권을 헌신적으로 옹호했던 유스리 마로프(Yusri Marouf)가 선출됐다. 그는 2011년 10월 알렉산드리아 컨테이너 및 화물회사에서 1,500명의 노동자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3년형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6월 17일, 항소법원은 “연좌와 파업은 헌법에 의해 보장됐고, 피고는 단순히 이 권리를 행사했다”며 당시 판결을 뒤집었다. 사법부는 1986년에 도입된 법안을 처음으로 분명히 표현했다. 무바라크 정권, 군부와 무르시 정부는 이를 무시했었다.

새 정부의 의도가 더 명확해지며 아부 에이타에 대한 비판도 늘어가고 있다. 파트마 라마단은 8월 초 새 정부가 수에즈 파업노동자에게 준 ‘선물’[파업 진압을 의미]을 풍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에이타는 내각에서 파업을 지지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생산의 챔피언’을 들먹이며 파업을 깨는 ‘폭력배’에 대한 수사적인 지지를 표현하는 데까지 이른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는 부통령은 8월 14일 대학살에 대한 반발로 사임했다. 엘바라데이는 그의 정치적 무능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에서 가장 믿을만한 자유주의 인물이었다. 엘바라데이가 이탈하며 무바라크 때처럼, 이집트군과 내부 보안세력이 이 정권을 주도한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군이 이 순간 매우 대중적이라 하더라도, 노동자는 이제 그의 권리와 열망에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대담해진 권위주의적 국가에 직면해 있다.

너무 가까운 안락함

알시시 국방부 장관은 무슬림형제단을 언급, 자신에게 “폭력과 테러”에 맞설 권한을 달라며 7월 26일 전국 집회를 호소했다. ECESR 등 여러 인권 단체는 알시시의 의도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다. EFITU는 표현의 자유와 평화롭게 집회하고 파업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제기하는 동시에 “테러와 폭력에 맞서기 위한 이집트 국가 기구의 권리”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같은 기구는 무르시 정부 동안 파업을 중단시키고 집회를 공격했었다. 그들은 이제 무르시의 해임 후에도 그렇게 지속하고 있다.

7월 26일 집회(와 축출된 무르시 대통령 지지자의 맞집회)는 대중적이었다. 500만 가입 노동자를 모을 것이라고 약속한 이집트 노총(ETUF)도 알시시의 요청을 지지했다. 사실, ETUF는 380만 명 이상이 아니며, 이들 중 대부분도 동원될 수 없다. ETUF의 구조는 완전히 비민주적이고 (현장 노동자를) 대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TUF가 지난 15년간 한 일이라곤 단지 파업에 반대하는 일이었다. (ETUF와 다를 바 없이) 군부 개입을 지지한 독립노조 조합원들은 이제 무바라크 정권의 핵심 기구에 불편하게도 가까이 있게 됐다.

2012년 12월, 무르시는 무바라크 시대 노동조합 인물인 알기발리 알마라기를 ETUF 의장으로 세웠고 그를 또 이집트 상원(슈라위원회)으로 임명했다. 이는 구 무바라크 지지자와 ETUF 모두를 통제하려는 무슬림형제단의 의도로 폭넓게 간주됐다. 이 협상은 이제 말소됐다. ETUF의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그의 지도부는 이 정부와 군부 뒤에 서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ETUF 지도부가 맹렬히 반대해온 인물 중 하나인, 아부 에이타를 포함한다. ETUF는 이전에, 새로운 노조연맹 창설이 현 노동법과 모순된다며 범죄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또, 아부 에이타는 새로운 최저임금법이 7월 21일까지 발표될 것이라며 공식적인 첫 번째 약속을 말했지만 이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무바라크 축출 후 노동자 운동의 주요 승리는 독립노조와 연맹 설립 그리고 여전히 시행은 불가능하더라도 700 파운드(약 11만원)의 최저 임금에 관한 법률 제정이다. 이들 성과는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직접적 행동으로 쟁취한 것이다. 무바라크의 축출 후, 수많은 노동자가 구속, 해고되거나 파업, 연좌시위와 집회에 나섰다는 이유로 징계 받았다. 이는 무바라크 시절 지난 수십 년 간 보다 더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지역에서 일어났다.

무바라크와 무르시 시절에도 그랬던 것처럼, 독립노조운동과 지지자들의 우선적인 과제는 해고노동자 복직, 일시 계약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보장, 최저임금 1,500파운드로 인상, 최대임금 규정, 파업권 보호, 노동조합자유법 쟁취다. 이러한 과제는 군부가 임명한 정부에 의존하기보다는 대중적인 투쟁으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원문]http://merip.org/mero/mero082313
[원제]Egyptian Workers After June 30
[게재]2013년 8월 23일
[번역]정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