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강연, 일부 부적절 인정하면서도 반성 없는 진보당

진보진영에서도 진보당 정세인식 오류·언더써클식 활동 비판 나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서의 핵심 증거로 제출된 5.12일 한반도 정세 강연 중 조별(권역별) 토론에서 국민 정서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스스로 일부 잘못을 인정하고서도 공작정치 피해자화와 당 사수만 몰두하면서 더욱 고립을 자초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통합진보당은 사건 발생 초기 부적절한 발언이 전혀 없었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다 말이 자주 바뀌면서 대응에도 곤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이 수년간 수사한 내용을 언론에 전면 흘리면서 당의 대처가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해도 당권파 세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보여준 ‘무조건 공안탄압 반대’ 주장이 힘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3일 이번 사건의 정치도의적 책임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들과 말씀 나눌 시간이 있을 수도 있으나 지금 시점은 아니다”며 “현재 진보당의 당면한 모든 고민은 국정원을 앞세운 청와대의 공안탄압, 정당해산시도에 당력을 총집중하여 당을 사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대표까지 일부 내용의 부적절성을 인정한 마당에 이에 대한 조속한 대국민 사과 등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이런 기류는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진보진영에선 폭넓게 인정하는 모양새다. 진보진영과 사회단체들에선 대체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엔 반대하지만, 통합진보당 당권파 세력의 반성 없는 운동 방식이 공안탄압을 자초하고 진보진영 전체를 위기로 몰았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정희, “‘저런 얘기 뭐하러 하냐’고 느낀 분도 있을 것”

이정희 당대표는 2일 국민TV ‘노종면의 뉴스바’ 초대석 인터뷰에서 “녹취록에는 강연을 듣고 나서 7개조로 나뉘어 의견을 나눴고, 우연히 매수된 사람이 녹음을 하고 있는 그 조에서 한 분 정도가 말씀하신 것이 장난감총, 비비탄총 이런 얘기가 나왔다”며 “한 두 분이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또 “진보당이 게릴라 부대가 아니다. 진보당 당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국민의 평균적인 생각과 완전히 딴판일 수가 없다”며 “편집된 녹취록을 보더라도 총이든 뭐든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들으면서 ‘저런 얘기 뭐하러 하냐’고 느낀 분도 있을 것”이라고 해당 발언 당사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이석기 의원이 직접 총이나 무기를 선동한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석기 의원의 발언 내용에는 이런 것이 있다. ‘총 그런 거 가지고 다니지 마라. 칼 가지고 다닐 필요없다’ 그런 얘기가 나온다”며 “그 이야기들이 중심이다. 전쟁이 다가오는데 진짜 그러면 어떻게 되지? 이런 거에 대해 마음을 다시 생각하자는 취지의 이야기”라고 전했다.

이정희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이석기 의원의 지난 8월 30일 기자회견 발언을 전면 뒤집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국회에 보낸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서에 이석기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7개조로 나뉜 권역별 토론회 이후 종합토론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은 30일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권역별 토론자에 대해 특별히 논평한적 없다”고 말했지만, 이정희 대표는 이석기 의원을 옹호하면서 이에 대한 논평을 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뒤집은 셈이 됐다.

“북한 핵무장을 평화협정 지렛대로 사고한 정세인식 오류 드러나”

이 같은 통합진보당 지도부들 사이에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과 더불어 국회의원 3명과 보좌진까지 참석한 공당의 행사에서 나온 일부 부적절 발언에 대한 반성 없는 태도, 진보당 당권파 세력의 잘못된 정세 인식과 대응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무기 관련 발언자로 지목된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지난 1월 9일 즈음 여러 차례 국정원 미행사실을 파악하고, 심지어 국정원 직원을 직접 잡기도 했다. 이렇게 국정원의 지속적인 감시가 진행된 상황에서 그가 한 폭력 관련 발언이 의도와 다르게 공안탄압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의 내란음모 공작정치를 강하게 규탄한 바 있는 한 사회단체 활동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정당이 언더써클(비공개 그룹)식 활동작풍을 버리지 못한 것이 공안탄압의 먹잇감을 제공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상반기 한반도 군사적 대치국면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평화협정의 지렛대로 사고한 통합진보당의 정세인식의 오류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했다.

진보정치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 문제가 법리 논쟁으로 가는 것은 물타기가 될 수 있다”며 “일부 녹취록에 왜곡이 있다 해도, 그들의 발언에는 진보 운동을 하는 입장으로 용납 할 수 없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혁명은 민중을 중심으로 보고 체제변화를 하려는 혁명과는 구분 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이석기 의원이 원내 3당이라는 공당의 위치에서 판단하고 충분히 해당 발언을 강하게 문제 삼을 위치에 있는데도 왜 안했는지를 봐야한다. 맥락적으로 볼 때 이석기 의원이 됐든 누가 됐든 참가했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강연 전체 내용이 자본주의 체제 모순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한 혁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한 번도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한 적이 없다. 이번 사태에서도 반성할 지점이 드러났지만 반성적 접근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진보진영 인사는 “미친놈과 나쁜 놈이 싸움 붙은 꼴이다. 나쁜 놈들이 말도 안 되는 죄목을 갖다 붙였고, 비비탄 운운한 통합진보당은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하고 있다. 공안탄압 반대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는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국내파트 해체 요구가 나오자 본인들의 존재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남한 사회에 이런 세력(이석기)이 있기 때문에 국정원이 존재해야 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통합진보당의 강력한 지지자들이나 정치인들은 본인들이 탄압받는 것으로 인해 더욱 강고하게 결집하고 있다”며 “이는 말 그대로 적대적 공생관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석기 의원과 참석자들의 정세인식에 대한 비판은 민주당에서도 터져 나왔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전협정을 백지화한다고 한반도에 금방 전쟁이 일어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본인들의 용어로 얘기한다면 본인들이 정세판단을 잘못한 것”이라며 “내용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우물 안 개구리 식”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2일 오전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실체를 알리는 거리 선전 등을 위해 10억원 특별당비 모금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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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잡한 마음

    이번 일은 지난 번 부정선거 논란과는 다르다. 그때는 분명히 사실관계에서 잘못된 부분이 많았고, 선입견에 기초하여 당권파를 심하게 매도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이후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에서도 드러났었다. 그때 나는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당권파의 입장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대응은 분명히 실망스러운 것이다. 왜곡과 과장, 짜깁기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란 점을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제시된 녹취록을 보았을 때, 맥락의 왜곡가능성을 감안하고라도 일부 인물의 극단적인 발언과 정세인식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석기의원의 발언 역시 대중정당의 정치인으로서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이런 극단적 표현들에 대해 선을 그어야한다. 물론 '우리 스스로 행사에 참석한 당원들로부터 확인해보고 사실로 드러난다면'이란 단서는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매우 놀라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고있는 중립적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 통합진보당원은 그런 발언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너무 경황이 없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렇다고 국정원 녹취록에만 근거를 두고, 그것을 진실로 인정하고 사과할 수는 없지 않으냐. 자체적으로 확인해볼 시간을 달라. 만약, 일부가 국민들에게 용납받지 못할 수준의 발언을 실제로 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응당 정치적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 지금은 국정원보다 우리를 믿어달라 "는 호소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타이밍인데 이를 모르는 듯하다. 무조건 날조라고 하고, 왜곡이나 절차적 문제점만을 주장하면서 정작 국민의 불안한 정서를 달래주지 않고 있다. 내 짐작으로 국정원은 동영상이나 음성파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또 그것을 흘릴 것이다. 왜곡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그런 것이 또 터지면 그때는 이미 늦다. 정치집단으로서 모든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일부 극단적 발언이 사실로 드러나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불이 배 전체로 옮겨붙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보는 견해는 녹취록 가운데 가장 과격한 파괴와 무장에 관한 발언을 한 사람들 가운데 추가적으로 프락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과격발언을 유도하기 위해 황당한 수준의 극단적 발언으로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한두명이 분위기를 막 몰고가면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수준까지 맞장구를 치게 되는 때가 있다. 미행당하는 것까지 알면서 130명이나 모아놓고 저런 발언을 한다는 것이 불가사의하지 않나. 의도적인 것이라고 본다. 당세가 약화된 통합진보당이 국정원에 의해 완전히 농락당한 것 같다.

  • 보스코프스키

    착잡한 마음님의 일부 견해를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면돌파 해야 하지 않나요? 물론 저들의 학습효과를 볼 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꼭 거쳐가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