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적시된 이 의원의 ‘구체적 범죄사실’도 내란 음모 내용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내용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물론 한반도 정세 등을 설명하며 ‘혁명’이나 ‘사상전’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만, 대부분 추상적인 맥락 속에서 나와 내란 음모 혐의의 구체성이 떨어졌다.
또한 몇몇 언론 등의 발표와 달리 이석기 의원은 일부 당원들의 전쟁위기 대응을 위한 총기 제작, 폭발물 제조 등의 발언에 대해 총이나 칼보다 사상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체포동의안은 “‘RO(혁명조직)’의 강령에서 말하는 남한사회 변혁운동은 합법, 비합법, 폭력비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남한 사회주의혁명투쟁’을 의미하며, ‘RO’의 강령 실현을 위해 총책인 피의자 이석기의 지휘 아래 조직원들은 사회단체, 지자체, 공공단체, 정당, 국회 등에 침투하여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기다려 왔다”고 적시했다.
또한 “그러던 중 북한이 2012.12.12.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발사를 시작으로, 한반도 비핵화 포기 선언, 3차 핵실험'을 거쳐 정전협정 백지화선언을 하고 북한의 전쟁위협이 최고조에 이르자 RO 총책인 피의자 이석기는 현 한반도 정세를 전쟁상황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2013년 3월초 공동피의자 홍순석 등 지역책을 통해 세포단위 조직원들에게 전쟁대비 3가지 지침을 하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체포동의서상 드러난 실제 이석기 의원의 전쟁대비 관련 발언은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많은데다 전체적으로 당시 정세인식의 중요성과 사상적 무장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내란 음모죄의 핵심이었던 총기, 폭발물 제작 등의 발언은 이어진 권역별 토론에서 일부 당원들이 한 발언이었고 종합토론에서 이 같은 내용만 오갔던 데에 대해 이 의원이 오히려 지적하기도 했다.
체포동의서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북은 핵보유 강국이 되었고, 북은 미국의 위협세력이라는 것. 이것은 팩트”라며 “3월의 정전협정 무효화를 통해서 이제는 조미(북미)간의 기존의 낡은 관계는 기대할 수 없다. 정전협정으로 표현되는 60년이라는 이 휴전 형태의 기형적 구조는 끝났다. 이 세가지는 객관적으로 현 정세를 관통하는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의원은 “현 정세를 위해 첫째는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정치사상적으로 당면 정세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사상적 무장이 선결되어야만 한다”며 “현 정세에서 바라보는 일면적이거나 편향적이거나, 때에 따라서는 분단의 사고에 찌들어 있으면, 현 정세의 역동성과 변화의 큰 흐름, 역사의 본류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한다. 필승의 신념으로 철저히 무장하자.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하게 현 정세와 본질, 대격변기와 대전환기라는 흐름은 분명하다”며 “ 그런데 남녘에 있는 우리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진 이 의원의 강연도 계속 심리전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북한이) 핵보유 강국이 되면 북미간의 전면적 대결을 못한다. 국지전, 정규전의 전면전이 아닌 비정규전. 이런 상태가 앞으로 전개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것은 현대전의 영역이 심리전이고 사상전이다. 우리 선전선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 발언은 이런 새로운 전쟁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전쟁을 진행하는 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냐?”며 “구체적으로 하면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시기에 우리가 역량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그 물질, 기술적 준비를 갖춰야 하는데 왜 기술적인가? 그건 나중에 동료들과 토론에서 한번 고민해 보라. 이 기술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질과 기술적 준비 체계를 강조하고 이후 권역별 토론에서 일부 당원들이 총기나 폭발물 등 발언이 나오면서 이 의원이 무장 혁명을 얘기했다고 하지만, 이후 이 의원의 발언을 살펴보면 전혀 맥락이 다른 지점이었다.
권역별 토론이 끝난 후 이 의원은 “오늘 강조한 것은 물질, 기술적 준비 문제만이 아니라 현 정세에 대한 주체적으로 자기 입장을 투철히 하자. 알게 모르게 침투했던 개량주의, 합법주의, 공산주의 등 잡사상주의가 많은데 이런 것을 척결하는 주요한 시금석 물질적 기준이 너무나 분명하다”고 했다. 여기서도 물질적이란 단어가 공격적인 단어로 보기 어려운 추상적 맥락에서 쓰였다.
이 의원은 또 “몇몇 동지들은 이 싸움에 대해서 남부에 그 친구가 누군지는 알겠는데, 가방에 칼 가지고 다니지마. 대충 내가 누군지 알겠어.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이젠 칼 가지고 다니지 마시라. 총? 총 가지고 다니지마”라며 “핵폭탄 보다 무서운 게 사상의 무기야. 무형의 자산임과 동시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사상의 무기를 단단히 무장하면 아까 한 친구가 기껏 싸우는 게 하나 죽이고 가겠다고? 우리는 죽자고 싸우는게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는 “위기의 시기이든, 전선이 와해되는 엄혹한 시기이건 간에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자체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자체 선전전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구축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물질, 기술적 준비”라며 “인터넷 사이트 보면 사제폭탄 사이트가 있어요. 그걸 이미 예상한다고 그러니깐 저기 멀리서 혈기가 두드러진...총 어디서 구해요? 이럴 때 이미 저놈들은 격변의 시기에 어디에 접촉할 것인가에 대해서 파악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그쪽 그런 사이트 굉장히 많아요. 우리 동지들 간에도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라고도 지적했다. 총기 등을 언급한 당원에게 우려를 드러낸 부분이다.
이정희, “녹취록 왜곡 직접 확인한 내용도 있다”
이 같은 이석기 의원의 발언을 두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국민TV ‘노종면의 뉴스바’ 초대석 인터뷰에서 “이석기 의원의 발언 내용에는 ‘총 그런거 가지고 다니지 마라, 칼 가지고 다닐 필요없다’ 그런 얘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들이 중심”이라며 “전쟁이 다가오는데 진짜 그러면 어떻게 되지? 이런 거에 대해 마음을 다시 생각하자는 취지의 이야기라는 것이 전체동영상을 보면 판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그 중에(참가자 중) 한 사람은 자신의 발언이 공개된 녹취록에 보면 파괴계획을 정교하게 세워야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이 한 얘기는 ‘전쟁이 나면, 일단 살아야 되는데 대피 계획을 정교하게 세워야 된다’는 취지였다”며 “일부를 잘라버리면 내용이 완전히 바뀐다. 이런 것들이 계속 있다고 보이고 거기에 등장한 사람들 얘기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 분 정도가 말씀하신 것이 장난감총, 비비탄총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우연히도 매수된 사람이 녹음을 하고 있는 그 조에서 한 두 분이 국민들이 받아들이 어려운 말씀을 하신것”이라며 “이것이 국민들의 생각에 맞지 않다면 그 때 같은 자리에서 토론을 했던 진보당 당원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몇몇 사람들의 생각을 평가하고 꾸짖을 수 있어도 RO라는 지하조직의 내란음모로 몰아가는 것, 국회의원의 체포동의안까지 가고 있는 것, 향후 내란음모라고 몰아붙이는 이유는 이 정당을 해산시켜보겠다는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이라며 “문서에 나온 것으로는 이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기도 대단히 어렵다. 가지고 있으면 동영상 전부다 공개해라, 그렇게 해놓고 여론재판을 하는 것이 맞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 요구서를 보고받았다. 국회법에 따르면 현역 의원 체포 동의 요구서가 본회의에 보고되면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민주당은 체포동의안에 관한 의원총회를 열고 72시간 이내에 제기된 적법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여부와 관련해 법사위와 정보위를 열어서 보고를 받고, 72시간 이내에 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의당은 체포동의안에 대해 2일 당 대표단과 원내대표단 긴급연석회의를 열고 3일 오후 2시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당론을 모으고 원내대책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천호선 대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은 당시에 모여서 무슨 얘기를 어떤 목적으로 했는지 기억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국민들 앞에 공개해야 한다”며 “그 내용이 기존에 공개된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면 국민들 앞에 사과해야 하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도 “이석기 의원은 만약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라도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런 낡고 위험한 시대착오적인 세력이 있다면 법에 의해서 단죄돼야 하고, 정권의 위기 때마다 색깔론을 들이대 왔던 국가기관과 수구세력도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구별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야권의 기류에 이정희 대표는 강하게 반발하며 국회 본관 입구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혐의에 과연 유죄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고 판단하느냐”며 “지금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한국전쟁의 피바람 속에 자행됐던 즉결처분과 같다”고 맹비난 했다.
홍성규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국회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46초에 불과했다. 체포동의안 처리에 필요한 첫번째 과정인 국회보고에 걸린 시간”이라며 “30여 년 만에 무덤에서 부활한 내란죄를 뒷받침한다는 증거는 국정원에서 불법적으로 언론에 흘렸던 괴문서 말고는 단 하나도 없다”고 비난했다.
홍 대변인은 “수년에 걸쳐 원내 제3당에 대해 조직적으로 정치공작 및 사찰을 해온 사실까지 드러났다. '정당사찰'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국정원은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며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국정원의 정치사찰과 프락치 매수공작에 대한 진상규명이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